SeongJin C. plays Brahms’ Piano Concerto
살을 찌우고 서른이 넘어 브람스곡을 연주하고 싶다 했던 조성진은 더없이 마른 체격으로, 보폭 넓고 스피디하게 걸어 나와 청중석을 향해 인사했다 ( 아직 서른 아니잖아)
콘서트홀 도착 두어 시간 전부터 긴장되던 내 몸은, 그의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페달을 짧게 끊어 밟을 때마다 숨도 멎었다. 긴장된 양손을 제어할 방법은 꼭 깍지를 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기도하는 자세로 경청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15)의 전체적 인상은 회상하듯 인생의 쓴맛단맛을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서정적으로 속삭이다 격정적으로 울고, 맑은 날의 미풍 같다가 대지를 흔드는 폭풍우를 만나는 그런 표현이 반복해 나온다. 감당 안 되는 사랑 앞에 잊는 것에도 지키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던 브람스의 곡다웠다.
다만 내셔널 교향악단의 소리가 처음부터 입자 고운 밀가루 같이 들려서 불안했는데 ( 알갱이의 질감이 꺼끌 하게 남아있는 믹스쳐의 오케스트라를 선호한다)
조성진의 피아노 소리마저도 얇은 막을 덮은 듯 전해져서 아쉬웠다. 음향에 세심하지 못한 케네디센터여!
이걸 더 확실히 체감한 게 인터미션 이후 피아노가 빠지고 단원들의 자리를 끌어모아 재배치한 뒤 슈만의 곡을 연주하는데 이땐 또 오케스트라가 물 만난 생선처럼 음표 표현을 했다는 거지.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National Symphony Orchestra 측은 조성진을 귀빈처럼 대했고, 조성진도 브람스의 곡을 공손하게 대했다. 이게 빼듯이 연주를 했다라기보다 폭발하는 순간에도 정간했고 숨 죽이면서도 예의를 차리는 느낌이었달까.
젊은 나이에 브람스곡을 연주하다 보니 거만한 느낌을 얹기 싫어 더 조심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여 조성진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지고( 내가 죽기 전에 말이지) 다른 교향악단과 ( 독일이었으면 더 좋겠네) 협연을 꼭 다시 해줬으면 좋겠다!!!
워싱턴에서 지내는 동안 조성진을 만나서 더없이 행복했던 날이었다. 2023년 대운의 징조! 이보다 값진 새해선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울컥하던 워싱턴의 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20대 때 사두었던 (그땐 참 어려웠던) 슈만과 브람스의 앨범을 다시 꺼냈다. 지금 들으니 미치도록 좋은 것을 보니 깊이를 강요하는 두 거장의 음악이 맞나 보다. 감히 애송이들은 모를 그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