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 뜨겁게 살아내기 위하여
내게 글쓰기는 단지 직업이 아니라
삶을 더 뜨겁게 살아내기 위한 살아 있는 미디어다.
_정여울
나는 글쓰기 강의에서 늘 말한다. 글쓰기는 내 삶을 보듬는 것이라고. 이는 내 고백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비루할지라도 주어진 생을 함부로 살지 않겠다는 나만의 매일 서약서이며 시각화 자료이다.
쓰면서 어제의 삶을 돌아보며, 오늘 주어진 삶을 기억하며, 내일을 각오한다. 초스피드로 글이 써질 때도 있지만, 수많은 멈춤이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잘 써질 때도 좋고, 안 써질 때도 좋다. 잘 써질 때는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오 영감이 쏟아지는구나’, ‘이런 게 내 안에 있었다니?’ 하면서 희열과 쾌감을 느끼고, 잘 안 써질 때는 단어와 문장을 억지로 조합하는 느낌도 들어 좌절감을 겪기도 하지만, 사이사이 수많은 멈춤 속에서 오히려 ‘지금 잘 살고 있는 거니?’, ‘좀 더 고민해 봐.’, ‘요즘 너무 삶을 즐기지 못하고 일만 한 거 아니야.’라고 삶에 질문을 던지고 말을 건넬 수 있는 쉼과 여백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잘 써지면 써지는 대로,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모두가 내가 끌어안아야 할 내 삶이다.
글쓰기를 만난 건 정말 나에게 행운이다. 20여 년 이상 읽기만 했던 내가 어떻게 쓰며 다른 이들에게도 곁을 내어 주고 있을까. 조금 더 일찍 글쓰기를 만났다면 내 삶이 더욱 달라졌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지금도 좋다. 오랫동안 축적된 독서 경험은 지금의 삶과 글에 다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읽기가 내 삶을 보듬어 주었다. 책 속의 저자는 내가 미처 인식조차 못하고, 말하고 싶어도 못했던 언어와 감정을 대신 말해 주었다. 그들의 언어를 의지해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쓰기는 타인의 언어가 아닌 나만의 언어와 목소리를 재발견해 주는 가장 귀한 도구이자 친구이다.
정여울 작가는 언제 글과 삶이 만나냐라는 질문에 “‘세상이 내 상처에 말을 거는 순간’ 그리고 ‘세상이 내 기쁨에 말을 거는 순간’이라고.”라고 답한다. 하루를 살아도 세상의 수많은 사물과 생명이 나에게 말을 건다. 다만 귀와 눈, 오감이 닫혀 있어서 흘려버릴 뿐이다. 글은 이런 우리의 삶에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이다. 오감을 열고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다. 이 순간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말을 걸었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응답하는 시간이다. 이른 새벽 떠오르는 검붉은 태양이, 겨울 초입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꽃 한 송이가,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 하나가, 작은 운동장 모서리 구석에서 웃고 떠드는 초등 아이들의 대화가 말을 거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말을 건다는 것은 내 안의 무언가와 부딪힘이 있다는 말이고, 부딪힘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그 부딪힘을 외면하지 않고 깊게 파고 들어가면 그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찾아내어진다, ‘아! 그 말이 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하며 먼저 스스로에게 공감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바꾸는 작업은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한 여정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글이 완성되고, 삶이 완성된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언어에 빚을 지고 있지만,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나의 언어를 재창조해가는 이 과정에서 한 뼘 더 성장해 간다.
정여울 작가는 글쓰기 주재료는 ‘문학’, ‘여행’, ‘심리학’이라고 한다. 꾸준히 글을 쓰는 분들에게서 나오는 말 중 하나가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거 같아요.’이다. 소재가 떨어졌을 수도 있고, 새로운 경험을 보태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자기가 가장 말하고 싶은 시그니처 주제일 수도 있다.
나의 글쓰기 주재료는 ‘독서’와 ‘글쓰기’다. 여기에 아마 정적인 것 못지않게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기에 자연을 풍경 삼아 걷는 일이 언젠가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시그니처 주제는 바뀔 수도 있고, 나중에 추가될 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이 바뀌지는 않지만,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새로운 만남 속에 없던 재료도 생기는 법이니까.
글을 쓰다 보면, 반복되는 소재 속에 ‘자신’이 담겨 있다. 나를 상징하고, 살아온 경험과 모든 지식이 응축된 주제, 나의 열정이 꿈틀거리는 가슴 뛰는 주제,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꼭 하고 싶고, 말해야만 하는 주제 말이다.
방금 단톡방에 이런 문장이 올라왔다.
대중에게 울림을 주는 서사의 핵심은 목표가 아니라 의미입니다.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것은 당신만의 서사입니다.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기여가 얼마만큼 치열했는지. 그 맥락이 있다면 꽤 괜찮은 선배 직업인으로 마땅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글쓰기는 당신만의 서사를 발견해 가고 만들어가는 길이다. 지금 당장 찾지 못해도 된다. 쓰다 보면 사유하게 되고, 사유하며 쓰고, 쓰고 사유하기를 반복하는 여정에서 자신은 언젠가 발견되고 만다. 모든 지 반복하면 쉬워진다. 나 찾기는 쉬우면서도 그래서 어렵다.
먼저 쉽게 읽히려면 쉽게 써야 한다. 전문 용어, 외래어 등을 되도록 쓰지 않는다. 중학생도 읽히는 글을 써라. 소리 내어 읽을 때 술술 매끄럽게 읽혀야 하고, 바로 이해가 되는 글이어야 한다.
두 번째, 확실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 일기와 같은 개인 기록과 독자를 전제로 한 글의 차이는 주제의 유무에서 온다.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나의 이야기에 그리 관심이 없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소재를 재배치한다면 일기도 의미가 있게 된다. ‘오늘 000을 했다’에서 ‘내가 000을 한 이유는’을 적어 보아라.
세 번째, 꾸준히 쓰고 많이 읽어라. 꾸준히 쓰고 책을 출간하는 모든 작가는 애독가였다. 읽으면서 수많은 영감을 얻어 왔다. 세상에 온전한 창작물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모두 빚진 자이다. 그러나 읽기만 하면 안 된다. 쓰기도 꾸준히 해야 한다. 한번 책을 출간한 작가라도 꾸준히 쓰지 않으면 실력은 늘지 않는다. 글쓰기도 책쓰기도 꾸준히 해야 성장한다.
네 번째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해라. 시인은 사소함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들풀 하나에도 감탄하며 그 이름을 기어코 불러내 존재를 살리는 이들이다. 일상을 관찰하며 오감을 열어 기록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생각보다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SNS를 활용해라. SNS는 글쓰기 훈련소이다. 글을 쓰다 보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하고 싶다는 표현이고,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였을지라도 인간의 본질 자체가 세상과 고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찾기는 결국 세상으로의 부르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공간이기에 SNS는 나를 꺼내 놓는 훈련소이며, 내 글을 시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글을 쓰며 자신을 찾아갔고, 쌓인 글들을 책으로 출간하며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도전과 의미를 건네주는 삶을 살고 있다. 나의 글을 알리고 소통할 수 있는 SNS 플랫폼을 꼭 활용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