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에 관한 단상
우리는 시계가 왜 필요할까요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서? 정확한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하루를 살기 위해? 시계가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시계 밖의 시간을 사는 삶을. 옛날 우리 선조들은 해시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어떻게 약속을 하고 만났을까요. 그들에게 기다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우리에겐 가지 않는 시간을 죽이는 일, 남의 시간을 빼앗는 일, 누군가를 떠올리며 설레는 일 등이 될 수 있겠어요. 사실 시각에 따라 어떤 마음도 될 수 있는 거예요. 한 번쯤은 시계가 없는 시대의 낭만을 겪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왜 낭만적일진 몰라요.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사람과 그를 향해 달려갈 사람이 마침내 만났을 때 맞물릴 마음 조각들이 떠올라서 일까요.
시계는 어쩐지 틱톡 소리를 내며 내 옆에 조곤조곤 재촉하는 비서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너무 딱딱하고 어쩌면 강압적이기도 해서 멀리 하고 싶어지죠. 시계는 내게 무자비한 존재이기도 했어요. 어느 한시도 기다려주질 않았으니까요. 늦었다며 내가 헐레벌떡 뛰어도 한 초도 늦춰주거나 기다려주지 않죠. 그래서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몇 분씩 일찍 도착해요, 초침에게 쫓기지 않으려고요. 그럴때면 절대 굽히지 않는 시계에 대고 시계와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에서 내가 이겼다 하고 도발하는 느낌이 들어요. 오늘은 네게 쫓기지 않을 테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죠.
시계로부터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계는 내게 딱딱하고 강압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그게 빙글빙글 끝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꼭 무언갈 해야 할 것 같잖아요. 나만 멈춰있긴 안될 것 같아서요. 꽤 오랜 시간을 내 방에 매달려 있던 시계가 멈춘 날, 새 배터릴 넣어 연명하는 대신 보내주기로 했어요. 그 이후로 없는 시계 쪽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곤 했죠. 그게 3개월쯤 그랬다가 이젠 없이 사는 게 익숙해졌어요. 대신 손목시계와 휴대폰이 그의 자리를 대신했죠. 시계 없이 사는 삶은 자유로울까요? 난 보다 자유롭단 느낌이 들어요. 진짜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가 고개를 돌리는 거의 모든 곳에 시계는 꼭 있어요. 노트북 화면 핸드폰 화면 손목 위 방 벽 건물 외관 타이머 알람시계 괘종시계 등등 그만큼 우리는 시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시간 약속이 중요해진 시대라서요. 반대로 시계가 없는 삶은 어떨까요? 혼돈과 혼란이 규칙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그 자리를 대신하겠죠. 그러다 나처럼 점점 시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될지도요. 기다림의 미학을 알게 되고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얼마나 채울지 고민하게 될지도요. 좀 더 본능적인 생활 루틴에 따라 살아가게 될 수도 있어요. 졸리면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모래시계도 시계가 될 수 있고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시계가 되어줄 수도 있고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이 시계가 되어줄 수도요. 아마 계속 움직이는 것이 시계를 대신하겠죠? 약속된 만남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시계를 대체할, 무언가를 찾을 거예요. 고요한 이 새벽이 언제 끝날지 몰라 더 소중하게 느껴질 거예요. 온전히 내 손아귀 안에서 통제 가능한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혼자 남겨진 새벽이 그래서 가장 낭만적이에요. 난 요즘 무언갈 할 때 핸드폰을 자주 꺼둬요. 시계를 본다고 든 핸드폰에 온 알람을 확인하느라 어느 순간 30분 정도는 기본으로 지나가 있거든요. 집중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에요. 꽤나 효과적이에요. 한낮에도 나의 새벽을 만드는 방법이죠.
시계가 멈추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예요. 버려지거나 연명되거나. 단두대에 선 사형수의 마음과 같을 거예요. 멈추면 존재 가치를 잃게 되니까요. 사람도 그럴까요? 사람도 멈추면 죽나요. 사람이 오랫동안 멈춘다는 건 존재가치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어쩌면 영혼이 죽었다는 말로 대체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멈춤에 멈춰있지 않도록 살아가면서 몸이든 마음이든 움직여야 해요. 힘닿는 곳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