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먼길을 가고 후회 없이 돌아오도록
한때 내가 떠올린 소설의 주제는 남들보다 행복하지 못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반적인 경우에 비하여 100분의 1만큼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희귀 병에 걸렸다는 설정이었다. 그런 아이디어는 아쉽게도 내 경험에서 나왔다. 나는 100분의 1만큼의 행복만을 느낄 수 있다. 미각을 잃은 요리사처럼, 후각을 잃은 조향사처럼.
긴 연휴 끝에는 항상 공허감이 찾아온다. 요즘에는 즐거운 경험도 몸에 닿아 흘러내리는 느낌이 든다. 노래들은 귓바퀴를 맴돌다 목 뒤로, 어깨너머로, 그러다가는 바닥으로 뚝 떨어져 버린다.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당최 들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쓴다면 내가 주인공인 소설일 테다. 슬프게도 누구보다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래 기다리던 여행의 다음날은 급하게 찾아온다.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감각이 올라오기도 전에 나는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있다.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더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이젠 먼길을 가기가 무섭다. 만남보다 헤어짐이 무섭다. 나는 냉랭한 내 삶이 잠시나마 따뜻해지면, 내 평생이 따뜻하다고 착각해버리는 아둔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절체절명의 행복을 찾아 일에도 사랑에도 돈에도 모두 매진해봤으나 그 어느 것도 답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운명적인 사랑도 좋다. 낭비를 일삼는 생활습관도 더욱 좋다. 그렇지만 어딘가 외롭다. 나는 100분의 1만큼 행복한 주제에 남들보다 100배 외롭다. 내 밤은 그래서 그만큼 길다. 내 밤은 베어내어도 끝이 없다. 이 불합리를 소리치다 보면 날이 샜고 해가 떴다.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100분의 100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겨우 1일 테지만, 그래야 고작 남들이 느끼는 만큼이겠지만, 내가 그 1만큼을 위해 기꺼이 먼길을 가고 후회 없이 돌아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밤이 짧아서 꿈을 꿀 시간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침내 행복해서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라며 안일하고도 절박한 주문을 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