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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Apr 18. 2022

제일 푸른 나무 아래에서 만나

내 모든 시제의 사랑들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입에 익어서 말버릇과도 같게 되었지만, 마음은 무뎌지지 않아 쉽게 적적해져. 꽃이 피면 핀다고 지면 진다고 슬퍼하다 또 봄을 보냈는데, 이번 봄은 내년에 어떻게 기억될까. 당최 아름답지 않던 어제로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어지는 일. 그런 것들이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어.


 사심 없이 어깨로 떨어지던 벚꽃도 금세 안녕. 봄이 오면 반드시 이뤄내리라 이뤄지리라 단풍에 걸어둔 소원들은 누가 다 물어갔을까. 무감각한 전신주와 쏟아지는 유성우가 함께 하늘을 채우는 늦봄에는, 가끔 부는 찬바람에도 허둥대고는 했다지. 안 하던 투정을 하기도 했고.


 언젠가 습한 날의 가운데에서는 추억에 허우적대며 차라리 건조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 빌었고, 길거리의 적목련 꽃잎처럼 나는 결국 말라버렸어. 깊게 숨을 쉬어도 스치기만 할 뿐 내 마음에도 타인의 마음에도 도통 가닿지를 않네. 이렇게 된 나를 용서해줘.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나를 용서해줘.


 곧 여름이 올 테고, 우리가 오랜만에 만났었던 그날들이 돌아와. 제습, 제습. 우리 무미건조해져서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와 같은 질문은 금세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우리의 오늘이 오늘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존재할 수는 없을까. 봄비 뒤의 싹을 보게 된다면 우리 꼭 푸르른 여름만을 떠올리자, 꽃이 만개했던 봄은 말고.


 해가 지금보다 더 길어지는 날 오후 일곱 시 반이 오면 후미진 골목에 앉거나, 몇 년 전 자주 가던 분식집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야기하자. 매미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핑계로 귀를 꼭 막고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지금을 바라보자. 깊게 잠수한다면 물맛을 느껴보자.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사랑하는 사람들아, 혹은 사랑했거나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아. 꼭 정해두지 않더라도 때가 오면 늦지 않게, 제일 푸른 나무 아래에서 만나. 나는 여전히 바보 같은 모습으로 품이 남는 옷자락을 보이며 인사할 테니, 너희도 무구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줘. 돌아가고만 싶은 사람들끼리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오늘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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