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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31. 2024

생일을 두 번 맞는 마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89

생일 전날 저녁에도 당일 아침에도 엄마는 몇 번이고 강조한다.


"꼭 미역국 끓여 먹어. 끓여줄 사람 없으니 스스로 끓여서 먹어."

한말 또 하고 또 하면서 엄마는 전화를 끊는다. 본인이 해줄 수 없다는 미안함이 배어있는 말이란 걸 안다. 이 나이 먹은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줄 늙은 엄마는 많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음력 생일.

엄마가 평생 기억하는 내 생일.

몸과 마음에 새겨진 엄마가 기억하는 내가 태어난 날이다.

중복이 지나고 말복이 오기 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더위에 엄마는 나를 낳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산후조리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선풍기도 없이, 시골에서 올라와 한 칸에 살면서, 첫 자식이라고 나를 낳고 힘들고 서러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본인은 못 먹었던 귀한 미역국을 내 생일이면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땀 흘려가며 소고기가 가득한 뽀얀 미역국을 정성껏 끓이셨다. 그렇게 받기만 했을 뿐, 엄마를 위해 미역국이 주인공인 상을 차려진 못했다. 한마디로 생각 없이 살았다. 학생 때는 학생이라, 직장인 일 때는 직장생활에 바쁘다고, 어설프게라도 끓인 적 없는 무심한 딸이다. 결혼 후 내손으로 음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밥을 지어드린다. 그마저도 자주는 못하는데, 해도 본인의 솜씨에 턱없이 못 미쳐 맛없다고 한입 들고 수저를 내려놓으니 부끄럽고 때로는 야속하기까지 하다.


엄마가 챙겨주는 음력 생일은 어쩐지 마음이 무겁다. 홀로 여생을 병원에서 보내시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식을 낳아보니 생일은 낳고 기르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감사해야 하는 날이다. 음력생일날이면 엄마의 축하전화를 받고 시간 나는 대로 요양병원으로 달려가 헛헛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워드리고 온다. 딸의 생일날, 과거를 추억하며 혼자 멍하니 서글프게 앉아 있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양력 생일을 따로 만들었다.

엄마의 딸로서가 아닌 나를 위해 가볍게 보내는  정했다. 5년 전, 남편과 아이들이 매해 바뀌는 력생일은 챙기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어난 날의 양력을 찾아 그날을 두 번째 생일로 삼았다. 엄마인 내 생일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바꿨더니 효과가 좋다. 생일이 다가올 즈음, 어떤 케이크를 고를지 딸이 미리부터 묻는다. 생일 예고처럼 설레어 기분이 좋아진다. 미역국은 마음 내키는 대로 끓일 때도 있고 그냥 넘어갈 때도 있다.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줘서 행복하다는 아내도 있지만 우리 집 남편은 본인의 생일이든 애들 생일이든 미역국의 의미와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어 나도 바라지 않는다. 하루를 편안하게 보낸 뒤 함께 저녁을 먹고 케이크에 촛불하나 불며 장난을 친다. 선물을 받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없다. 나를 위해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별 탈 없이 생일날을 보낸다는 게 중요하다. 


엄마의 딸로 아이들의 엄마로 생일을 두 번 맞는다.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둘로 나누니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남은 한쪽 걱정을 덜하게 되었다. 두 번 태어난 것처럼 1년에 이틀을 생일날로 보내기로 한 결정이 만족스럽다. 나이 들면 생일이 아무 날도 아니라고들 하지만 내 마음은 아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날이 아니라 더위속에서 땀 흘리며 태어난 나의 출생과 성장을 기억하며 축하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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