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여드름 꽃 핀 얼굴, 혹시나 지나친 곳은 없나 초집중하며 꼼꼼하게 연고를 발라주는 아빠.
요새 자기 전 풍경이다.
여드름 많이 나는 건 아빠 닮은 거예요?
엄마는 별로 안 났다고 하던데, 엄마 닮지!
또 왜 닮은 거야?
속상하게도 아들 얼굴은 여드름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무너져 내렸다. 2년 전부터 한두 개씩 나오던 여드름은 때를 놓치지 않고 아들을 괴롭히고 있다.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의 영향으로 피지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사춘기 청소년의 85퍼센트, 여학생보다는 남학생에게 도드라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여드름이 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심한 사람은 유전적 영향을 무시 못하는 것 같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여드름 공격에 3대에 걸쳐 괴롭다. 물론 유전적 요인 말고도 스트레스, 지성화장품, 땀 과다 분비, 피지 분비를 촉진하는 음식 섭취(고지방함량 식품, 인스턴트식품 등)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육류 섭취를 좋아하는 아들이 핑계대기에 유전적 요인만큼 더 강력한 근거는 없다.
누구보다 여드름 최대 피해자인 남편의 잔소리도 안 통했다. 청소년기 여드름 치료가 없었던 그 시절, 남편은 빨갛게 올라오다 곪은 여드름을 짜다가 흉터를 그대로 방치했다. 얼굴 전체를 덮어 고통스러워하다 피부과 시술을 통해 그나마 지금의 상태를 만들었다고 한다. 본인의 경험을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주고 싶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 볼 때마다 신경 쓰라고, 세안제를 써서 꼼꼼하게 세수하라는 말을 했다. 6학년이 돼서는 피부과를 다니라고 했다.
피부과 진료를 받고 복용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처음이 아니다. 뭐든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동안 매일 밤 연고 바르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저 얼굴만 대고 있으면 내가 발라줬지만, 초반에 몇 번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남편을 동원했다. 엄마 말보다는 아빠말을 잘 들으니 아빠 찬스를 쓰기로! 꼼짝없이 아빠를 연고 담당자로 지정했다. 아들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애틋한 관심을 가져보라는 의도와 함께.
"엄마 닮았으면 덜 났을 텐데."
"아빠한테서도 닮은 게 있어야지. 엄마 눈 닮아서 드림렌즈 끼고 있잖아. 엄마는 렌즈 끼고, 아빠는 연고 발라주고, 부모가 하나씩 맡았네."
부모에게서 보기 좋은 유전자만 쏙쏙 빼와 테트리스 마냥 조합해 자식에게 발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미래에는 유전자조합으로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그런 세상이 되면 마냥 좋을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 비하면, 의료기술의 발달로 근시 억제와 여드름 관리, 키 성장까지 가능하니 물질적인 조건만 갖춰진다면 웬만한 건 다 보완하는 세상이다. 그만큼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니 자식 키우기가 어느 때보다 더 부담스러운 세상인 것도 맞다. 안과, 피부과, 소아과 등 성장기 자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 북적인다. 내 자식은 나보다는 낫게 키우고 싶다는 욕심에 오늘도 우리 부부는 렌즈에, 연고에, 취침 전 의식을 치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