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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Nov 20. 2024

졸음 쉼터에서 만난 사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48

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졸음 쉼터라는 표지판을 무심히 지나쳤다. 휴게소면 휴게소지, 쉼터에는 1도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멈춰 서야 할 정도로 졸리지 않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는 곳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런 우리가 처음으로 졸음 쉼터를 찾았다. 지난주 남이섬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나 쉼터를 찾아야 했다. 아무래도 출발 전 마신 커피 한 잔이 우리를 쉼 없이 집까지 순순히 보내줄 것 같지 않았다. 4시 전에 출발했음에도 예상보다 빨리 차가 가다 쉬다를 반복하자 어쩐지 슬슬 불안해졌다. 한 시간 반정도 지나서 화도 졸음 쉼터를 만났지만 이미 앞, 앞차부터 여성들이 먼저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도 정체인가. 멀리서 봐도 쉼터에는 차가 가득해 보였다. 주차할 자리를 찾기 전, 나도 앞선 사람들처럼 차에서 내려 화장실을 찾았다. 내 앞에 30여 명쯤은 서 있었다!


헉. 줄이 너무 길었다. 딱 봐도, 여성들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딜 가나 여자 화장실 줄은 참 길다. 맨 뒤에 서서 보니 남자 화장실 쪽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여성들 일부를 차례대로 남자칸으로 보내고 있었다. 같이 여행온 여성들을 배려해 빨리 일을 보고 갈 작정으로 본인이 직접 나서서 남자칸을 이용할 수 있게 교통정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분 정도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남자 화장실을 통제하며 줄을 선 남성들을 뒤로하고 여성들이 먼저 이용하도록 하고 계셨다. 그렇게 남일처럼 살짝 관찰자처럼 지켜보는 사이, 남편도 차를 데고는 줄을 섰다. 갑자기 그분 말소리가 들렸다.


"여기 남자칸 쓰실 분 오세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나갔다. 호의에 화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반사적으로 나섰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 앞에 선 두세 명의 아주머니들과 함께 나도 남자칸으로 "쌩"하고 들어가 뒤도 안 돌아보고 얼른 일을 보고 나왔다. 남편은 여전히 다른 남성들과 같이 줄을 서 있었다. 더 이상 못 참겠다고, 그만하라고 여기저기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도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더 이상 못 버티고 멈추셨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도 먼저 차 안으로 돌아왔다. 내가 거의 막차였던 것 같다. 


"엄마, 어떻게 아빠보다 먼저 왔어요?"

"보고 있었어? 어떤 아저씨가 여자화장실 줄이 길다고 남자화장실 쓰라고 했어. 급한 것보다, 너 혼자 차에 두고 와서 걱정돼서 부끄러워도 얼른 화장실 갔다가 왔어."

"엄마, 남자 화장실은 몇 칸이에요?"

"응, 소변기가 몇 개 있었고, 두 칸인가 있었던 거 같아."


생전 처음 생각지 못하게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 짧은 경험을 딸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왔다. 


"저분 덕분에 빨리 화장실을 썼어. 줄이 엄청 길었는데."

"뒤에서 남자들 불만이 많았어. 오지랖이지."

"글킨해도, 가끔, 저런 분들 덕분(?)에 길고 긴 여자 화장실 줄이 짧아지잖아. 난 선행으로 생각할래. 진짜 얼굴 두꺼운 아줌마가 된 거 같아. 남자화장실에서 일 보고 나오고. 내가 살아야 되니, 부끄러움이란 것도 순간 사라졌어."





그렇게 뜻밖의 화장실 이용 후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차가 너무 막혀 어느새 해는 지고 캄캄한 밤이 된 것처럼 어두웠다. 집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쉼터에 들르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괴로웠다. 졸음을 깨는 것보다 방광을 비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 중간에 위치한 졸음 쉼터는 그렇게 나에게 존재감을 입증했다. 특히 교통정리하던 그 아저씨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지랖이든, 선행이든, 그분의 행동을 받아들인 나는, 생리적인 욕구를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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