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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Nov 18. 2024

남이섬에서 만난 인생 단풍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습관 247

10여 년 전부터 매년 가을, 남이섬을 찾았다. 우리만의 가을 의식이라고 할 만큼 계절의 낭만과 풍경을 감상하기에 족스러운 곳이다. 늦더위에 예년보다 단풍 시기가 늦어지는듯해 늑장을 부렸더니만 오히려 진한 가을 맛과 멋을 보는 행운을 선물 받았다.


새초롬하게 흐릿한 아침. 남이섬 주차장도 유람선도 평년과 달리 인파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노오란 은행나무길을 기대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적은 이유가 있었다. 앙상한 은행나무들은 어느새 푹신한 노란 카펫 위에 서 있었다. 너무 늦게 왔나 싶었다. 아쉬운 건 우리뿐이 아니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쌓인 눈을 끌어모은 듯, 은행잎을 뿌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은행잎 비를 뿌리고 있는 모습에 웃음도 나고, 안타깝기도 했다. 욘사마를 찾아 헤매던 일본인 관광객들 대신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이 대다수였다. 






대신 인생 단풍을 만났다.

여기도 저기도 단풍나무가 이렇게나 많았었는지 남이섬을 다시 보게 되었다.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테마별로워낙 잘 꾸며진 곳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한가한 숲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제 색깔을 끝까지 발색해보지 못하고 말라 사그라져 버린 단풍잎도 있었지만 대부분 새빨간 고춧가루처럼 곱게 물든 색감을 드러냈다. 홀린 듯 마음을 빼앗긴 채 손과 눈은 사진 찍느라 바빴다. 붉은 수채화물감으로 칠한 듯 주변은 쿵쿵대는 심장에서 열정을 뿜어내는 듯했다.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은 붉은색으로 눈과 마음에 색을 입혔다. 여기까지 오느라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수고했다. 어쩌면 올 한 해도 무탈하게 가족과 함께 가을을 맞이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자연의 변화에 발맞춰 가는 내 신체적 변화가 때로는 아쉽지만 자연의 일부로 죽지 않고 살아 숨 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간다. 길게 느껴지던 지난여름도, 5년이란 암환자로의 시간도 어느덧 지나 내 일부로 내 속에 남아있다. 암 경험자로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이 가을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살아만 있자에서, 다시 가슴 뛰는, 빛나는 삶 속으로 돌아오게 되어 한없이 벅차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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