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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Nov 27. 2024

첫눈 온 하루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51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는가 싶더니 점심때가 지나도 쉼 없이 내렸다. 눈이 펄펄 쌓이는 것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에 없었다. 연신 창밖을 내다봤다. 운동 후 걸어도 봤다. 11월 중 서울과 수도권에 16-18센티라는 기록적인 적설량이라고 했다. 출근했더라면 발을 동동 굴렀을 그런 하루였다. 집이 일터가 되었기에 예전과는 체감하는 온도가 달라졌다. 그저 눈이, 올해의 첫눈이라는 그 의미 때문인지 설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새 어린애들만큼은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하얗게 가지에 내려앉는 눈꽃은 거부할 수 없었다. 예년과 달리 단풍을 덮은 눈꽃은 신비하면서도 색다르게 이상기후의 위기감마저 불러일으켰다. 




학교에서 오자 마자 들뜬 딸아이는 부랴부랴 팬트리에 처박혀있던 소형 트리를 꺼내 장식하느라 손바삐 움직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히 트리에 관심이 시들해 엄마에게 말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엄마가 주말에 꺼내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어. 

오늘같이 눈 내리는 날에는 트리가 있어야 낭만적이에요!

제가 엄마 보여주려고 먼저 꺼냈어요. 예쁘죠? 역시 겨울엔 트리가 있어야 해요!




작은 트리에 조명을 켜고 음악을 틀었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노래까지 흘러나오니 첫눈 온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딸과 둘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잠시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빠졌다.  

머라이어 캐리 AII I want for Chirstmas is You, 아리아나 그란데 Santa Tell Me, 시아 Snowman


내 마음의 설렘 뒷면에는 걱정 그림자가 어느새 조용히 자리 잡았다. 그렇게 아이처럼 눈을 느끼다가 현실 어른으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느라 애쓴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고, 쏟아지는 눈에 진흙처럼 질퍽해진 도로를 보니 퇴근길이 신경 쓰였다. 





오후로 갈수록 폭설로 여기저기서 안내문자는 울려대고 집 밖에선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이 한창이었다. 학원수업은 비대면 수업으로 대체되어 아이들이 집에 있었다. 웅웅거리는 제설기 소음 속에 집 밖에서는 흥분한 아이들이 눈을 굴리고 던지며 눈과 노는 소리가 아파트에서 울려 퍼졌다. 남편은 평상시보다 출장을 마치고 일찍 출발했음에도 가다 서다, 앞옆에서 미끄러지는 차들을 뚫고 3시간 걸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피로에 지친 남편까지 모두를 집안으로 일찍 모이게 한 대단한 눈이었다. 주중이지만 주말 같은 느낌으로 식구들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올해의 첫눈은 폭설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찔끔 오다마는 첫눈의 아쉬움을 보상하듯, 그동안 못다 준 눈을 한꺼번에 넘치도록 깊은 곳에서 파서 주었다. 그만해도 된다는 거절을 못 듣고 그저 주기만 한 하루였다. 받기만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얼어붙어 거북이가 될까 미리부터 아침이 걱정스러웠다. 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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