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50
병원에서 입을 경량 조끼를 사러 근처 몰에 들렸다. 여기저기 세일이라고 광고하길래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필요한 물건을 찾으러 다녔다. 목까지 올라오는 조끼와 브이넥인 조끼를 두고 선택하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목까지 올라오는 조끼가 좀 더 두툼한데 올라오는 거 살까? 아님 브이넥으로? 지난번에 목까지 오는 것은 싫다 해서."
"올라오고 안 오고는 상관없고, 자크 안 달린 걸로 사."
"자크 안 달린 거? 똑딱이로?"
"왼손만 쓰니까 자크 있는 건 힘들어. "
"아..."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엄마의 상황을 뼛속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순간 뜨끔했다. 어떻게, 아직도 왼손만 겨우 움직이는 편마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을까? 죄스러웠다. 엄마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하루하루 산다는 사실을 보지 않고 따로 살아서 그렇구나, 멀쩡하게 두 손을 사용하는 내 주변 일상이 너무 익숙해서 그렇구나, 엄마의 고충을 잊고 살다가 이렇게 가끔씩 반성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실수했다. 아픈 데를 후벼 판 듯, 미안했다. 아무리 피를 나눈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결국은 다른 몸인지라 그 고통을 고스란히 전부 알 수 없다는 서글픈 결론에 도달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마음 아프다는 건 가슴을 촉촉하게 만드는 고마운 일이기는 하나 실은 반쪽도 못 되는 공허한 말인지도 모른다. 몸소 아파보고서야 알았다. 본인만 아는 그 고통을. 이제는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채울 수 없는 공간을 인정한 채 조용히 듣거나 등을 쓰다듬거나 손을 잡아준다. 애써 불필요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니까.
지퍼대신 똑딱이 단추가 달린 패딩조끼를 찾으러 몰을 바삐 걸었다. 지퍼가 달린 패딩 조끼가 당연하단 듯이 살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세상에나, 똑딱이 단추가 달린 조끼가 귀했다. 병원에서 입을 조끼라 5만 원 안팎을 예상하고 쇼핑을 시작하면서 유니클로, 지오다노 같은 곳을 먼저 들렀다. 없었다. 지퍼와 같이 단추가 달린 아우터로 입을 두꺼운 패딩조끼만 있었다. 디스커버리와 콜럼비아 같은 곳은 멀찍이 보고 지나쳤다. 그러다가 캉골 매장 앞에 걸린 똑딱이 단추 조끼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여기 있어요"라고 손짓하듯이 내 눈에 바로 꽂혔고 블랙에 XL사이즈까지 완벽했다. 체구가 큰 엄마는 남성 사이즈를 편하게 입는다. 점원에게 부탁해서 피팅해 달라고 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은 듯, 매우 만족스러웠다. 오리털에 가볍고 따뜻해 보였다. 옷값은 신경 쓰지 않고 주저 없이 얼른 사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고, 또 한 번 반성했다.
주말에 엄마에게 입혀드렸다. 그동안 먹을 것만 챙기고 막상 그깟 제대로 된 패딩조끼하나 먼저 알아서 등에 걸쳐드리지 못했다. 하나만 하고, 왜 두세 가지는 동시에 못하는지. 아직도 보호자로서 부족한 딸이었다. 철마다 자식들 옷은 사주면서 병원생활하는 엄마에게 자주 옷은 못 사드렸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말했다.
"내가 돈이 많으면 너한테 다 주고 싶다."
"아닐걸. 보통 아들한테 주고 싶어 하니 엄마도 아들 줄 거 같은데..."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런 쓸쓸한 말을 주고받으며 엄마 옆에 잠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