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지구력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55
건강관리에 신경 쓰시는 어머니가 가끔 카톡을 보내신다. 식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관심 없는 딸대신 동병상련으로 건강에 예민한 며느리에게 공유하고 싶은 정보를 보내신다. 이번에는 "암세포를 죽이는 음식-미역, 고구마, 강황의 효능"에 관한 글을 전달해 주셨다. 암을 만나면서 먹거리에 대한 기본 정보는 찾아본 터라 보통 새로운 정보는 없지만 어머니의 관심과 염려에 감사하며 받는다. 카톡을 못하는 엄마는 전화통화 때 말로 하시고, 어머니는 글로 보내신다.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답장 대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샐러드 역사를 푸셨다.
20여 년 전, 아버지는 당뇨 진단을 받으셨다. 채소를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그날부터 샐러드를 밥상에 올리기 시작하셨다. 지금처럼 샐러드에 관한 영상이나 책이 있었던 게 아니라 동네시장에서 눈에 띄는 채소를 사서 다듬고 데쳐서 한 접시를 꾸리셨다. 브로콜리, 양파, 당근, 양배추를 채 썰고 야쿠르트 아줌마에게서 산 요거트를 드레싱으로 뿌려드셨다. 한동안 사 먹다 보니 달기도 할뿐더러 비싸단 생각이 들어, 딸에게 말했더니 요거트 만드는 기계를 사 보냈다고. 그날이 플레인 요거트를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 첫날이 되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흰 우유 한팩에, 마시는 요구르트 한병 넣고, 하루 숙성시키면 담백한 요거트 완성. 그렇게 두 분은 매일 두끼 샐러드를 챙겨드셨다. 결혼 초반, 며느리에게도 몇 번 어머니 샐러드를 주셨다. 채친 당근과 양배추, 브로콜리, 양파 위 요거트 드레싱. 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샐러드는 언젠가부터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두 분의 건강지킴이가 되었다. 호두와 아몬드를 올리고, 가끔 기름을 제거한 오리고기나 소고기까지 다져서 드신다고. 파프리카는 왜 안 드시냐는 질문에 끝맛이 씁쓸하니 뺐다는 말씀도 하셨다.
한두 번, 1-2년이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채소 몇 가지 담은 단순한 샐러드이니 쉽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일 년 365일 중 집을 비우는 날을 제외한 360일, 20여 년을 변함없이 드신다는 말씀에 소리 내서 감탄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칭찬하는 어른이 된 듯, 평소보다 목소리를 키워 어머니에게 칭찬샤워를 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 대단하세요! 귀찮을 때도 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만드신다니요!"
"내가 요리를 잘 못하잖아. 이건 쉬우니까, 건강해진다니까, 그래서 힘들다는 생각 없이 그냥 하는 거야."
장바구니에 채소를 담는 건 쉽다. 그런데, 막상 냉장고에서 꺼내 다듬고 데치는 작업은 귀찮게 느껴진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라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일단 손질해 두면 며칠은 먹는다. 그렇게 한 고개를 넘기면, 매일 똑같은 채소를 먹어야 하는 두 번째 고개에 이른다. 싫증 날 법도 한데, 그냥 드신다는 어머니. 존경스러웠다. 일단 정하면 옆을 보지 않고 직진하는 어머니는 지금까지 정해놓은 방식대로 흔들림 없이 실행만 하셨다. 나도 샐러드를 좋아해서 식탁에 올리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안 먹고 넘어간다. 난 아직 멀었다. 그녀의 끈기는 금메달감이었다.
지구력이란 단어가 나를 붙잡았다. 오랫동안 버티며 견디는 힘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끈기, 인내와 유의어로 쓰인다.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거다" 싶으면 계속하는 힘, 그게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변하게 한다. 일상의 루틴이 일생의 루틴이 되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생각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크고 작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만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중요하다. 일시적인 화려한 것을 쫒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만큼 단순한 행동을 지속하는 힘을 나도 키우고 아이들에게도 키워주고 싶다. 또한 아이들의 엄마로서 지구력을 키워야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희로애락을 던져주는 아이들을 마주하며 '좋았다, 힘들었다'의 뒤섞인 감정과 동거하는 엄마로서의 속 근육을 키울 때라고. 인내심과 사랑으로 자녀를 바라보고 응원할 수 있는 어머니로 살아가기 위해 어머니의 샐러드를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