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화강고래 Dec 05. 2024

다 알지만, 어렵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56

올해 3-4번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다. 최근 모임에 나온 친구 한 명이 몰라보게 살이 빠져 있었다. 블랙 롱코트를 입은 친구의 모습은 여름보다 눈에 띄게 홀쭉해 보였다. 자리에 앉아마자 우리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살 빠졌네! 어떻게 뺀 거야?"

"그냥 빵하고 과자 끊었어. 저녁은 안 먹고, 밥 양을 반으로 줄이고 채소를 먹었더니 살이 빠졌어. 그래도 고등학교 때보다는 10킬로를 더 빼야 해."

"빵과 과자. 그게 문제야 문제."

"맞아. 다 알고, 참 쉬운데 제일 어려워."

"어떻게 갑자기 다 끊었어? 

"유방 검진을 했는데 뭐가 있다길래 얼른 다 끊고 살을 뺐어. 다행히 유방검사는 이상이 없고 정기검진만 하랬어."


주변에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특히 운동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살을 빼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돈보다 강한 의지로 인바디 측정기를 사고, 살 빠진다는 음료를 사서 마시며 노력한다. 그런데 문제는 밀가루 음식의 대명사인 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빵순이라는 점이다. 집에 빵을 사다 놓고 오며 가며 먹는다고 한다. 본인들도 안다. 빵을 끊으면 살이 빠질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못 끊겠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나도 한때 빵순이에 가까울 정도로 빵을 좋아했다. 어학연수 때 미국에서 처음 맛본 크림치즈 베이글에 빠져 매일 하나씩 먹을 정도였다. 바싹 구운 베이글에 부드럽게 발린 크림치즈의 식감을 좋아했다. 베이글과 함께 머핀도 즐겨 찾았다. 빵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식비를 아껴보겠다는 생각에 마트에서 1주일치 빵을 사다 매일 먹었다. 행복한 순간은 잠깐, 1시간 후 배가 고팠다. 남는 건 원치 않는 살이었다. 5-6킬로그램이 순식간에 불었다. 식사대용으로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살이 찌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후 베이글과 머핀을 손에 잡는 횟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때의 베이글이 떠오를 정도로 요새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더 화려해진 베이글의 인기를 실감한다. 디저트 세상 속, 베이커리가 식당가를 점령한 듯하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의 인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먹을 것, 특히 화려하게 치장한 빵이 널려있는 세상에서 빵을 멀리하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왜 자꾸만 만들어대는지 원망스럽다. 살찌고 건강에 해롭다는 걸 아는데 왜 그리 부추기는지, 어마어마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곳곳에서 나를 유혹한다. 그래도 뼈아픈 경험덕에 둑 무너지듯 쉽게 굴복하지 않고 산다.


누구나 안다. 건강한 식습관, 운동, 적당한 수면이 기본적인 체중 조절법이라는 것을. 그런데 실천이 어렵다는 건 더 잘 안다. 하루아침에 병이 찾아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갑자기 모든 유혹을 칼로 자르듯 잘라내기란 불가능하다. 나 조차도 건강을 회복하면서 이따금씩 스멀스멀 피어나는 빛나는 빵의 유혹에 눈 딱 감고 넘어가줄 때가 있으니까. 괴로워하는 빵순이 친구들에게 아주 가끔씩 이야기한다. 갑자기 끊기 힘들 테니 조금씩 바꿔보라고. 우선 빵 소비를 줄이고, 동시에 참을 수 없을 때는 건강한 빵을 대용으로 먹으며 빵과 이별하는 시간을 늘려나가는 노력을 해 보라고. 


누구나 기본만 지키면 되는데, 그게 되는 게 사람 사는 같다는 생각이, 나이 들면서 점점 나를 자주 찾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