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39
졸업이다!
외치고 나면 어쩐지 시원섭섭하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가면 될 것 같지만 막상 때가 되면 성취감과 후련함 속에 아쉬움이란 것도 섞여 있었다. 좀 더 잘했더라면, 이제 끝이라니...
이번 졸업은 달랐다. 학교 졸업이 아닌 병원 졸업이었다.
매일 힘겹던 날들이 이제는 다이어리를 뒤적여야 생각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 지인은 엄마의 암 발병에 당혹해하며 이것저것 전화로 물었다. 안타까운 마음은 진심으로 넘치는데, 질문에 대한 세세한 답변은 가물가물 잊은 듯했다. 그때의 충격과 고통은 어느새 몸속에 녹아 흡수되어 버렸나 보다. 6년이란 시간이 그리 만들었을까?
난소암 수술 후 2년 전부터는 1년에 한 번 산부인과에서 추적검사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1시간 넘게 진료 지연이 발생했고, 진료실 앞 환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루함과 싸우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지고, 의사 앞에 앉았다.
1년 동안 잘 지냈어요?
진료를 시작하는 의례적인 인사말에 잘 지냈다는 짧은 대답을 했다.
조심스레 물었다.
항호르몬제를 페마라에서 타목시펜으로 바꾸었더니 건조증이 많이 사라졌어요.
원래 그런가요? 그런데, 다른 부작용이 있는 거 같아요.
아니. 부작용 없는 약이 어디 있어요?
이전에 비하면 약 바꾸고 많이 수월할 텐데. 그렇지 않아요?
음. 이제는 그만 와도 될 거 같아요.
사실, 타목시펜 부작용으로 다른 환자들은 자궁내막을 추적 관찰하지만, 본인은 그런 것도 아니고 맘 편히 복용할 수 있잖아요. 없으니 그냥 유방 쪽 진료만 보는 걸로 하시죠? 장기가 없는데, 더 이상은 하지 맙시다.
그렇게 6년 만에 산부인과 진료는 갑자기 막을 내렸다. "다시 보지 말자"는 어색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진료실을 걸어 나왔다. 1년 뒤 예약날짜를 잡는 일은 없었다. 기분이 묘했다. 후련했다. 끝이구나. 때가 되면 되는구나. 5년간 복용했던 그 무시무시한 항호르몬제를 끊고 나니 몸이 좋아진 걸까? 뼈와 질 건강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줬길래, 마치 둘의 기능이 조금이라도 회복된 것처럼 느껴질까? 이 또한 항호르몬제의 영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씩 회복된 마냥 갑자기 없던 힘이 솟는 착각에 빠졌다. 혼자 기분 좋게 걸었다. 졸업, 하나씩 졸업할 수 있겠단 희망의 깃발이 눈앞에 펄럭이고, 잘 살아보라고 나를 묶고 있던 족쇄 하나가 풀린 듯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