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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만 몰랐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0

by 태화강고래

과자 택배가 올 거야.

수입과자인데 사무실서 먹어보니 괜찮아서 시켰어.

이름이 뭔데?


그렇게 궁금증만 남긴 수입과자.

이름도 일급비밀이었다.

하루이틀 지나는 동안 애들과 가끔 얘기했다.

아빠가 주문한 수입과자가 통관됐으니 곧 도착할 거래.


애들보다 어쩌면 내가 더 궁금했다. 대체 무슨 과자길래 뜸을 들이는지...

평소에도 애들처럼 과자와 음료를 즐기는 남편이 가끔 걱정스울 정도인데 무슨 과자를 시켰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홀로 외롭 건강주의를 외치는 상황에서 자업계 신상이라도 나타났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나도 참...


50넘은 아빠 중에서 단연 상위 5프로에 속한다고 자부할 만큼 남편은 트렌드를 잘 안다.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소식을 서로 나누는 것은 기본이고 아들과 정치 경제 사회 테크에 걸쳐 다양하게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인가 아들이 진지하게 우리 집에서 순위를 매겼다.

아들 자신. 동생. 아빠. 그리고 엄마순으로 최신 트렌드를 인지한다고. 그런데 자신들과 아빠는 갭이 거의 없는데 아빠와 엄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웃어넘겼지만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크게 개의치 않는 내 성적표였다. 딸이 듣는 음악으로 살짝 유행하는 분위기를 아는 정도니... 큰 관심 없이 살지만 그나마 식구들 덕에 아주 뒤처지는 정도는 아니니 괜찮다고 구차한 변명도 했다.


메시지 신호음이 울리고,


택배 왔어.

애들한테 맛보라고 해.


얼른 택배상자를 들여놓고 마치 나를 위한 깜짝 선물인 양 급히 어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 나 이거 몇 년 전부터 가끔 먹어요.

그래? 나도 십 년 전인가부터 알던 건데. 수입 라면땅인데.

아빠는 이제 알았나 보네.


그냥 "우리 다 아는 건데! 몰랐어?"라고 무안 주며 지나치기에는 그의 사랑이 아까웠다. 처음 먹다가 아이들 생각이 났다는데.


아들도 과자박스를 보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아빠가요? 이걸 몰랐다고요?

진짜요?

전 울산에 살 때부터 사 먹었는데. 문구점이나 무인가게에 가면 있어요.


기다렸다가 주말에 아빠 오면 그때 밝히자고 일단 마무리지었다.

에낙 라면땅이 이제야 남편 레이다망에 잡혔다는 사실에 과자를 볼 때마다 혼자 피식거렸다. 불량식품스러우니 당연히 몰랐겠지만 왜 웃길까?


주말에 온 남편을 보자마자 상기된 표정으로 셋이 이야기했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쿨하게 그냥 넘어가는 남편. 별로 놀라지 않는 표정도 역시 놀라웠다.


바삭하고 달콤하길래, 너희들 좋아할 거 같아 산 거니 잘 먹어!

다음에 봐서 또 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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