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6
정수리 한가운데가 우뚝 솟았다. 아들은 며칠 전 비교적 간단한 염증 제거 수술을 받고 꿋꿋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모자를 쓰자니 상처 부위가 눌려 아프다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지낸다. 학교와 학원에서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는 관심에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가리기에 급급한 엄마와는 차원이 다른 자존감을 가진 듯하다.
쑤시고 당기는 고통이 사라지고 나니 당분간 마음껏 씻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한여름이 지나서 다행이었다. 수술하고 며칠 후 살만하다 싶어지면 씻고 싶은 욕망이 확 올라왔던 기억이 났다. 아들은 그 정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수리 냄새가 나고 떡지는 머리를 못 감는다니... 150센티 이하의 초등학생 정도면 상처 부위를 피해 살살 감겨주며 씻겨줄 텐데... 그것도 옛말이니 불가능했다. 15세 사춘기... 2차 성징도 거의 다 끝났을 거라(?) 예측만 하는 건강한 아들의 몸을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의 생각은 이랬다. 물이 닿으면 안 되니 상처부위를 헤어캡으로 감싸고 아랫부분만 살짝 감겨주자는 것이었다. 샤워는 알아서 하니까.
퇴근 후 울산에 있는 남편이 전화상으로 말했다.
"머리 못 감는 사람들을 위해 물 없이 쓰는 샴푸가 있대. 그거 검색해서 한번 써봐."
"아 그래? 편리하겠다. 임시방편으로 쓰기엔. 들어본 것도 같네. 근데, 확실히 아들은 다르네. 내가 입원해서 일주일 넘게 머리를 못 감고 씻지도 못하고 있었을 땐 그런 얘기 없더니만..."
"아... 그랬나? 요새는 없는 게 없는 거 같아. 다 찾아보면 누군가 만들어 팔고 있으니."
"먼저 이야기 꺼냈으니 주문해 줘."
몇 분 후 친절하게도 사용 방법까지 캡처해서 보냈다. 자식은 역시 다르구나를 새삼 느끼며 남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새벽배송으로 몇 시간 만에 집으로 날아온 샴푸 아닌 샴푸를 봤다. 헤어 무스 같기도 하고, 클렌징 폼 같기도 한 제형이었다.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 키를 낮추라고 하고는 처음인지라 상처를 피해 머리카락에 발라줬다. 다행히 수술을 앞두고 짧게 커트한 덕분에 바르기가 수월했다. 약간 끈적이면서도 나쁘지 않게 발렸고, 사용법대로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니 5분-10분 이내로 끝났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다 간단히 감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는 수준에서 그냥 하는 나와 달리 검색을 통해 새롭고 나은 방법을 찾는 남편이었다.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없는 게 없고, 배송도 로켓처럼 빠르다. 누군가의 필요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측은지심으로 세상에는 물건이 넘쳐나는 듯했다. 참 좋은 세상에 사는 건 분명하다. 모르고 지나치지만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 얼마나 많을까? 헤아릴 수 없겠지만, 다 살 필요도 다 살 수도 없다. 소비의 수위를 조절하고 물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면, 이처럼 편리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즐길 수 있음을 누구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