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게임의 교훈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정재승 저, 열두 발자국 中
시차
"Hello. Sorry, I forgot to send the meeting invitation. Are you available at 10:30? That would mean 17:30 for you."
"Ok. I will attend at that time."
담당하는 파트의 협력사들이 주로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화상 통화로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시차'가 발생한다. 나는 퇴근할 시간인데 그곳은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더 시차가 발생하는 곳은 한밤중에 접속해야 되기도 한다.
처음엔 영어로 회의를 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한국 사람은 한국어로, 독일 사람은 독일어로, 중국 사람은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가장 편할 테지만, 회의는 공통의 언어인 영어로 진행된다. 듣기와 말하기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회의 내용을 잘 캐치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익숙해지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언어는 사람들 간에 소통을 도와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손에 익지 않은 도구는 쓰기 어려운 법이다.)
회의 준비
퇴근할 시간이 되면 뇌에 반응이 온다.
'이제 퇴근시간이야! 자, 어서 노트북 끌 준비를 해!'
의식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이 생각은 마치 점심시간이 되면 배고파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잠시 통제하고 회의 준비를 한다.
모든 회의가 그렇겠지만 특히 퇴근 시간 무렵에 시작하는 회의는 더욱 집중을 한다.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어떤 이슈를 어떻게 풀어갈지 미리 생각한다. 그리고 예상되는 결말과 회의의 방향을 정리해 본다. 많은 시간을 쏟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미리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회의 시간이 단축된다. 그리고 회의의 결과도 좀 더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그날 회의는 정말 빨리 끝날 수 있다. 이슈들을 콕콕 짚어가며 하나씩 해결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느슨한 태도를 보이거나, 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이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 그런데 그게 뭐를 말하는 거예요?"와 같은 질문을 하면 짜증이 난다.
'그런 건 미리 알아보고 오라고요...!'
사실 퇴근을 너무 늦추고 싶지 않을 때는 회의를 하지 않고 메일로 처리한다. 하지만 일을 잘, 그리고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선 서로 주고받으며 협의점을 찾아가야 하는데, 메일은 그러기에 속도가 너무 느리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슈를 풀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일들은 시간을 내어 출장을 간다.
일을 시작할 때 계획이 있다. 이 일은 이렇게 풀어가야지, 저 일은 이렇게 협의해야지 같은 생각들이 있다. 그리고 이 계획을 바꾸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좋은 방향을 잡아 두었는데,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왠지 내 의견을 계속 주장하고 싶어 진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내려놓고 계획을 계속해서 수정해 간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끝에 가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마무리되는 것을 본다.
마시멜로 챌린지 게임
미국의 디자인 회사인 IDEO의 피터 스킬먼 (Peter Skillman)이 고안한 마시멜로 챌린지 게임이 있습니다. 마시멜로로 탑을 쌓는 게임인데요, 룰은 간단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 네 명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으면, 스무 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 한 개가 주어집니다. 18분 안에 이 재료들을 이용해 탑을 쌓습니다. 모양은 어떻게 만들어져도 상관없고요.
테드(TED)에서는 이 게임이 직업군에 따라 탑을 쌓은 방식과 결과가 다른 것을 보여 주었는데요, 경영대학원 MBA 학생들이나 변호사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먼저 자기소개를 합니다. 명함을 돌리죠. 그러고 나서 계획을 짭니다. 다양한 가설과 나름의 원리가 오고 갑니다. 그렇게 쌓아 가다 보면 탑은 무너져 내립니다.
유치원생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18분을 보냅니다. 우선 명함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자기소개도 안 하고 바로 말을 놓죠.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일단 탑을 만들고, 안 무너지면 더 높은 탑을 쌓아 갑니다. 아이들은 계획 없이 출발합니다. 일단 실행에 옮기고 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열두 발자국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시멜로 탑을 쌓아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에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지요. 계획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 결과 소위 가방 끈이 긴 명석한 사람들이 유치원생들보다 못한 결과를 맞는 것이지요.
우리는 새로운 일들을 계속 만납니다. 그리고 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합니다. 그래서 섣불리 발을 내딛지 못하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역시 안 하는 것이 좋겠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익숙한 일상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만 할 때도 피한다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처음 하는 취업 준비
취업 준비도 '처음' 하는 것입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이제 회사를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실패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실망과 좌절을 크게 느낍니다.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발을 내딛을 힘을 잃어버리지요.
모두가 처음이라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처음은 한 번뿐이지만, 도전은 수도 없이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전하는 삶을 사시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물론 저도 도전하는 삶을 계속 살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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