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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Mar 10. 2024

가족이란 이름으로

칼 라르손 ‘바느질하는 소녀’ 

 

행복한 가정


칼 라르손의 작품 ‘바느질하는 소녀’에서 그림 속 여인을 보면 다소곳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집안은 잘 정돈되어 있고 커다란 탁자 위에 꽃병과 창문 위에 화분을 보면 그녀는 부지런하고 섬세한 사람인 것 같다. 정갈한 여인의 손길이 집안 곳곳에 느껴지며 행복한 가정이 연상되는 그림이다. 

칼 라르손, sewing girl 1911

여인은 성실한 아내, 착한 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서 저 바느질하는 그림 속 여자는 늘 행복하기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느질감의 양으로 봐서는 대가족이 함께 사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아침 작은 말다툼을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저런 추측을 해본다. 가족이란 단어는 행복이란 단어가 떠오르지만, 구성원들은 수많은 갈등과 애증의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살아간다.      


중학교 시절, 가정 시간에 바느질과 손뜨개, 요리를 배운 적이 있었다. 남자는 기술, 여자는 가정이란 과목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성의 역할을 배웠다. 나는 이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바느질과 요리 수업이 서툴렀기도 하지만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규정짓는 모습에 반항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평생 바느질과 요리는 잘못했지만,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 열심히 살아왔다.      



딸의 엄마

     

20대의 젊은 나는 엄마가 처음이라 어설픈 실수를 많이 했다. 왜 사람들이 자식을 금으로 된 나뭇가지에 옥으로 된 잎이라 뜻인 금지옥엽이라 했는지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되었다. 딸이 내 옆에 있는 것을 좋아해 잠들기 전까지 그림책을 읽어 줬다. 우린 서로 안은 채, 살을 비비고.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만으로 만족이 안 되었는지 아이가 4살쯤 대학원에 들어갔다.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 갔다 돌아오면 자정이 다 되는 시간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다 잠든 딸의 얼굴만 보게 되었고 어느 순간 딸은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더 이상 내게 달려와 와락 안기지도 않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늘 제자리인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며 엄마로서도 직장인으로도 불안한 20대를 보냈다.


내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엄마 힘든 거 안 보여? 빨리빨리 해야지. 이거 하지 말랬지.’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데 나는 늘 아이에게 재촉하는 말만 던지며 살았다. 우리 딸이 부모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를 선택했을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나는 좋은 나무가 아니 채 부모로 살았다.



아빠의 딸


아빠는 팔순이 넘고 부쩍 아픈 곳이 많아지셨다. 다음 주 아빠 생일이라 전화했더니 엄마는 아빠가 아프시다고 한숨을 내쉬셨다. 걱정이 앞서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한걸음에 아빠 집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식은땀을 흘리며 새우 등처럼 웅크리고 계셨다. 병원을 가자는 말에 한사코 괜찮다며 꿈적도 안 하시며 고집을 피우신다. 아빠는 왜 쓸데없는 얘기를 했냐며 애꿎은 엄마만 나무랐다. 아빠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아픔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게 없이 쳐다보는 내가 한심하다.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흐르는데 몸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몰려든다. 어른이 되고 운다는 건 어른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 재빨리 눈물을 닦아냈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아빠가 좀 편안해지셨는지 허리를 펴고 누우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도 참 바쁘셨다. 두 분이 다 일을 하느라 나는 동생들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다. 어린 내게 아빠는 늘 엄격하셨던 분이셨다. 숙제를 안 하고 놀다가 혼나기 일쑤였고 학교 성적이 떨어지기라고 하면 손바닥에 불이 났다. 첫째라서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랬겠지만, 어린 마음에 과도한 간섭이라 생각해 아빠를 한동안 싫어했다.     


그래도 아빠는 가끔 주말에 집 근처 뒷산으로 우리 네 남매를 데리고 가셨다. 부드러운 카스텔라 하나씩 사서 손에 쥐어 주고 시원한 계곡에서 가재를 잡고 놀았다. 아버지의 존재는 늘 큰 산처럼 든든했는데 이젠 하얀 백발의 작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      


나도 이제 그때의 아빠보다 나이가 더 먹은 중년의 여자가 되어 버렸다. 아빠가 아프지 않고 늘 내 곁에 계시기를 소망한다. 집으로 오는 차창 밖은 옅은 주홍빛 노을이 하늘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해 지는 시간은 쓸쓸하고도 따듯하다.           



붕어빵 가족


퇴직하고 이제 시간 여유가 생겨 가족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빠는 걷는 게 힘들어 멀리 나갈 수 없고 딸은 직장을 다니다 보니 함께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늘 같이 있고 싶은 시간에 같이 있어 주지 못하며 살고 있다. 날카롭고 뾰족했던 우리는 세월에 뭉뚝해졌고 움푹 팬 구멍도 서로 메꾸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 내가 아빠를 아이가 엄마를 기다려 주었듯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기다리는 일뿐이라는 걸 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인간관계가 가족인 것 같다. 가까운 관계라 상처 주는 말도 쉽게 하지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도 가족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힘들고 외롭고 쓸쓸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다. 나는 아빠를 쏙 닮았고 딸은 나를 빼닮았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든다. 서로 닮아서일까? 아빠가 네 남매를 데리고 가장으로서 살아온 날들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걸 안다. 모진 바람맞으며 가족을 지키려고 단호했을 아버지가 안쓰럽다. 생계를 책임지면서 사랑을 다 못 준 것 같은 마음에 나처럼 후회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이젠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픈 아빠를 다독이며 다 이해하니 아무런 후회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어떤 사랑보다 더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신 아빠를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나지막이 말해주고 싶다. 


'아빠! 우리 그만 미안해하며 살아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사소한 것들이 사랑스러워지는 계절이다.


#살롱드까뮤 #미술에세이 #그림에세이 #공저 #스낵미술 #칼 라르손 #sewing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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