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며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상대에게 빠져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결혼까지 했지만, 뜨겁던 감정은 생각보다 짧게 끝나고 무덤덤한 상태가 된다. 도파민이란 호르몬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면서 사랑과 열정은 갈등과 미움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나의 결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직장과 가사를 병행하다 보니 늘 시간은 부족했고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컸었다. 싱글인 친구들은 자유롭게 여행 다닐 때 늘 집안일에 녹초가 되어있었다. 아침밥도 못 먹고 출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가정주부가 되는 삶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었다. 드라마에서 정 때문에 아이 때문에 산다고 하더니 인내심이 조금만 더 부족했어도 혼자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인내심이 평균치 이상이라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왔다. 처음부터 남편이 백마 탄 왕자이길 바라며 멋대로 끼워 맞춰 결혼해 놓고 변했다며 배신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결혼에 대한 허상도 깨지고 하루를 살아내는데 바빴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남편이 열이 펄펄 나면서 정신을 잃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백혈구 수치가 정상보다 수십 배 높아 위험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며 아득했다. 몇 해 전 시어머니가 백혈병(급성 골수암)으로 2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우리 부부는 어머니 병간호로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그악몽이 다시 되풀이될까 두려웠다.
다음 날 아침 남편 사무실로 병가 신청을 내려 전화했는데 남편 상사도 고열이 나서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직원이 해줬다. 당시 남편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직무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그분도 비슷했던 것 같다. 한 사무실에 부서장과 팀장이 동시에 똑같은 증세로 입원해 직장에서 난리가 났다. 며칠을 이런저런 검사를 했지만, 병명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며 병원 생활을 이어갔다. 한 번도 남편의 부재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 간절하게 남편 손을 잡고 그냥 살아서 옆에만 있어 달라고 빌었다. 내가 휴가를 쓰면서 정성껏 간호한 덕분인지 증세가 호전되어 퇴원했다.
어른들 말씀에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집은 늘 썰렁했고 빈자리가 컸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남편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말 못 하게 힘들었다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결혼해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두 분 병간호로 3년을 보내다 보니 우리는 많이 지쳐있었다. 또다시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승진하고 집 장만하며 행복했던 순간도 참 많았는데 감사할 줄 몰랐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가 그 인생을 살겠냐고 묻는다면 자신은 없다.
작년 우리 부부는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고 용기를 내 명퇴를 했다. 퇴직하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그림을 배우고 PT와 어학 공부까지 시작했다. 처음으로 24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사랑은 할 수 있지만 사랑을 지속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울고 웃으며 인내했던 세월 덕에 날카롭고 뾰족했던 성격도 동글동글해졌다. 이젠 서로 마주 보며 편안한 사이가 되어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젊음은 사라졌지만, 남편도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낸 덕에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