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에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최했던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에 다녀왔었다.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40년 회고전에서 달항아리를 소재로 그린 작품을 보면서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던 적이 있었다. 그는 서양화가 들어올 때 하늘, 달, 구름, 백자 등 우리의 자연을 예술에 담아 한국적 추상화를 만들어낸 화가였다.
꾸미지 않은 달 항아리는 컴컴한 밤하늘을 밝혀주는 만월의 풍요로움을 연상시킨다. 고향을 떠나 홀로 타지에서 지내는 사람이 이 달 항아리를 보며 고향의 보름달을 생각하고 엄마의 따듯한 품속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여름방학 내내 외갓집에서 지냈다. 외갓집에는 동갑내기도 있고 위아래 한두 살 터울의 사촌들이 많았다.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사촌오빠가 하루 종일 리어카에 우리들을 태우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어지고서야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외숙모는 희미한 백열등 전구 하나를 켜고 나무를 때면서 저녁밥을 지었다. 타닥타닥 나무 타들어 가는 소리와 구수하게 밥 익어가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면 정신없이 놀던 우리들의 배속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요란했다. 앉은뱅이 큰상 두 개를 펴고 윤기 흐르는 쌀밥과 배추김치, 열무김치, 물김치, 오이냉채를 올려 한상 가득 차려 내오면 남자와 여자가 편이라도 가르듯 따로 밥을 먹었다.
백열등 주변으로 벌레들이 수도 없이 달려들었다. 저녁 먹고 방에 이부자리만 펴 놓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온 식구가 대청마루로 나왔다. 외할머니는 낮부터 우물가에 담아놓았던 커다란 수박을 갈라 큰 쟁반에 썰어 내 왔다. 휘영청 밝은 달을 조명 삼아 온 식구가 수박을 먹어가며 한여름 더위를 날려 보냈다. 어둠이 짙어 갈수록 풀벌레 소리는 더 요란하게 들렸다. 나는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긴긴 옛날이야기를 듣다 잠이 들었다.
어른이 되고서도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달은 나와 함께 했다.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서도 달은 항상 나를 비춰주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에도 끄덕하지 않고 굳건히 그곳에 있었다. 달은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토닥이는 마음씨 좋은 큰 언니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달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김환기의 작품을 보면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서 보았던 달이 연상된다. 특히 이조 항아리를 보면 마음 한구석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이조 항아리는 아무런 장식이 없어 소박하지만 매력적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 어느 것보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스물네 살의 청년 화가 김환기가 일본, 파리, 뉴욕에서 입체주의부터 초현실주의까지 유럽 미술 사조들을 배우면서도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가져 달항아리에 흠뻑 빠져있었다. 김환기는 성북동에 살 때 돈이 생길 때마다 백자 항아리를 수집했고 ‘달 항아리’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정감이 가는 것은. 누구나 하나쯤을 가지고 있는 달에 대한 추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달항아리는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진 생활 속에서 손쉽게 만들어 쓰기 위한 그릇이었다.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를 절반씩 따로 만들어 붙인다. 그래서 원이 똑같지 않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게 달항아리의 매력이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들어 무언가를 담는 실용적인 그릇에서 출발했다. 달항아리를 보면 생활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생활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공간에 있어도 어울리는 소박함에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