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오랜만에 협재에 갔다. 5월인데도, 그러니까 해수욕장을 개장하지 않았는데도 해수욕장 주차장은 꽉 차 있고 해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이주해 오던 9년 전 제주 협재 해수욕장은 여름철을 제외하고 주차 걱정이 없을 정도로 비수기엔 정말 한가했다. 그런데 이제는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겨울에도 주창장에 차 들이 꽉 찬다. 그러니 오늘 5월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협재바다에 서핑족이 많이 늘었다. 한때 나도 서핑에 관심 좀 갖었었는데,…
20대 후반 꽃다운 나이에 나는 호주 시드니에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 년을 계획하고 갔지만 지내다 보니 오 년 가까이 살게 되었다. 본다이 비치는 물론이거니와 호주 곳곳에 있는 비치에는 꼭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주사람들은 비 오고 바람 불고 날씨 궂은날에도 서핑을 했다. 어쨌든 나는 호주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서핑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와이영Wyong(시드니와 뉴카슬 사이)에 살 때 브레드라는 동네 친구는 비 와도 혼자, 바람 불어도 혼자, 시간 날 때도 혼자 서핑하러 다니는 수준급의 서퍼였다. 서핑을 꼭 배워보겠노라고 다짐도 했겠다, 동네에 훌륭한 서퍼도 있겠다 싶어 브레드에게 서핑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브레드가 말하길,…
,“너 수영할 줄 아니?”
“앗! 수영? 음,.. 못 하는데!”
“그럼 수영부터 배우고 와”
아!!!! 서핑의 시작은 수영이었구나!
이렇게 해서 호주에서는 서핑을 구경만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반을 삼 년 반 다닌 덕에 시화호 수영대회에서 3km 완영메달도 받았다. 수영을 배웠으니 이제 서핑을 시작할 때다.
그러나 수도권에 살면서 서핑을 하러 다니기가 웬만한 열정 아니면 못한다. 그리고 이때는 대한민국 해수욕장에서 서퍼들을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 때였다. 그리고 또 삶에 바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9년 전 내가 제주로 이주해 왔을 때도 서핑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주 바다가 서핑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어서 서핑하는 사람이 없는 거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일이 년 사이 서핑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가는 것을 보니 서핑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오늘 유난히 눈에 많이 띈 서핑족을 보니 25년 전 호주 해변에서 봤던 풍경이 제주 앞바다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10년만 젊었어도 서핑에 도전했을 텐데,… 하늘의 명을 깨닫기도 전에 이제 내 나이가 지천명이 됐으니 서핑이 웬 말이냐. 작은 나의 서핑 회고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그때 그 브레드는 놀랍게도 수영할 수 있는 실력과 서핑할 수 있는 실력을 어렸을 때 혼자 배웠다고 한다. 어렸을 적 그에게는 놀이터가 바다였으리라. 수영과 서핑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