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네이버 카페 “제주감태를 사랑하는…”
제주에 입도한 지 십 년. 한림에 산지도 십 년. 이제 조금씩 마을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나 가고 보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어 보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님도 모르는 우리 동네 이야기,... 그 네 번째 이야기다.
감태와 4.3
감태와 4.3의 연관성이 흥미롭다고 표현하면 제주 4.3을 겪었거나 그 역사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 무례한 표현일까!
예로부터 제주해녀의 물질 품목에 감태는 없었다. 감태는 전복과 소라의 먹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녀가 물질로 채취하지는 않았으나, 바다에서 갯가로 떠밀려온 감태는 주워서 밭에 천연거름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그런데'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감태와 4.3의 연관성을 말하려 하기 때문이고, 또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을 섬세하게 그리고 전문적으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히, 지금 이 순간, 감태와 4.3을 엮어 보려 한다.
감태 채취를 업으로 하지 않았던 제주는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 감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위해 질산칼륨이 필요했던 일본은 러시아에 의해 질산칼륨 수입의 길이 막히자, 질산칼륨 대신 요오드화칼륨을 얻으려 했다. 요오드화칼륨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것이 바로 감태였고, 일본은 급기야 1905년 제주 성산포에 한국물산회사라는 소위 '감태공장'을 설립하게 된다. 이때부터 제주 해녀들은 물질로 감태를 채취하기 시작했고, 감태로 인해 돈을 벌기 시작했으며, 그 돈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켰고, 당시 고등교육을 받은 제주도 해녀 아들들은 상당수가 사회주의 혁명가로 변신했다고 한다.(내용 출처: <제주생활사> 고광민, 도서출판 한그루 , p 542)
잃어버린 마을 '빌레못'
우리 마을에 4.3으로 없어진 '빌레못' 마을이 있다고 했다. 그곳이 어딜지 너무 궁금했으나, 향토지에는 정확한 위치나 주소 등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그렇게 궁금하던 차에, 명월상동에 갈 일어 있어 갔다가,.... 왠 일 웬 일!!! 내가 스스로 찾았다. 아니, 내 눈에 들어왔다. 없어진 마을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기보다 반가운 마음이 더 앞섰다.
그래서 올해 4.3에, 빌레못 마을을 혼자 찾아갔다. 나만의 4.3 기념식을 치른 것이다. 작년 4.3 때 섯알오름 학살터에 갔었는데, 거긴 단체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빌레못 마을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네 이장님도 안 가는 곳, 작년에 빌레못 표석을 발견한 기념(?)으로 올해 나만의 4.3을 홀로 기념했다.
빌레못(돌빌레 위에 못이 형성된 곳으로, 식수와 우마 먹이는 물로 사용)이 있다 해서 유래된 빌레못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강 씨, 홍 씨, 양 씨 세 가호가 설촌 한 이래 25 가호 130여 명의 주민들이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이었는데, 1948년 11월 20일경 소개령에 의해 가옥들이 전소되어 잿더미가 되었고 2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표석이 세워진 2002년에는 연못터와 대나무만이 예전에 사람이 살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못 찾는 것일까? 아니면 20년이란 세월 동안 연못터도, 대나무도 서서히 몽땅 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지금은 마을의 흔적이 일도 없다. (빌레못 표석 위치: 명월리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