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너가 그때의 너를 구원할 거야. 걱정 마.

번아웃. It's enough.

by 작사가 신효인


잘 잤어?

어제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서 잘 나오질 않았어. 물 먹은 미역 토해내듯이 꾸어억 꾸어억대는 내 모습이 싫더라. 나도 말 잘하고 싶다. 썰 재밌게 풀고 싶다! 머릿속에서 말을 고르는 속도가 발화 속도를 못 따라가. 정리가 빠르게 안 돼. 마음만 바빠. 답답해. 너도 답답하진 않았어?

아무튼 못다 한 말을 담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지를 펼쳤어.

목표를 세우고 그걸 향해 달려갈 힘이 없을 수 있지. 그럴 때도 있지. 사람이 어떻게 항상 에너자이저겠어.

나는 언제 불안하고 두렵냐면,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 나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을 때 그래.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아냐, 그렇지 않더라. 좋고, 신나고, 짜릿한 감정도 계속 가지 않지? 사그라들지? 부정적인 것도 그래. 그러니까 기운이 없는 지금 너의 상태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 '아, 내가 지금 기운이 없구나.'하고 지쳐있는 너를 존중해 줘. 그럴만해서 잠시 그런 거일 테니까.

불안감 때문에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는 않았어? 가뜩이나 기운 없는 상태에서 그러면 한 발자국 떼기가 얼마나 힘이 들겠어. 다리가 얼마나 천근만근이겠어. 그렇게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왔으니, 퍼질 만도 하지.

기운이 없는데도, 몸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왜 계속 나아가려고 했어? 궁금해. 어떤 생각이 너를 위협했어? 늦었대? 부족하대? 뭐에 늦었는데? 누구에 비해 부족한데? '뭐'와, '누구'를 빼고 너를 봐봐. 네가 이뤄내 온 것들을 봐봐. 어때? 나는 네가 존재 자체로 소중해. 그리고 네가 쉬지 않고 매년 쌓아온 것들이 대단해. 네가 걷는 길이, 그 속도가 너무 멋있어. 네 고유의 멋짐이야. 아주 섹시하다구.

번아웃이 온 것도 섹시해. 도대체 얼마나 치열하게 산 거야? 그럴 만큼 무언가를 독하게 한 거잖아. 얼마큼 남기고 덤벼볼까 하지 않은 거잖아. 재고 안 따지고 다 쏟아내 본 거잖아. 그거 쉽지 않은 거다. 알지. 게다가 번아웃이 왔는데도, 달릴 힘이 없는 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멋있어. 진짜 끊임없이 성실한 사람이잖아? 네가 그런 사람이라 그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던 거겠지. 너의 그런 삶의 태도도 너의 멋진 일부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나는 너를 위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은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줄 거야.

너 그거 알아? 다이어트할 때 살을 빼는 것만큼 중요한 게 뺀 상태를 유지하는 거야. 원래 몸무게 쪽으로 다시 향하지 않고, 도착한 목표치 그 언저리에 계속 머무는 게 진짜 중요하고 대단한 거야. 근육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야. 만든 근육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걸 치열하게 통제하고 해내야 하는데. 그리고 찢어진 근육을 회복해야, 또 찢을 수 있는 거야. 마찬가지로, 네가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서 다다른 지금 그곳에 머무는 것만 해도 진짜 대단한 거야. 목표가 없고 더 달릴 기운이 없어도 괜찮아.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

매일 출근하는 것만 해도 대단해.
매일 네 자리에서 네 몫을 해내고 집에 오는 것만 해도 대단해.

과거의 네가 해낸 것,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서 네가 해내고 있는 것들이 미래의 너를 분명 구원해 줄 거야. 불안해하지 마. 날 믿어.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 줘. 한 템포 쉬어. 더 앞으로 안 가도 돼.

네가 멋지고 존경스러워.
사랑해 내 동생.

크림 김치볶음밥 해줄게. 그만 자고 일어나.
12시다.


그나저나 어제도 잼썼다 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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