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
동생은 회사 팀장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듯했다. 퇴근하고 오면 팀장님과 나눴던 이런저런 수다를 들려준다. 팀장님이 아기 엄마라서 그런지 대화 주제가 주로 결혼/임신/출산/육아인 것 같았다. 하루는 팀장님이 내 동생에게 아기를 몇 명 낳고 싶냐고 물어봤단다. 동생은
저는 낳는다면 최소 2명은 낳고 싶어요.
라고 답했고, 팀장님이 물은 이유에 동생은
제가 언니랑 잘 지내서, 언니랑 노는 게 재밌어가지고 둘 이상 낳고 싶어요.
라고 답했단다.
'으음~ 그래.' 하고 무덤덤하게 리액션을 했지만, 난 사실 듣고서 무척 신이 났었다 ㅋ_ㅋ.
'동생이 언니가 있는 게 좋구나!! 내가 언니인 게 좋구나!!' 하고ㅋㅋㅋ.
동생은 평소에 내게 애정표현을 전혀 안 하거든. 어릴 때 해줬는데 내 기억에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태어나서 동생에게서 '언니 사랑해'를 들어본 적이 없다. 동생이 언니라는 존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동생 입으로 처음 제대로 들어본 것 같다. 기뻤고, 의외였다. 왜냐하면 나는 꽤 성가신 언니거든.
어제는 동생이 주문한 노트북이 오는 날이었다. 새 기계 좋아. 새 기계 좋아. 내 거 아니어도 좋아. 신나. 아침 8시~9시 사이에 배송된다고 했었으니까, 내가 눈 떴을 시점에는 노트북이 이미 동생 방에 있을 터.
벌컥. 동생 방 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 위에 누우며, '어때?!?!?!?!'라고 물었다. 동생은 주어 없는 질문을 알아듣고 시크하게 책상을 가리키며 '가서 봐.'라고 했다. 벌떡 일어나 책상에 가보니, 포장이 뜯기지도 않은 노트북 박스가 있었다. 아니 쟤는 궁금하지도 않나!!! 내가 박박 뜯었다. 오오 예뻐 예뻐.
두 번째 벌컥. 할 말이 있어서 동생 방에 갔는데, 생각이 안 났다. 애를 빤-히 보다가, 누워있는 동생 주변 매트리스 여백을 지근지근 밟으며 침대 위를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그러고 퇴장. 뭐 물어보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세 번째 벌컥. 아, 어깨 아파. 주물러 줘. 들은 채도 안 한다. 덮고 있는 이불을 쥐고 5분을 흔들었다. '아!! 귀찮게 하네!!!' 빽 소리 지르고 일어나더라ㅋ_ㅋ. 헤헿. 생긴 자리에 냅다 엎드렸다. 마사지를 잘하다 말고 갑자기 내 상체를 들고 뒤로 꺾고, 몸의 세로 반쪽을 반대쪽으로 넘기고 난리. 뭐 어떻게 하라는지 모르겠어서 사지를 휘적댔는데, 그 꼴이 웃겨서 둘 다 웃다가 눈물 흘리고 난리22.
동생은 지금과 달리ㅋ_ㅋ 어릴 때 순하고 여렸다. 엄~~~~청 순디.
동생은 비계를 안 좋아한다. 엄마가 동생에게 살코기를 발라주는 걸 보고 넷째 큰아빠가 호통을 친 적이 있다. 고기(비계) 버린다고 뭐라고 하셨다. 그에 동생은 비계를 꾸역꾸역 먹었다. 그날 동생은 집에 와서 화장실 앞 바닥에 먹은 걸 다 토했다. 그 조그마한 몸으로 그 일을 치렀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안동 하회 마을에 데려간 날이었다. 원형 야외극장에서 공연을 보던 중, 한 연기자가 동생에게 다가와 동생을 공연에 참여시키고자 팔을 끌었다. 동생이 싫다고 했으나, 강요가 지속되자 동생은 질색팔색하며 울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동생이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멋대로 머리를 너무 짧게, 숏컷처럼 잘라준 탓이었다.
이 외에도 어렸을 때 동생이 서럽게 울었던 일들이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동생이 울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충격에 가까웠다. 애가 참 서럽게도 울어서 그랬을까. 내 동생 괴롭히지 마!! 다 죽어!!! 그렇게 나는 동생 지킴이로 컸다.
학교폭력을 당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가, 다시 학교를 다니던 시점이었다. 급식실에서 밥을 받고 있는데, 일진 무리가 나에게 다가와서 '너 동생 교육 똑바로 시켜. 이따가 교실로 와.'라고 했다. 밥이 넘어가나. 안 넘어가지. 무슨 일이지. 내 동생은 저런 소리들을 짓을 할 애가 아닌데. 손이 달달달 떨렸다. 무서웠다. 내가 겪었던 일을 동생도 겪게 되는 걸까. 안 된다 그건. 급식을 다 버리고 올라갔다.
교실에는 동생과 동생의 동급생 A 그리고 나와 같은 학년의 일진 무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그 상황이 그저 웃긴데, 당시에는 무서워 뒈질 뻔했다. '죽을 뻔'으로 다 표현되지 않는 두려움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일진 언니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A가 만만한 동생을 팔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일어난 사태였다. 몇 번의 질문으로 다 들통나는 허술한 거짓말들이었다. 비슷한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내가 그 상황을 겪는 건 지옥이었다. 그런데 잘못한 것도 없이 죄인으로 서있는 동생을 보니 힘이 났다. 지켜야 돼 쟤를. 그렇다고 해서 멋진 모양새로 해결했던 거는 아니었고 눈물 참으며, 몸 달달 떨어가면서 했다. 상황이 마무리되고서야 눈물을 편하게 주르륵 흘리고, 동생을 자기 교실로 내려보냈다.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나는 혼자였지만, 동생은 아니라는 사실이 감사했다. 편이 되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외부에서 줄을 서있는데 말벌이 다가왔다. 진짜 컸다. 내 손가락만 했어. 너무 싫어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눈을 질끈 감고 가만히 있자 날개소리가 금방 멀어졌다. 눈을 떠보니 말벌은 옆에 있는 동생에게 가 있었다. 동생에게서도 금방 떨어질 줄 알았는데 꽤 오래 맴돌았다. 4초, 5초.. 초수가 늘어나자 가방을 마구 휘둘렀다. 너 이 새끼 내 동생 괴롭히지 마!!!!! 가방에 맞은 말벌은 기절을 해버렸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지;; 그런데 기절한 말벌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내 종아리 맨살에 닿았다. 으아아악!!
그리고 동생이 '싫다' 하는 것에 발작 버튼이 눌리는 편. 동생이 몇 번 거절했는데 누군가 계속 권하면 화가 난다. 싫다는 애 자꾸 건들지 마!!!! 이제는 동생 스스로 의사 표현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옆에서 나선다. 반복해서 권하는 과정에서 애가 스트레스받는 걸 아니까. 내가 단호하게 말리거나 거절하거나, 내가 대신하거나 받거나 등등 그런다. 그래놓고는 배부른 애한테 내가 만든 쿠키는 자꾸 맛보라고 강요하긴 함;; 나는 됨. 나만 괴롭힐 수 있어. 우하하핳.
동생 바보 맞다. 그런데 나는 멋모르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질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동생을 엄청 좋아했다고. 동생 젖병을 내가 물려주고 그랬단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어떤 분이 나보고 동생이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문을 닫고 나왔다고 했다. 내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최종 결과적으로 동생이 막내이니=실제로 더 밑에 동생이 없으니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나는 동생이 '언니 사랑 다 내 거야!'하고 읏챠 문 닫고 나온 상상을 하면 너무 귀여워서, 그 말을 좋아하고 또 믿는다.
동생은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나를 엄청 따랐다. 그리고 매일 업어달라고 했다. '언니 업어 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여기 올라가.'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도 애였기에 동생을 번쩍 업지는 못해서, 애를 어디 올려놓고 업었다.
그때가 좋았는디..ㅋ_ㅋ. 지금은 반대다. 내가 치대고, 저쪽이 귀찮아하심.
어린 동생도 나를 많이 챙겼다. 집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었다. 엄마에게 혼나서 손 들고 벽 보고 서있었는데, 동생이 와서 김치랑 고기를 엄마 몰래 내 입에 넣어줬다. 혼나고(난 뭐 맨날 혼나ㅋㅋㅋ) 내가 침대에 누워 울고 있으면 동생이 뒤에 와서 안아주고, 그 채로 같이 잠에 들고 그랬다. 어느 쪽 사랑이 먼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늘 서로 잘해줬고 아끼고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나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누가 나에게 동생을 얼마나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대신 죽어줄 수 있다고 답했다. 진짜다. 기꺼이.
어릴 때 내가 너무 안 자고 울어서 엄마가 힘들어가지고 동생을 안 낳으려고 했었다는데(다행히 동생은 잘 자고 안 울었다고 한다), 외동인 건 상상만 해도 싫다. 동생 생일은 내가 최고의 선물을 받은 날. 더 받을 게 뭐 있나. 동생을 배 아파 낳고, 이만큼 키워주신 게 유산이다.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인간관계에 크게 욕심이 없는 이유는 동생 때문인 것 같다. 집에 베프가 있으니까. '동생이랑 해야쥥~ 동생이랑 먹어야쥥~'이 기본값이다.
내가 결혼을 할랑가, 아이를 낳을랑가 모르겠지만 만약 낳는다면 나도 둘 이상 낳을 거다. 내 새끼들도 우리처럼 크리란 보장은 없지만, 보고 크면 그러겠지 뭐. 결혼 안 하면 평생 동생 끼고 살아야지 우하하하하핳. 내 맴.
동생 넌 내 거야 우하하핳. 사랑해.
엄마 동생 낳아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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