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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May 19. 2023

<실수 숨기기> 비밀 작전, 수행 완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초등학교 1학년들 하원 시간이었다.

학원에서 출발해서 첫 번째 하차 장소로 향하는데, 차 안이 갑자기 웅성웅성했다.


아이들) 선생님, 바닥에 물이 흘러요.


뒤를 돌아 바닥을 보니, 정말이었다. 한 친구가 자신의 다리 밑에 둔 가방을 중심으로 물이 흥건했다. 아이들 가방 속의 물병에서 물이 새서 가방이 젖는 일은 어학원에서 종종 있다. 그럴 때면 햇볕에 아이 가방을 뒤집어 말리고, 젖은 책과 종이들을 널어놓곤 한다.


나) @@아, 가방에서 물이 흘렀나 보다.


@@) 가방 안에 물병 없어요.


나) 그래? 선생님이 한 번 봐줄게~


다른 아이의 물병이 잘 못 들어갔을 수도 있다. 가방을 살펴보는데 아이 말대로 가방 안에 물병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물병이 없었지만) 만약 가방 안에서 물이 흐른 거라면 가방 내부와 밑면이 젖어야 하는데, 가방 제일 위부터 바깥만 젖어있었다. 안에 책들은 젖어있지 않았다. 들고 있던 물을 누가 쏟은 건가 싶었지만, 차 안에 물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 사이 첫 번째 하차 장소에 도착했고, 우선 내려야 하는 아이들을 내려주었다. 그사이 기사님께서는 물이 흥건한 자리를 살피고 계셨다. 버스에 다시 올라타는데, 기사님께 '의자도 젖었어요.'라고 말하는 @@이의 말을 듣자마자 난 빠르게 눈치를 챘다. 


나) @@아~ 괜찮아~ 벨트 풀고 선생님한테 와봐~


아이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 (귓속말로) @@아 혹시 쉬 했어~?


@@) 네..


나) 그랬구나. 괜찮아~ 선생님이 도와줄게


가까이에서 보니, 아이의 검은색 바지가 많이 젖어있었다. 기사님은 차 내부 어딘가에서 물이 새는 줄 알고, 열심히 근원지를 찾고 계셨다. 냄새가 안 나서 모르실만했다.


나) 기사님~ 기사님~?! 잠시만 이쪽으로 와줄 수 있으실까요?


아이들에게 상황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기사님도 버스 밖으로 불렀다. 버스에서 내린 기사님께 귓속말로 상황을 말씀드렸다.


나) 기사님 혹시 차에 수건 있나요? @@이가 깔고 앉을 수 있을 만한 게 있을까요? 신문지도 괜찮은데.


아이는 계속 가만히 내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기사님은 선뜻 자신의 수건 하나를 내어주셨다. 내 자리 근처 빈 좌석에 수건을 깔아주고, @@이를 앉혔다.


나) 저 자리는 물이 샜으니까, @@이는 여기 앉아서, 벨트 다시 매자~ 기사님 저희 출발하겠습니다~


아이들) 선생님 이거 무슨 물일까요? 어디서 새는 거지? 계속 흐르는 거 같아요!


나) 아까 고학년 형아 누나들이 먼저 탔는데, 누가 물을 흘리고 내렸나 봐~ 아까 AA형도 가방에 물 흘려가지고 책 다 젖고 그랬어. 별일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아이들) 물을 왜 이렇게 많이 흘렸을까요? 그러면 (어쩌고)(저쩌고)


'물'에 대한 수다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듣고 있을 @@이가 신경이 무척 쓰였다. 이럴 땐 '말 돌리기' 스킬을 써서 화제을 전환 시켜줘야 한다. 


나) 아니?! 이거 뭐야?! 이거 밴드 뭐야?! 다쳤어?! 뭐 하다가?!


KK) 아 이거~! 화상! 캠핑 갔다가 화상 입었어요. 어묵국 먹다가.


나) 어묵구욱~?! 엄청 뜨거웠겠는데?!ㅠㅠ


YY) 선생님 저는요오 어제 태권도 갔다가아~~ 여기 다쳤어요오~~


HH) 선생님, 선생님 저느은~~


애들이 정신 못 차리게 내가 쉼 없이 말을 거는 사이, @@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는 @@이 포함 총 세 명의 아이가 내리는데, @@이에게 앉아 있으라고 선생님이 부르면 내리자고 살짝 말해주었다. @@이가 먼저 내리면 뒤따라 내리는 아이들이 @@이의 젖은 바지를 볼 것 같아서 그랬다.


@@이 어머니께서는 내릴 생각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이를 보고 물음표 가득한 얼굴을 하셨다. 어머니께서 아이보고 내리라고 말하시려는 찰나에 난 호다다닥 살짝 괴상한 수신호(급해서 그냥 막 손짓 했다..ㅎ)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감사하게도 그런 나를 보고 뭔가 있는 상황이라는 걸 눈치채주시곤,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주셨다. 첩보 작전 같았다ㅎ 다른 아이들 두 명을 먼저 내려주고, 어머니께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드렸다.


어머니) 아 그랬구나. 어후 선생님 죄송해요.


나) 아니에요!! 정말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이가 놀랐을까 봐 걱정했어요. @@아 이제 내리자~ (들고 있던 @@이 가방 어머니께 건네드리며) 가방이랑 바지가 다 젖었어요 어머니.


어머니) 아, 네네네. 감사합니다.


나)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리 @@이 잘 가~!!


그렇게 @@이를 무사히 내려줬다. 가방 안에 물병 없다고, 의자도 젖었다고 차분하게 말하는 @@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 가슴이 아렸다. 사실 얼마나 놀랐을까.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가슴이 콩닥거렸을까.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실수한 걸 숨기려, 물이 어디서 흐른 건지 아이들과 같이 찾는 척 두리번거리던 @@이 생각에 마음이 미어졌다. 빨리 눈치채고 @@이만의 <실수 숨기기 작전>에 은밀하게 합류해서 다행이었다. 작전을 함께 잘 수행한 것 같아 기뻤다. 예민한 내가 싫다가도, 이럴 때면 나의 섬세함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버스 안에서는 처음이었지만, 어학원에서는 이렇게 아이들이 용변 실수하는 경우가 그동안 몇 번 있었다. 그럴 때 아이들은 보통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거나, 민망해하고 쑥스러워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이는 너무나도 차분하고, 정말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면, 맘이 아프다.


아이들은 눈앞의 것이나 상황에  집중하기 때문에, 소변 마려운 느낌을 놓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순한 아이들은 의사 표현을   하고   하기 때문에,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에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 용기 내서 말하지 못할  있고.  동생이 어렸을  그랬기에  안다. (그랬던 동생 덕분에 내가 지금도 '타인 마음 읽기'  되는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 마음을 알아서 읽고 내가 대신 나서곤 했다. 동생 척척박사.) 다음에는 출발하기 전에 @@이에게 화장실 가고 싶진 않은지, 살짝 물어봐야겠다.


이후에 남은 아이들 하원도 잘 마치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사님과 수다를 나눴다.


기사님) 나는 그게 무슨 물인가 했어요. 차에서 나오는 물이면, 뜨거울 수 있어서 애들 다칠까 봐 놀랬네 나는.


나) 그쵸 그쵸. 어머니께서 기사님께 죄송하다고 전해드리래요~


기사님) 아이 뭘. 선생님이 센스 있게 잘했어 아주 그냥. 애들 눈치 못 챘죠?


나) 네 눈치 못 챈 것 같아요ㅎㅎㅎ


기사님) 선생님이 잘했어


나) 감사합니다 흐흐


나만 잘한 게 아니다. @@이와 같이 버스에 탔던 우리 모두가 잘했다. 


정말로 눈치 못 챈 아이들도,

눈치챘지만 끝까지 모른 척 해준 아이들도,

작전에 동참해 주신 기사님도.


우리 모두가 잘했다. 


상황을 잘 해결하고픈 맘에 순간적으로 긴장을 많이 해서, 머리도 좀 아프고 기운도 다 빠졌지만 기분은 좋다.


오늘의 일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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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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