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사가 신효인 Nov 16. 2023

이미 데뷔한 작사가의, 작사 오디션 합격

1차 오디션 이야기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


오늘 비가 내리네요. 마지막 가을비일까요?

출퇴근길 힘들진 않으셨는지요.

수능 치른 친구들도 고생 많으셨어요.


 좋아하시나요? 저는 무척 좋아해요. 겨울 시즌 송 시안을 쓰는데, 일찍 크리스마스를 걷는 기분이라 좋더라고요. 행복하게 썼어요!


이번 글에서는 저의 작사 오디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해요. 사실... 지금 글의 서두부터 스스러움과 격하게 다투는 중이랍니다 하하핫... 패기와 열정, 그에 비례하는 연약함과 서 범벅이었던 그때 그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봅니다.


2022년과 새로운 해가 바톤 터치하려는 즈음, 어학원의 겨울 방학이 시작되어서 긴 휴가를 가졌어요. 원래는 휴가 때마다 여행을 갔었는데, 좀 쉬고 싶다는 생각에 이번 겨울 연휴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해가 바뀌면서, 갑자기 확 무기력해졌거든요. 나이는 한 살 더 먹는데, 작사 관련해서는 여전히 제자리라는 생각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던 때였어요.


작곡가님께 메일을 보내고, 작사 일거리를 알아보고, 작사 오디션을 찾아보고 하는 게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었죠. 그래서 약간...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심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무엇인가가 빛을 잃고 시커먼 채로 시간을 꽤 보냈어요.


휴가가 끝나가는 무렵,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는데 '작사 오디션 한 번 검색해 볼까' 하는 저랑 '또 없겠지' 하는 저 이 둘이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더라고요. '검색해 볼까'하는 제가 근소한 힘 차이로 이겼고 저는 맥없이 폰을 들고 '작사가 공고'를 인터넷 검색창에 쳤죠.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작사 오디션이 있는 거예요. 보자마자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아서는, 가빠지려는 숨을 고르며 다시 꼼꼼하게 공지를 읽었죠.


날짜 지난 오디션 아니고? 작년 거 아니고? 진짜야 이거?


진짜 맞더라고요. 1차 오디션이 새해가 되자마자 열렸고, 마감까지 며칠 안 남은 상황이었어요. 마감일을 지나치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힘내준 '검색해 볼까' 했던 제가 얼마나 고맙던지. 실천해 준 제 손가락이 얼마나 예쁘던지. 저는 바아-로 책상에 앉았죠.


1차 오디션은 오디션 응시자가 팝송을 자유롭게 선정하고, 해당 팝송을 개사하는 거였어요. 제출 시안은 최소 2개에서 최대 5개. 시간이 없었던 저는 욕심 안 내고 2개의 시안을 제출하는 걸 목표로 잡았어요. '시안을 많이 제출해야 유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양보다는 질로 승부 보겠다는 선택을 했어요.


작사를 포함해서 글을 쓸 때, 백지를 쳐다보고 있는 순간은 항상 어렵더라구요. 곡도, 화자도, 내용도 다 제가 정할 수 있다는 그 자율성이 좋으면서도 그 자율성이 백지를 더욱 분명하게 해 어렵게 느껴졌어요. 작업 방향을 정해줄 영감이 필요해서, '투자'의 개념으로 모자란 작업 시간에서 일부를 떼어내 유튜브를 서핑했어요. 오디션을 진행하는 회사의 곡 작업 이력을 보고, 관련된 K-Pop 무대들을 찾아봤. 알고리즘을 타고 또 타며 여러 영상들을 모니터했어요. 그러다 지난 연말 큰 화제가 되었던 가요대축제의 <No Diggity> 무대를 다시 한번 시청하게 되었어요. 보면서


저 자신감 넘치는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때는 언제일까?


싶은 거예요. (여러분 이런 거 궁금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편이어요...ㅎ)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No diggity> 무대 속 더보이즈 주연 님을 메인 캐릭터로 잡았죠. 그러고 나니까,


주연 님의 솔로 곡이 나온다면, 어떤 곡이 좋을까?


싶더라고요. 이런 아이디어들을 쌓아 올리며 가사 스토리를 만들어 갔어요.


그다음 더보이즈 주연 님의 강점과 가사 내용을 잘 표현해 줄 곡을 찾기 위해, 수많은 팝송을 듣고, 또 들었죠. 그러다가 Christian French의 <head first>라는 곡을 만났고, 듣자마자 홀려버린 저는 바로 그 노래를 찜!! 꽁!! 픽스!! 곡에 <Scar>이라는 제목으로 연인을 잃고 방황하는 이의 이야기를 썼어요. 화자와 화자가 처한 상황을 계속 이미지화하며, 화자의 심리가 청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게 가사를 쓰려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나요. 


두 번째 곡은 무조건 첫 곡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인 걸로 고르려 했어요. <head fisrt>와 같은 곡도 소화할 수 있고, 확연히 다른 무드의 곡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TRXD & Peder Elias의 <Care Less>라는 곡으로 두 번째 시안 작업에 들어갔어요. 이 시안을 쓸 때 'care less'라는 단어를 어떻게 할 건지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대로 가져갈 갈까 or 다른 단어로 대체할까] 이 단어가 뭐로 픽스 되느냐에 따라서 스토리 방향도 잡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였죠.


저는 'airless'로 바꾸는 걸 택했어요.


아주 잘 붙어있는 'care less'를 이길 수 있을까?
더 입에 잘 붙고 귀에 꽂힐 수 있을까?


싶어 쫄기도 했는데, 쫄면.. 뭐 되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린 선택을 과감하게 밀어붙여봤어요. 'airless'로 곡에 여름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첫 번째 시안과는 달리 아티스트를 특정하지 않았고, '혼자서 꽤 오래 키워온,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려는 20대 남성'으로 화자를 설정했어요. 이 위에 곡의 청량감과 바다를 얹어 스토리를 쌓아갔. 곡이 제 머릿속에서 그려내 주는 이미지에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 캐릭터가 윤지성 님으로 샤악- 보이더라고요. 윤지성 님의 목소리와 보컬 스타일도 곡 위에 얹어지는데, '아, 이분이다!' 했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윤지성 님을 화자로 두 가사를 고 다듬요.


이 시안은 'Before The Summer'이라는 제목을 붙여주었어요. 가사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키워드(airless)를 제목으로 하기보다는, 가사 전체 내용을 함축하면서도 곡의 무드를 제목에 담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태블릿에서 두 개의 시안 작업을 모두 마치고, 노트북으로 넘어왔어요. 워드로 시안 파일을 만드려는데 어떤 양식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가사 시안의 표준을 본 적도 없고, 관련 안내도 오디션 공지에 없었구요. 그래서 저는 제목을 가운데 뙇 볼드로 넣고, 두 단으로 가사를 넣었어요. Verse나 Pre 등 파트 구분도 안 하고 가사만 딱...! 정말 백지상태로 출발했던 저...ㅎ 지금에 와 보니 새삼 참... 민망하네요. 악!


부족함에 무척 부끄럽지만.. 여기까지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음 해서 당시 제출했었던 <head first> 시안을 사진으로 첨부해 볼게요.


-제가 일을 해보니, 두 단으로 가사를 넣는 경우는 종종 있더라고요. 기본 양식은 '한 단 쓰기'이나, '두 단 쓰기'는 업계에 허용되는 범위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Verse나 Pre 등 파트 구분 표시는 꼭 해야 하더라고요. 이 점 참고해 주세요!-


대망의 시안 제출 날 두둥


시안들은 구글 폼으로 제출하는 거였어요. 인적사항을 단답형으로 간단하게 적고 작업한 시안들을 첨부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제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첨부할 수 있는 파일 개수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두 개의 시안을 썼다고 해서 두 개의 시안 파일만 첨부할 수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문득..


날 처음 소개하는 건데... 서면으로라도 인사를 드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러한 가사가 나왔는지 설명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디션에 정말 붙고 싶었고, 이 마음과 저를 어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획서'...라고 명하기에는 조금 거창하지만(편의상 그렇게 부를게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시안 작업 을 적은 파일을 하나 더 만들어서 파일 첨부란에 넣었어요. 그렇게 저는 시안 두 개를 포함해 총 세 개의 파일을 제출했습니다.


이 또한 독자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왕 부끄럽지만... 기획서 파일도 사진으로 첨부해 볼게요.

-시안을 준비하며 노트에 적었던 브레인스토밍 내용들을 위처럼 문서에 정리했어요. 다시 보니... 여러 가지가 문서에서 느껴지네요. 그리고 이 문서를 썼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는 제가 오디션을 볼 때 '진짜 기깔난 시안'을 제출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혀요. 절대요. 그럼에도 제가 오디션에 붙은 건, 1차 오디션 시안들과 그 기획서 파일 어딘가에서 가능성이 어필되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사람마다 보는 그 지점은 다 다르긴 할 텐데, 오디션 합격까지 저를 데려다준 이 문서 속에 존재하는 작지만 분명한 그 지점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왕소심이인 제가 이 글을 발행한 후 밀려올 감정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과거의 여실한 제 처절함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영 쉽지 않네요.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 맘이 다른 것들보다 좀 더 커요. 막막함과 오랫동안 싸워야 했던, 작사가로 데뷔를 했으나 다시 출발선에 서서 오래 머물러야 했던 당시 저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도 필요했거든요. 그때 제가 겪었던 외로움을 현재 겪고 계신 분들께 공감을 전하고, 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오디션 봤을 때 보다 지금 많이 컸고, 또 발전했거든요. 저 시간과 저 작업들을 피하고서는 지금에 못 왔을 게 분명해요. 그래서, 용기 내어 글을 올려봅니다. 부족하지만, 멋진 지난 발걸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혼자 일하는 초보 작사가의 TIP' 글에서는 2차 오디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날이 부쩍 많이 추운데,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최종 가사 시안이 나오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