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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Dec 18. 2023

1019일 만에 두 번째 곡이 발매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버텨봤는데, 진짜 되더라고요


이 글을 쓰게 될 날을 그토록 오래 고대해 왔는데, 막상 키보드에 손을 얹으니 무슨 말부터 야 할지 모르겠다. 태블릿 화면만큼 내 머릿속도 하얗다. 떠오르는 대로 편하게 적어보는 일기 스따뚜-


나의 두 번째 작사 작업물이 발매되었다.


작사가의 길을 걷겠노라 결심을 세운 지 50개월, 데뷔 곡이 나온 지 33개월 만의 결과이다. 그동안 수-많은 거절을 맛보았고, 곡 발매가 몇 번 엎어지기도 했다. 작사 오디션에 붙어 기회들을 얻었으나, 제출한 시안들 중 단 하나도 빛을 보지 못했다. 공백기가 길어지고, 반려 시안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좌절감과 불안은 커져갔다. '그래 쉽게 성공하면 재미없지. 나중에 아~주 맛 성공썰 풀라고 이러나 보다~' 하고 멘탈을 다잡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드디어.. 두 번째 곡이 나왔다. 드디어..


해냈!


가장 따끈따끈한, 시안 채택 소식을 들은 날의 이야기부터 적어야겠다.


어학원에서 퇴근해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첫 숟갈을 입에 넣으며, 핸드폰을 보니 카톡이 와있었다. 작사 오디션 붙은 곳의 대표님이셨다. 인사와 함께 통화가 가능한지 묻는 내용이었다. 심장이 철렁. '나 잘리나 보다' 했다. '오디션 붙고 1년 동안 결과물을 못 내서, 수고했다고 이번 달까지만 함께 하는 거라고 말씀해 주시려나 보다. 연말이니까.. 앗휴 체하것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입 안의 음식을 급하게 삼키고, 무거운 손가락으로 답변을 보냈다. 곧바로 이어진 통화는 예상과 달리 매우 밝은 분위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대표님께서 '우리 미팅을 못 했었는데, 꼭 만나야겠어요!'라고 굉장히 신나게 말씀하셨다.


엥..?


저 말의 참뜻을 파악해 내기 위해 순간적으로 모든 체세포가 전력을 다 해 움직였다.


인사치레로 하는 한 번 보자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에엥..? 왜지..? 무슨 말이지..?


뇌가 데굴데굴 데구르르르 바쁘게 굴러갔다. '엇?! 설마?!'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초.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바빴던 1초가 다 지나간 순간, '작가님 시안 됐어요!!!'가 내 달팽이관을 때렸다.


대표님의 말을 듣자마자, 그냥 뿌엥 울어버렸다. 가래떡 뽑듯이 단전에서부터 눈물이 밀고 나왔다.


진짜요?ㅠㅠㅠ 진짜 제 게 됐어요?ㅠㅠㅠㅠ 엉엉ㅜㅜㅜㅜㅜ 어떤 시안이요?ㅠㅠㅠㅠㅠ


비즈니스 통화인 만큼 완-전 프로셔널하게 임하고 싶었는데 일찍이 글러먹었다.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이구 아이구' 소리와 '왁학학학'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대표님 외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는 듯했다. 이런;; 그만 울고 싶은데 안 멈춰졌다. 웃음소리를 비집고 '죄송해요ㅠㅠㅠ 눈물이 안 멈춰요ㅜㅜㅜ'라고 중얼중얼... 지금 글 쓰면서도 창피해 죽겠네. 어휴. 대표님께서는 한참 웃으시곤 어떤 시안이 채택됐는지 말씀해 주셨다. 한 달 전에 썼던 겨울 시즌 송 시안이었고, 단독 작업물이었다.


진짜요??ㅠㅠㅠㅠ 감사합니다ㅜㅜㅜ 저 그거 쓰면서 너무 행복했거든요ㅠㅠㅠㅠ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지분과 곡 비, 서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통화는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 동생 방에 가서 눈물 한 바가지 더 흘렸더라지. 엉엉. 정말 기뻤다.


시안 채택 소식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없던 연락이 와서 '나 잘리는구나'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세상에.


눈물이 그렇게 많이 난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예상치 못한 소식이라 놀랐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꿈이 이뤄졌다는 게 신기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고,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낸 나 자신과 응원해 준 이들에게 고마웠다.


내 안의 변함없는 열정과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 '두 번째 곡 발매'라는 꿈을 끝내 이룰 수 있었다는 스토리가 훨씬 멋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난 인내한 기간 내내 깎였고, 흔들렸다. 아무런 보장/성과/보상 없이 계속 달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불안했고, 좌절했으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소모되었고, 넘어졌고, 서러워 울었다. 시안을 쓰기 싫은 날도 있었고, 그만두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랬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아까웠고, 후회하기 싫었고, 쪽팔리기 싫었고, 열등감으로부터 끝끝내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길의 '시작'은 열정과 의지, 확신, 갈망으로 졌고 '버티기'다른 감정들이 서포트해 주었다. 


아까웠다)

작사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기까지, 데뷔하기까지, 작사 오디션에 붙기까지, 두 번째 곡이 발매되기까지의 과정은 길고 험난했다. 그래서 관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관둘 수가 없었다. 하나, 하나 너무나 어렵게 얻어냈기에 쉽게 포기되지 않았다. 이 길을 접고 싶은 순간일 때면 '이제 와서 단념하기엔 그동안 해놓은 것들이, 배운 것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힘을 내 하나 또 해놓고 나면, 더 아까웠고 더 그만두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습작을 포함해 120개 정도 시안을 썼을 즈음, 가사를 쓰다가 문득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막혔던 이 뚫리는 것 같기도 했고, 뿌옇던 시야가 깨끗해진 것 같기도 했고, 무거웠던 무언가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엄청난 도약'이라기보다는, 불편했던 무언가가 마모된.. 그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시안들을 살펴봤는데, 적어둔 작업 소요 시간과 수정 과정을 모두 기록해 둔 파일의 페이지 수가 처음에 비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능률과 효율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참 중독 같은 게.. 고 느끼고 나니까 포기하기가 어렵더라. 욕심도 나고,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후회하기 싫었다)

막막함이 커질 때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라도 빨리 미련 버리고, 다른 걸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다른 일을 해도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거라는 걸. 또 조금 해보다가 다른 궁리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을 하나.


그리고 인간은 본디 과거에 남겨둔 다른 선택지에 대해 미련을 갖기 마련인 법. 내가 만약 작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로 넘어갔다면,


그때 작사 그만두지 말고 좀만 더 해볼걸.


하고 분명히 아쉬워했을 거다. 이건 장담할 수 있다. 그래서 난 다른 생각하지 않고, 내가 내린 선택에 머무르기로 했다. 현재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내가 훗날 정말 작사를 결국 그만두게 된다면, 그때 아쉬울 것 없이 다 했다며 웃으며 떠날 수 있을 만큼. 그 순간이 지금은 아니다. 아직 나는 더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쪽팔리기 싫었다)

'작사가 신효인'을 내걸고 브런치를 운영한 지 만 2년이 됐다. 10번 찍어 어렵사리 얻어낸, 나의 정말 정말 정말 소중한 글 공간인 브런치.


'작사가 신효인'으로 브런치를 오픈한 건, '작사가 신효인'으로 살아 이 공간을 채우겠다는 내 마음가짐이자 독자들과의 약속이었다.


작사를 그만둘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러면 브런치를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너무 소중해 포기할 수 없는 내 글공간이기에, 작사를 관뒀다고 해서 여길 버리고 홀연히 떠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작사가'를 떼고 브런치를 운영해야 했고, 작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글도 써야 했다.


아악!! 상상만 해도 싫었다. 쪽팔렸고, 작사가의 길을 포기했다는 글을 발행하는 내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허락할 수 없는 기분이랄까.


'저 결국 작사 그만뒀습니다' 대신, '저  해냈어요 여러분!! 두 번째 곡이 나왔어요!!'라는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맘이 보글보글 끓었다. 답이 나왔다.


작사 그만두고 브런치 어떻게 할지 고민할 에너지로, 더 성실하게 시안을 쓰는 수밖에. (진짜로 두 번째 곡 발매됐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 지금 새삼 너무 기뻐요 독자님들. 어흑 또 눈물 나. 그만 울어 쨔샤.)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해 본 적이 있는가? 난 있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께서 계속 곡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싸인 앨범을 받고, 아티스트 공연에 초대되는 걸 보면서 축하의 마음과 존경심이 들었다. 동시에 동경심과 열등감도 수반되었다. '열등감'을 마주했을 땐, 뭐랄까.. 좌절감과 부끄러움, 슬픔을 느꼈다. 스스로 난 아직 부족하다는 걸 받아들여서였을까. 그 순간 무기력해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그런데, 동시에 오기도 들었다.


나라고 왜 안 되겠어!!


하는 마음. 그리고 무기력해져서 여기서 그만둬버리면 이 열등감은 나를 평생 쫓아다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열등감을 타파하는 길은, 끝까지 해내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는 게 답이 아니었다. 결국 해내서, 나를 괴롭히는 열등감으로부터 꼭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걸 깨닫고 나서는 열등감을 애써 밀어내지 않았다. 되려 옆에 딱 붙들어 앉혀놓고, 시안 쓴다고 애쓰는 새벽들을 불태우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건 꽤나 괴롭다. 나 자신이 못나보여서. 그렇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도 해주었다. 이렇게 사랑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날 보다 멋지게 만들어준다. 진짜.


위와 같은 이유들 덕분에 4년 넘는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전 제 꿈에 대해 흔들리지 않았어요. 확신이 있었죠.'의 스토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번아웃도 크게 왔었고. 그때 대차게 꺾인 게 몇 달을 갔다. (더 솔직하게 적자면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


힘들다고 특별히 입 밖에 내지 않고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친구들에게서 같은 릴스 영상이 와있었다. 보고 내 생각이 나서 보냈다고들 했다. 그 영상은 전날 청룡영화상에서 전여빈 배우 님이 전한 수상 소감이었다.


"중꺾그마"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얼마든지 꺾여도 괜찮다고, 마음 하나 있으면 그 마음이 믿음이 되어서 실체가 없는 것이 실체가 될 수 있도록 엔진이 되어줄 거라고, 혹시 누군가가 자신의 길을 망설이고 있고 믿지 못하고 있다면 믿어도 된다고 너무 응원해주고 싶고요.

제가 <거미집>에서 정말 사랑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김기열 감독이 이제 '내가 재능이 없는 걸까요?'라고 말을 할 때, '너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야. 그게 재능이지'라고 하시는데, 믿음이라는 게 참.. 나 말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믿음을 줄 때는 그게 응당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아름다운 마음 같아서 (타인은) 너무 믿어주고 싶은데 나 스스로에게는 왜 이렇게 힘들어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영화에서 그 대사를 들을 때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믿어줄 수 있는 마음만큼 나 스스로도 또 믿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혹은 내가 누군가를 믿어주지 못하겠다 싶을 때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믿어주고 싶어요. 어쨌든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설레는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전여빈 배우 님의 수상수감을 통해서 내게 응원을 전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마음과, 영상 속 "중꺾그마"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덕분에 힘이 나지 않을 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앞으로 더 할 수 있을까? 내가 재능이 있는 게 맞나?


이런 고민을 지우고 일단 책상에 앉아서 시안을 쓸 수 있었다. 그냥 했다. 일단 했다. 그렇게 하나 해나가고, 하나 더 해나가고.


그리고 도움을 받고 있는, 최근에 장착한 마인드가 있다. 친구와 나는 이 마인드를 '얼룩말 정신'이라고 부르며, 이 마인드를 잃지 않도록 서로 격려해주고 있다. '아 오늘도 얼룩말 정신 잃지 말자고오-!' 하면서ㅋㅋ


얼룩말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다가, 사자가 자신에게 달려들면 전속력을 다해 도망간다. 잡히지 않고 잘 탈출한 얼룩말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풀을 뜯는다.


아, 내가 아까 거기서 풀을 뜯어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자가 이렇게 달려들었을 때 거기로 피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또 오려나? 그땐 어떻게 대처하지?


하는 생각을 안 한다고 한다. 그 순간 그 상황을 잘 해결했으면 끝. 이러쿵저러쿵 뒤끝이 없다.


나도 이 마인드로 삶을 대하니 맘이 한결 편해졌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나 미련, 미래 예측, 최악의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 등을 머릿속에서 덜어내어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도 줄고. 그래서 그저 '현재 쓰고 있는 시안'에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더라. 


삶을 살다 보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면 좋겠고, 저 기회가 나에게 오면 좋겠고, 그날에 비가 안 오면 좋겠지만 이 모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21년 8월 5일 올릭핌 야구 제2 준결승 1회 말 KBS 중계 중에 이러한 멘트가 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신경 쓰지 말아라.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문장이다. 100번이 훌쩍 넘는 거절을 겪는 동안 버텨내게 해 준 문장.


내 시안이 채택되고 아니고는 내 권한 밖의 일이다. 내 몫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해 최선을 다 해 시안을 쓰는 것. 그것뿐이다. 당시에 이 몫을 해냈으면, 그걸로 된 거다. 그 노력이 '발매'라는 결과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내 자양분이 되어주더라. (이렇게 생각하면, 시안 쓸 기회를 받아보는 것에 새삼 또 감사해진다.)


내가 친 공이 뜬 공이 되기도 하고, 땅볼이 되기도 하고 그런 거지. 그 과정을 꿋꿋이 견디며 배팅 감을 찾고 끌어올려서 안타를 치는 거고, 타율이 올라가는 거고, 홈런도 치는 거고! '발매'라는 결과물에는 내 몫 외에도 타이밍, 운 등 많은 게 작용하기 때문에 꼭 '내가 정말 못해서' 채택이 안 된 건 아니다. 그러므로 1시안 1좌절은 금지이다. 금지. 내가 일일이 좌절감을 맛봐보니, 나 자신만 상하더라. 으흐흐.


'좌절감' 하니까 생각난 건데, 얼마 전에 진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맛본 날이 있었다. 그 감정은 1분 정도로 짧게 치고 가긴 했지만, 순간 어학원 데스크에 엎드려 팔에 얼굴을 묻을 만큼 와르르 무너져 내렸었다. 그러고 며칠 뒤에 두 번째 곡 발매 소식을 들었다. 내 세상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조차 내 노력의 결과, 내 꿈은 나를 향해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고 생각을 해봤더니, 뭐랄까.. 음.. 고맙고, 든든했다. 혼자라고 느꼈는데 아니구나 싶기도 했고, 다 무의미하지 않구나 체감하기도 했고. 기분이 묘했다. 또 내 세상이 흔들릴 때 이 경험을 기억하려 한다. 흔들리더라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두 발 디딘 채 또 올 손님을 맞이하겠노라!


사실 연말을 맞고서, 생각이 많아졌던 최근이었다. 해가 바뀌면 나이는 서른을 채우고, 작사가의 길을 걸은 지는 5년 차가 되는데 올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날 작아지게 만들었다. 처절하게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면목을 세우질 못하겠더라.


그쯤 했으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야?


는 소리를 들을까, 지레 겁먹기도 했다. 그랬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곡이 나오게 되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두 번째 곡 발매'라는 꿈이 이루어졌지만, 나는 결승선을 통과해 메달을 목에 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안다. '세 번째 곡'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또 달려야 한다. 두 번째 곡이 발매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그저 성실하게 또 시안을 써야 할 뿐. 이번엔 몇 개의 시안을 거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해내봤으니 또 해내지 않을까. 어김없이 넘어질 테지만 일어서 봤으니, 힘들어도 또 이겨낼 수 있을 거다. 화이팅 나 자신.


인내의 시간을 걷는 동안 내게 힘이 되어줬던 것들, 날 버티게 해 주었던 것들을 이 글에 꾹꾹 모조리 눌러 담았다. 힘들 때 마음의 알약으로 꺼내보는 친구들의 메세지를 끝으로 이 일기를 마무리해본다. 나와 같거나 닮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일반 구독자인 척 이 글을 몰래 읽고 있을 내 친구 휴에게,


휴야, 너 브런치 닉네임 자주 바꿔가면서 내 글 몰래 읽는 거 나 사실 알고 있었다ㅋㅋㅋㅋ 잘 추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놓쳤어 지금은 닉네임 뭐야? 안 알려줄 거지? 쳇ㅋㅋㅋ 내가 한 번은 너에게 그랬지. 너는 혹시 신께서 날 돌보라고 보내주신 천사냐고. 맞다면서, 근데 사실 식탐이 너무 많아서 쫓겨난 것도 있다는 네 답장에 방에서 혼자 깔깔 웃었다 내가. 여름에 일 때문에 번아웃 왔을 때, 내가 조용히 사라졌었던 탓인지 넌 그때 이후로 내게 매일 연락을 하더라. 이런저런 인스타 릴스를 공유하면서 말야. 올해가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내가 웃거나 좋아할 것 같은, 내게 힘이 될 것 같은 릴스들과 함께 보내준 네 메세지들을 하루에 한두 번씩 확인하는 게 이제 내 일상이 됐어. 20층 계단 오르기 운동 인증샷 매일 보내는 것도! 퇴근하고 집 올라갈 때 엘베이터 타는 게 이제 어색해. 습관이 됐나 봐. 네 덕분에 올해 하반기에는 동굴에 들어갔던 적이 없어. 꾸닥 넘어졌다가도 너와의 디엠창 가서 수다 떨고 나면 또 괜찮더라. 힘들었던 일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말야. 오래 봐서 그런가, 아님 둘 다 엠비티아이가 NF라 통하는 게 있는 건가.. 내게 꼭 필요한 말들이 가득 담긴 릴스를 어떻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보내는 건지 참.. 신기해. 꾸준하게 다정한 것도 신기해. 누울 자리 보고 눕는다고, '나는 네 손 놓을 일 절대 없으니까 어디 더 해봐~ 꼭 붙어서 안 떨어질 거다'라고 말하는 너 때문에 내가 요즘 어리광이 는 것 같기도 해. 내가 넌 어쩜 그러냐고 말하니까, '전에 간장종지 친구들만 만났나!!' 하던 네가 생각나서 또 피식 웃었다 지금ㅋㅋㅋㅋㅋ 건 by 건 선택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나와 다르지만 닮은 길을 걷고 있는 휴야. 있지, 나도 네 터널에서 네 곁의 등불이 되어줄 거야. 꺼지지 않는, 따뜻하고 확실한 불! (가다가 배고프면 불에 고구마 구워 먹어야겠다고 드립 치지 마라 ㅡ0ㅡ) 묵주기도 할 때, 기도에 나도 들어가 있다고 했지? 난 묵주기도는 하지 않지만, 어학원 첫 차량 탈 때 풍경 보며 나도 속으로 매일 '휴도 오늘 화이팅' 한다. 너는 뭘 해도 될 애야. 진짜로. 잘 될 거야. 너도 널 믿는 날 믿어봐. 진지함으로 어디 가서 안 밀리는 나라서, 나 빈말 못하는 거 알지? 나도 항상 응원해. 덕분에 나도 해냈어. 고마워. 사랑해.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제가 작사한 곡 <Christmas Love>가 오늘 발매되었어요. 행복하게 가사를 썼던 곡이라,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더 기뻤던 것 같아요. 브런치에 드디어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네요.


변함없이 지지해 주는 우리 가족, 늘 곁을 지켜주고 날 돌봐주는 내 친구들,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LKY 선생님, 응원해 주는 어학원 식구들, 제가 부끄럽지 않은 작가로 살 수 있도록 존재만으로 힘을 보태주신 구독자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혼자서는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Christmas Love> 들으며 따뜻하고 포근한 연말 보내세요 :)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https://kko.to/5jSTun7FHg


https://youtu.be/E4GqenRvXhk?si=LVX6fasS6dDmyr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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