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지원했던 작사 오디션에 합격해 곡을 받기 시작했다. 마감일 표시로 달력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오랫동안 꿈꿨던 장면을 현실로 받아 드니, 설렘으로 벅찼다. 그리고 나를 뽑아주신 것에 대해,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좋은 시안으로 보답하고 싶었고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너무나도 잘 해내고 싶었다. 개인 시간을 포기하고, 잠을 줄이고, 영혼을 갈아서 의뢰가 들어온 시안들을 모두 작업해 제출했다. 어렵게 얻은 이 기회들을 단 하나도 놓칠 수 없었고, 더불어 난 '기회를 선택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마감 스케줄을 전부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데모를 받아보는 기쁨과 데모가 불러일으키는 열정과 욕심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그런데 여름쯤 부쩍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불을 붙여도 잘 안 붙는 그런 느낌. 지친 것이었다. 잠이 너무 부족했다. 표현이 가혹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지친 내가 너무 가소로웠다.
ㅋ... 1년도 안 되어서 나가떨어진다고? 작사라는 꿈에 그렇게나 진심이라며. 근데 이거하고 지쳤다고? 이런 나약함 용납할 수 없음. 버티삼.
진심이었다. 버텨줬으면 했다. 놓을 수 없었다. 그에 정말 이를 깍 깨물고 계속 모든 마감을 소화해 냈다. 그런데 메일이 차곡차곡 쌓여 마감일이 같은 시안이 7개가 된 날, 와르르 무너졌다. 핸드폰에 뜬 메일 알람을 보고, 저녁을 먹다가 '으앙'하고 울어버렸다.
멘탈이 나가버렸던 나는, 더 이상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다고 느꼈던 나는 눈물을 훔치며 대표님께 일을 그만두겠다는 메세지를 핸드폰에 토독 토독 써 내려갔다. 그 와중에 머릿속인지 마음속인지 모를 어딘가에서 '미친년아~~ 정신 차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몇 년을 들여서 어렵게 얻은 기회르을~~ 아이고오~~ 지 팔자 지가 꼰다~~ 다 날려먹게 생겼네~~ 난리 났다~~'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타이핑하던 손을 멈췄다. 메세지 창을 나가서 메일 앱을 열어 그동안 받았던 메일, 회신했던 메일들을 스윽스윽 스크롤을 내리며 훑어봤다. 스크롤이 꽤나 길게 내려가더라. '내가 시안을 지금까지 몇 개를 썼지..'하고 태블릿을 열었더니, 폴더에 표시되어 있는 100에 가까운 숫자. 그 숫자는 내가 올해 반려 당한 횟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얻은 기회의 수였다. 그 숫자를 본 순간, '약 반년 동안 대충 100번이나 성과를 못 냈는데도 대표님은 내게 계속 기회를 주고 계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목구녕으로 쏙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만두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 신청 10수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독려하며 다시 버텨나갔다. 수정 요청 메일은 여전히 올 기미가 없었고(수정 요청이 온다는 건, 내 시안이 채택되었다는 의미), 새로운 시안 의뢰 메일만 계속 왔다.
또 반려됐나 보네. 이 곡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기회를 주시는 건 '싹수가 있으니 좀 더 해봐라! 이번에는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의미 아닐까?
긍정 회로를 돌리면서 새 메일을 열었더랬지.
그러면 그 뒤로다시 처음처럼 짱짱하게, 힘 넘치게 달렸느냐? 노우~ 얼마 못 가 또 자빠지고, 잉잉 울고, 일어나서 달리다 퍼지고, 거하게 아팠다가 또 일어나서 걷다가 기다가.. 뭐.. 그랬다.
일단 이것만 쓰고 그만둘 지 생각해보자 - 다 썼다. 다음 데모는 어떤 거지.. 들어나 볼까 - 노래 좋다... (떠오르는 단어나 구절 끄적끄적) - 아! 진짜 이것만 쓰고 대표님께 말씀드리자 - 다 썼다. 메일이 또 왔네. 무슨 곡일까.. 들어만 보자. 들어만 보는 거다. (끄적끄적)
이 과정을계속 반복했다. 받은 메일을 모른 척 할 수 없었고, 무슨 곡일까 궁금하고, 데모를 들으면 또 욕심이 나고, Verse 1을 적다보면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겠고.. '너무 힘들다. 나 진짜 더는 못하겠다'며 맘이 울다가도, 정신 차리고 나면 시안은 모두 제출되어 있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고 숨 쉴 틈이 생기면, 살만 해지면 그만둘 생각은 약해져 있었다.
돌이켜 보면, 저렇게 무너졌을 때 힘든 부분이나 고충을 대표님이나 직원분께 상의를 드렸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못 그랬던 이유는 소심한 것도 있고, 내가 당연히 그리고 능히 해내야 할 내 몫을 못하겠다고 징징대는 꼴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지금 출근하고 있는 어학원에 부장님도 원장님도 그리고 내 친구들도 힘들 때 제발 이야기 좀 하라고 한다. 혼자 속 곪지 말고. 그래도 된다면서. 이 말을 자주 듣는 거 보면.. 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아, 그치만 말 못 하겠는 걸!! 못하게씀.. 안 해봐서 못하게씀..ㅠ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서른 바라보는 다 큰 어른이지만, 아직.. 이것저것 많이 서툴다. 어쩔 땐 애 같기도 하고.. 이 나이쯤 되면 되~게 프로페셔널한 뭔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업무 메일 받고 밥 먹다'후어엉' 울기나 하고.. 우띠..
뱅뱅뱅 아주 질리게 돌고 돌더라도 '내 자리는 여기(작사)다'라는 확신(근거는 없음ㅎ)이 맞다고 믿으며(맞기를 바라며) 또 걸음을 내딛는다.
아즈아!! 인생 뭐 있어!! 가보자고!!!
잉잉ㅠㅠ 그지 같아 못 해 먹겠어
아냐!! 넌 할 수 있어!!!
엉엉엉ㅜㅜㅜ 다 때려쳐ㅠㅠ
아 즐겨!! 너 일 없을 때는 없다고 울고, 많으면 많다고 울고 뭔데!!!
우엉엉ㅠㅠ 나도 알아 뭐라 하지 마라고ㅠㅠ 엉엉
해보자고!! 지금 아님 없어!! 나중은 없어!!
을 반복하며..ㅎ
+
글을 마무리하면서 맘 속에서 정리가 된
하나.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좋다
둘. 내가 영화나 음악, 글 등을 통해 향유하는 행복을 나도 누군가에게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모두 잘 지내시죠?
워낙 속 이야기를 하는 게 서투른 저라, 번아웃이 왔던 걸 밝히는 게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냥 당시 제 심정들을 있는 그대로 일기장에 쓰듯 다 솔직하게 적어봤어요. 발가벗은 기분이에요! 하하하
오늘 처음으로 오디션 이야기를 적었어요. 일 없어서 고생하더니 올해는 뭐 하길래 바쁘다고, 힘들다고 우나 궁금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연초에 작사 오디션에 붙었거든요. 바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던 게, 삶에는 시간이 좀 지나야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더라구요. 충분히 겪어보고, 해낸 뒤에 정리가 되어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오디션도 그에 속했어요. 그동안 못했던 작사 이야기들을 이제 차차 해보려고 해요. 글 내용에 따라서 이 매거진이나 '혼자 일하는 초보 작사가의 TIP' 매거진에 나뉘어 천천히 올라갈 예정이에요. 가끔 생각나실 때, 필요하실 때 들러서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