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사가 신효인 Apr 27. 2023

일도 하고, 작사도 하는 거 힘들지 않아?

N잡러의 이야기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로부터 요즘 종종 듣는 말이다. 


올해 잠을 3시간 이상 잔 날을 세어보는 데 손가락개나 필요하지 않다. 힘드냐고 물어본다면, 힘들다. 잠을 못 자니까. 그런데, 그 힘듦이 내가 투잡인 것 때문에 가중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학원 일 덕분에 에너지가 끌어올려질 때가 많다.


나는 한 가지에 집중을 하면,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편이다. 검지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두 눈동자가 미간으로 모이는 것과 비슷하달까. 가사를 쓸 때 한 줄, 한 줄에 몰입하다 보면 가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못 살필 때도 있고, 이 부분이 맘에 안 드는 데 뭐가 문제인지 파악이 안 될 때가 있고, 이 단어를 바꿔주고 싶은데 대안이 전혀 안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 환기를 좀 시켜줘야 하는데, 나는 엉덩이를 한 번 붙이면 잘 안 뗀다. 집중 페이스가 끊기는 게 싫고, 한 번 퍼지면 다시 기강 잡는데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게 싫어서 그렇다. 효율성에 아무 짝에 도움 되지 않는 그 고집을 꺾어주는 게 '어학원 출근'이다. 나의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멱살 잡고 끌고 가주는 것도 '어학원 출근'이고.


어학원 출근 덕분에, 시안 쓰느라 밤을 새웠더라도 오전에 일어나서 씻고 밥도 챙겨 먹는다. 출근이 아니었다면 내게 사람다운 생활 패턴과 용모는 없었을 거다. 오직 '시안 마감 시간'을 중심으로 내 삶이 돌아갔을 거고, 시안 별로 제각각인 마감 시간을 쫓으며 밤낮없이 방구석에서만 지내는 나날을 보냈을 거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적어보려 한다. 전 날 일요일부터 작업하던 시안이었는데, 새벽 5시 넘어서까지 붙들고 있었는데도 마지막 코러스(후렴)가 도저히 맘에 들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럴 때는 2시간이라도 잠깐 자고 일어나서 refresh 된 뇌로 작업을 하면 좋을 텐데, 자고 일어나서도 정리가 안 되면 2시간 잔 게 너무 후회될 것 같아서, 그저 마감 시간에 더 쫓기게 될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해결하고 자겠노라고 볼을 꼬집어 가며 버텼다. 그러다 결국 날이 다 밝고서야 포기하고 눈을 붙였다.


2시간 반을 자고 어학원 출근 시간에 맞춰서 일어났다. 후닥 출근 준비를 하고 나를 데리러 집 앞에 오는 학원 버스를 타러 집에서 나왔다. 그 순간 내가 어제 하루 종일 해를 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방에 암막 커튼을 틈새 없이 쳐놓은 터라) 평소 햇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때는 일부러 얼굴을 해로 향한 채 눈을 감고 햇빛을 즐겼다. 버스가 평소보다 조금 늦길래 옆에 피어있는 꽃들도 구경을 했다. 싱그러운 초록 잎도, 진한 분홍색 꽃잎도 정말 예뻤다. 어학원 버스에 올라타면 기사님께 인사를 건네고 내 좌석의 창문을 꼭 여는데, 창문을 열자마자 기분 좋은 바람이 내 머리칼을 흩트렸다. 높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낮게 깔린 풍경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데,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동안 내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첫 승차 장소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는데, 한 줄로 서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또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뭐가 그리 좋더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아이들 존재 자체가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학원에 와서는 여러 사람들과 인사와 말도 나누는데, 그 순간에 또 행복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하니 좋을 수밖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시안들에 파묻혀 지냈던 주말 뒤라서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짧은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가사 어딘가가 별로인데 어디가 별로인지 모르겠던 새벽과는 다르게, 누가 하이라이터를 그어준 것처럼 수정해야 할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대안도 빠르게 떠올랐다. 그 순간 이게 '환기'의 힘이구나 싶어서 신기함과, 마감 시간 안에 마무리를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다. 다행이었다. 결국 맘에 드는 최종본으로 마감 기한에 맞춰 시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


'어학원에서 근무하는 시간에 시안에 좀 더 집중하면, 더 좋은 시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면 잠을 더 잘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누군가 내게 한다면, 나는 '글쎄'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위의 일화에 잘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어학원 근무가 시안 작업 시간을 뺏는다는 느낌 없이, 되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니까.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따져서 기다, 아니다 확실하게 답을 내릴 순 없는 문제이다. 만약에 지금보다 잠을 더 못 잔다면 나의 건강, 시안과 어학원 근무 질을 위해서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작사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에도 올해도 어학원 일을 계속하는 건 3년 간 일하면서 어학원을 애정하는 마음이 커진 것도 한몫한다. 나를 아껴주는 곳이니 당연하다. 소중한 일터이다. 분홍차 기사님이 휴가 잘 보냈냐고 내게 물으시면서 당신은 휴가 때 얼굴에 점 다 뺐다고 냅다 자랑해 주시는 것도 좋고, 부장님이 우리 효인쌤 주말 잘 보냈냐고 혹은 작사일은 잘하고 있냐고 물어봐주시는 것도 좋고, 나의 간식 요정 엠마쌤이 수시로 카운터에 슬쩍 간식 밀어주고 가는 것도 좋고, 중국어 쌤이 밀크티 좋아하냐고 -좋아한다는 내 말에- 만들어주겠다고 해주시는 것도 좋고, 그레이스 쌤이 볼 때마다 키가 크는 것 같다고 농담 건네주시는 것도 좋고, 학부모님이 주신 간식을 선생님들끼리 나눠먹는 것도 좋고 다 좋다. 따뜻한 어학원 식구들도, 그들 사이에서 느끼는 이런 사소한 행복들도 다 좋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3년 사이 많이 변했구나' 하고 느껴진다. 5년 전에 심리상담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했던 말이 '전 사람이 싫어요'여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던 나였는데.


부장님께서 2~3시간 자며 일하는지 티가 안 나서 몰랐다고 하셔서, 아직은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생각이다. 건강이 너무 나빠지거나, 시안이나 어학원 업무 질이 떨어지면 그때는 두 가지 중에 하나 선택을 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어학원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다. 한 주에 시안 8개 제출까지 소화를 해봤다. 내가 얼마나 더 할 수 있는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갑자기 수면 시간이 확 줄고, 내 시간이 사라지게 된 건 사실 많이 힘들다.  힘듦에 아직 적응하는 중이다. 일이 없어서 속상해했던 지난 3년을 계속 상기하면서 버티고 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힘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다. (단순히 잠을 못 자고 내 시간이 없어서인 것뿐만 아니라, 외로운 이라서 그렇다. 이 이야기는 다음 작사글에서 자세히.)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컸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후로 몸무게가 40kg대였던 적이 없는데, 지난달에 49kg를 찍었다... ' 삶을 내가 계속 영위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스친다. 그럴 때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바쁠 거라고 속단하는 시건방을 떨어서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나는 뭐든, 뭐가 되었든 초기에 '저항' 시기를 꼭 겪는다. 내가 변화에 무지하게 약해서 그렇다. 되게 필요로 했거나, 원했거나, 배우고 싶었던 거라도 막상 시작하면 금방 고꾸라져서 도망가려고 한다=원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런 나를 잘 알기에, 습관 혹은 일상이 될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텨보려 한다. Go or Stop은 그때 가서 생각하려 한다. 할 수 있을 때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하기! 나는 의젓하고 책임감 있는 멋진 어른이니까! 는 무슨ㅋ 어학원 부장님과 심리상담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 줘서 하루하루 해내고 있다. 선배님들이 후배 작사가들을 위해 남겨준 글과 책들을 수시로 꺼내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힘들 때 돌봐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시안 마감하고, 어학원에서 호다다닥 쓴 오늘의 일기 끄-읏



https://brunch.co.kr/@shinhyoin/80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곡 발매가 또 한 번 불발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