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다빈이(가명)가 영어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에게 칭얼댔다. 평소 명량한 아이가 꽤나 시무룩해져 있었다.
다빈) 선생니임~ 저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싶어서 손 계~~속 들었는데 영어 쌤이 안 시켜주셨어요.
효인) 그랬어? 다빈이 서운했겠다
다빈) 제가 열 번도 넘게 들었는데, 안 시켜주셨어요.
효인) 그랬어~ 그러면 다음번에는 스무 번 넘게 들어봐 봐. 애썼어(쓰담). 얼른 가서 차 타.
다빈) 네앵 (토도도도도-)
학원 버스를 타러 빠르게 걸어가는 다빈이 뒷모습을 보며 난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나도 열 번 해서 안 되면, 스무 번 하면 되잖아.
기죽지 말라고 가볍게 다빈이에게 건넨 격려가, 연속되는 거절-실패로 무기력해져 있던 스스로에게도 순간 깨달음과 힘을 주었다. 이 계기로 기운이 나서, 나도 스무 번 더 덤빌 각오를 새기며 <또 한 번의 실패기>를 명랑하게 적어본다!!!
작년에 감사한 기회를 통해 정식 작사가가 되고서, 오래지 않아 차기작들을 약속받았다. 구두 계약도 있었고, 계약금을 받은 건도 있었다. 작곡가님을 통해서 퍼블리싱 계약 제안도 받았다. 갑자기 몰아치는 기회들에 당시 햇병아리 작사가의 기분은 복합적이었다. 무척 얼떨떨했고, '계약'이라는 단어 앞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독학이었음에도 작사가로서의 일머리를 갖추었다고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여러 데모들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게 제일 설렜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려움마저 즐길 만큼 좋았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앞선 약속들은 대부분 데모를 들어보지도 못한 채 귀띔도 없이 사라졌다. 제안 주신 분들께 어떻게 된 건지 여쭤봐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 약속들에 난 너무나 진심이었기에 서운하고 당황스러웠다. 말 못 할 연유가 있어 답장을 하지 않으셨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상황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데모를 들어보고 시안을 제출한 곡은 작곡가님 사정으로 발매가 무기한 연기(사실상 불발)되었다.
그래, 내가 엎어지고 자빠지지 않을 리가 없지..! 짙은 아쉬움을 애써 뒤로한 채, '다시 달려보리라'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 그런데 막상 '막막함'과 재회를 하니, 기운이 금세 빠져버렸다.
'일을 어떻게 구해야 하지..'
분명 데뷔는 했지만, 다시 0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지망생에서 작사가 신분이 되면, 프리랜서일지라도 이 막막함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거라 기대했었는데. 너무나도 큰 오산이었다. 일을 또 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만히 있는데 곡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누가 날 작사가라고 알아줄 리도 없는 걸. 크레딧에 내 이름이 들어간 한 곡과, 이제는 거짓이 아니게 된 작사가 명함에 의지해 다시 한번 힘을 내보았다.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보자!
'그래서.. 뭐부터 하지?'
[할 일이 없음]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이니, 손 가는 대로 하자!!! 싶었던 나는, 좋아하는 노래들의 가사를 펼쳐놓고 가사 공부를 들입다 했다. 일이 없더라도 감을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작사 필드에서 일거리를 구하는 건 세상 막막할지라도, 원하는 가사들을 꺼내보는 건 클릭 몇 번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수많은 자료들을 방 안에서 접근 제한 없이 이렇게 마음껏 볼 수 있는 분야가 또 있을까? 검색해서 읽어볼 수 있는 가사들은, 그러니까 발매된 곡의 가사들은 작곡가나 회사 등에 의해 여러 시안들 중에서 '어떠한 이유'로 채택된 가사이다. 소재, 스토리 전개, 발음 디자인 등 이 가사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 곡을 가장 잘 살려주었으리라. 그 말인즉슨 그 가사에서 내가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 '왜 이 가사가 최종 선택되었을까?'를 혼자 고민하며 가사들을 맘껏 뜯어보고, 씹고, 맛보고 했다.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글감과 단어도 노트에 계속 채워 넣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쓰신 작곡가님들께 이메일로 인사를 드렸다. 이미 협업하고 있는 퍼블리싱이 있거나, 함께 일하고 있는 작사가님이 계시거나, 작곡가님께서 직접 작사까지 하실 확률이 99.99%이다. 실력이 보장된 작가가 팀에 있는데, 이메일을 보냈다고 해서 일면식도 없고 어떤 타입/어느 수준의 글을 쓰는지 알 수 없는 신인 작가인 내게 굳이 일을 주실리는 만무하다.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메일을 적는 이유는, 당첨 확률이 0.01%인 로또도 로또를 사야 당첨될 수 있는 거니까! '작사가 신효인'이라는 존재를 알려야 기회에 닿아볼 수 있는 거고, 그래야 혼자 작사 공부하고 습작을 쓴 노력도 진정한 의미를 갖고 빛을 볼 터. 그래서 '혹시 새로운 작가가 필요하진 않으실까? 너무 바쁘셔서 일을 맡아줄 사람이 좀 더 필요하진 않으실까?' 하는 희망을 갖고 인사를 드려본다. 그렇게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책임감이 생겨서, 나태해지지 않게 되기도 하고.
사실 소심한 편이라,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는 게 실례이진 않을까 싶어서 매번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에 고민을 하곤 한다. 이런 내 걱정에 대해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효인) 새로 사람 구하지도 않는데, 기웃하고 인사드리면 불쾌하시거나 싫어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 새로 사람 쓸 생각 없었다가도, 그런 너한테 뭐 하나 맡겨볼 수도 있지.
친구의 말을 위로 삼아, 용기 내어 이메일을 보내곤 한다. 사람이 필요한 타이밍에 적절한 연락이기를 바라며..!!
그리고 안부를 물어주는 지인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일을 계속 구하고 있음을 서슴지 않고 밝혔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맞은 지난 5월. 1교시 하원 인원 중, 마지막 아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친구에게서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카톡으로 용건을 전하는 친구라, 예고도 없는 연락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전화를 받아보니, 작곡가인 대학원 후배가 가사 써줄 사람을 급하게 찾는데 내 연락처를 후배에게 줘도 되냐는 내용이었다. 친구가 짧게 덧붙인 설명에서 내 귀에 박힌 건, '드라마 OST'였다. 세상에. 심장이 두근. '당연히 줘도 되지~!'를 외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기회가 이렇게도 온다고?!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친구 A의 후배가 작곡가이고, 그 후배가 A에게 혹시 아는 작사가가 있는지 묻고, A에게 작사가 친구인 내가 있고, 곡이 내가 작업하고 싶었던 드라마 OST일 그 희박한 확률에 당첨이 되다니.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어떤 곡일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카카오톡으로 작곡가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작사하는 데 참고할 다섯 가지의 정보 및 자료를 작곡가님으로부터 받았다.
1) 두 문장의 드라마 줄거리 요약 2) 곡의 테마: 사랑 3) 곡에 녹여낼 감정: 애틋한 마음, 아픔 4) 가사 무드를 참고할 기발매곡 5곡 5) 트랙(반주)에 탑라인(멜로디)만 찍힌 데모 파일
작곡가님은 시간이 없어서 데모에 보컬 작업을 못했다며, 탑라인이 찍힌 파일로 작업해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안은 당일에 제출해야 했다. 매우 촉박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쫄지 않았다. 하면 되지 뭐!
나는 가사를 쓸 때 화자 설정을 제일 우선으로 하기에, 작곡가님께 보컬의 성별을 여쭤봤다. '남성'이라는 답변을 받고, 화자의 나이대도 필요해서 곡이 삽입될 드라마를 검색해 보았다. 방영 몇 달 전이라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다행히 어떤 배우가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배역을 보고 내가 세팅한 가사 속 화자는 30대 남성. 그리고 가사에 담아야 할 화자의 감정은 '애틋함'과 '아픔'이었다. 그 애틋함과 아픔을 어떻게 풀어낼 건지 정하기 위해서, 상황을 설정하고자 했다. 그런데 참고할 정보가 너무 적어서, 가사의 토대를 잡으려니 조금 어려웠다. 의뢰인 마음에 꼬-옥 드는 가사를 쓰고 싶은 마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좀 더 여쭤보는 게 좋을까?' 하고 고민을 잠깐 했다. 그러다 '난 대필 작가가 아니라 나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작사가니까!!! 내가 알아서 잘해보자!!!'라는 답을 혼자서 냈다. 촉박한 이 상황에서, '믿고 맡긴' 몫을 내가 해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정보량이 적은 걸 '어렵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게 자율성이 있다'라고 여기며, 조금 마음 편하게 내 멋대로 시안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정보가 많지 않다는 건, 작곡가님도 세부적으로 세팅해두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하며.
작곡가님이 보내주신 두 문장의 드라마 줄거리에서 드라마의 배경이 해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이 해외에서 여자 주인공을 만났고, 어떠한 이유로 남자 주인공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이 둘이 이별을 하는 상황이라고 세팅을 했다. 그다음, 가사 흐름을 잡아보았다. [홀로였던 남자 주인공의 척박한 인생에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남자 주인공에게 생긴 변화-짙어진 마음과 특별해진 둘의 관계-갑작스러운 헤어짐에서 오는 애틋함과 아픔-남자 주인공의 돌아오겠다는 메세지]를 가사에 담기로 했다.
퇴근하면서 음절을 따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안을 쓰기 시작했다. 곡이 내 취향이라서 설레고 신나면서도, 오랜만의 기회라서 잘하고 싶은 맘에 약간 긴장하면서 작업을 했다. 머릿속에서 배경 한 겹, 화자 한 겹, 상황 한 겹 이렇게 이미지를 입히고 상상으로 만든 영상을 돌리며 가사를 썼다. 수월하게 잘 쓰다가 중간에 막히는 구간을 만났는데, 비워두고 나머지 가사를 다 채우고 돌아와서도 그 구간의 가사가 떠오르질 않았다. 작업했던 4시간 중에 2시간을 그 구간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었다..ㅎ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맘에 드는 가사가 안 나오니까 혼자서 자책을 했다가, 자신을 원망했다가, 할 수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가, 갑자기 '나 원래 가사를 어떻게 썼더라..? 나 왜 고장이 났어..? 왜 안돼..? 미쳤나 봐' 했다가, '난 작사에 재능이 없나 봐.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봐.' 중얼거리고..하하하하;
그런데이런순간은혼자서습작을쓰면서도무수히마주했었고, 매번결국엔이겨냈었다. 이번에는 연습이 아니라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 시안이라서 마음이 좀 더 쫄렸을 뿐. 항상 그래 왔듯 끝까지 고민하면 기어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매달렸다. 글자 수 별로 정리해 둔 단어 모음집과 글감 노트를 수없이 뒤적이고, 온갖 단어를 종이에 끄적이고 읊조리며 '이거다!' 하는 신호가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에도결국해냈다!!!
고민끝에맘에드는표현이떠올라서, 빠르게가사를정리하고마감직전에초안을제출했다. 와.. 그렇게 막혔던 구간의 가사가 나오는 순간은 뭔가를탁넘어서는느낌이 든다. 뜀틀 하기 전에 도움닫기 하듯이. 그렇게 넘어서고 나면, 언제 막혔었냐는 듯 술술술 써진다. 그때느끼는쾌감과성취감은이루다말할수없다.
초안을 받은 작곡가님은 확인 후 연락을 주신다고 했고, 난 수정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 하고서도 반나절을 더 보냈다. '왜 수정 요청이 없으시지? 가사 통째로 맘에 안 드시나..? 핀트를 내가 잘 못 맞췄나?' 하던 중, 친구 A와 밥 약속을 잡기 위해 다시 통화를 하게 됐다. 친구 A는 오늘 학교에서 후배(작곡가님)를 만났는데, 가사가 잘 나왔다며 내 칭찬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와우웅-!
그리고 몇 시간 뒤, 가이드 음원 파일(녹음에 참여할 가수가 곡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대리 가창자가 가녹음한 파일)을 작곡가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니까 가사 수정 작업 없이, 초안 그대로 제작사에 넘길 가이드 음원 녹음이 진행된 거였다. 세상에나..? 수정 요청에 응할 태세를 각 세우고 갖추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가이드 음원은 곧장 제작사로 넘어갔다.
얼떨떨했지만 어쨌든 기쁜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쓴 가사로 가이드가 나온 건 처음이었다. 얼마나 설레고 신나던지. 내 가사로 불러진 가이드 파일을 듣고 또 듣고, 연신 흥얼거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작곡가님은 저작권료 지분 상의를 해주셨고, 이어서 유명한 남자 발라드 가수가 곡에 피칭(곡을 부를 가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곡 발매는 거의 확정된 듯했고, 나는 드라마 첫 방송 날짜를 정말 간절하게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드디어 드라마 방영이 시작되었다! OST 발매 기사를 매일 검색해 보며 '이번 주에는 나올까? 다음 주에 나올까? 내가 쓴 가사 내용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서사의 중후반에 맞춰져 있으니까 아마 이때쯤 나오지 않을까?'하고 혼자 난리 부르스를 췄다. 그런데 '이제는 발매가 되어야 하는데..?' 하는 시기가 지나서도 곡이 나오길커녕, 작곡가님으로부터 본녹음이 진행되었다는 소식도 없었다. 점점 초조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주에 발매될 마지막 OST 가창자가 여가수임을 기사로 확인했다. 그러니까... 내가 작업에 참여한 곡 발매가 불발된 것이었다...
하아아아... 정말.. 세상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너무 아쉬웠고, 서운했고, 슬펐고, 우울했다. 첫 저작권료를 받았던 작년 여름은 내 생에 가장 추운 여름이었는데, 이번 여름은 곡 발매를 기다리느라 내 생에 가-장 긴 여름이었다. 간절히 기다렸지만, 결국 발매가 되지도 않았고. 곡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에, 많이 속상했다. 하아아... 곡이 나오면 할 일들도 생각해놓고 있었는데.. 브런치 독자님들께 발매기를 들려드리며 작업하게 된 계기나, 작사 과정-비하인드, 가사 설명 등도 나누고 싶었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작품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 조금 더 자신감 있게 다음 일도 구하고.
'너무너무 아쉽다ㅠㅠ 왜 발매가 안 된 걸까.. 곡 정말 좋았는데ㅜㅜ 내 가사가 부족했나?' 하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마 무시한 무기력감에 빠져버렸다. 너무 들떠있었던 나머지, 실망이 컸나 보다. '곡이 좋으니까 킵 되었다가 나중에라도 쓰이지 않을까? 아니면 더 좋은 기회가 오려고 이번은 비껴간 건 아닐까?'하고 희망 회로도 돌려봤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마냥 속상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의미 없는 것 같고. 열등감이 생기고, 자격지심도 생기고.
그렇게 1~2주를 흘려보냈다. 최소한으로 현실에서 당장 꼭 해야 할 것들만 하면서. 기운이 날 기미가 내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뭔갈 안 하고는 오래 못 베기는 것도 병인 건지.. 마음은 소진되어서 여전히 꺼져있는데, 머리는 '이러면 뭐 해. 네 손해지. 충분히 속상해했잖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겨?'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지쳐있는 와중에,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이대로 서있으면 '두 번째 곡이 없는 작가'라는 키워드, 열등감, 자격지심도 정체된 채 내 곁에 계속 머물러있을 거라는 걸. 곡 발매가 불발된 게 '실패'가 아니라, 이대로 멈춰있으면 '진짜 실패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쳐서 주저앉아있는 내 마음의 양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어 일으켜 앉혔다. 그렇게 책상 앞으로 가서 또 작곡가님께 이메일 드려보고, 혼자 작사 공부하고, 글감 정리하고. 힘껏 팔을 젓고 발을 구르며 물살을 갈라 나아가기보다는, 흐르는 물살에 나를 맡기며 지냈다. 이메일을 보내보고 싶은 필이 온 날은 이메일 보내고, 가볍게 노래만 듣고 싶은 날엔 노래만 듣고, 가사를 파고들고 싶을 땐 태블릿을 펼쳐 들고,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 있으면 건반도 두드리고, 외롭거나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땐 작사가 선배님들의 인터뷰나 책을 찾아 읽고 하면서. 지쳐있을 땐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지내다, 서두에 적은 다빈이와의 대화로 다시 생기를 찾게 되었다.
그래. 계획했었던 <두 번째 곡 발매기>는 브런치에 못 적게 되었지만, 그러면 <두 번째 곡 발매 실패기>를 적으면 되지?!
싶어서 이렇게 브런치 글도 적게 되었다. 좋은 노래를 듣고 그 가사를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좋은 곡에, 좋은 가사 쓰고 싶어!' 하며, 다시 두근두근 하기도 하고.
수없이 거절당하고, 엎어지는 이 과정은.. 나와의 싸움이다. 이겨내야 한다.견뎌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길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성과가 없어서 멋들어지지 않지만, 결국 해내면 이 또한 멋진 결과를 만들어준 멋진 과정이 될 거라고 믿으며. 외롭고, 고독하고, 막막하고, 가난하지만 그래도 그 속의 자유로움과 능동성을 즐기며 굿 바이브로 지낼 테다 헤헿.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바빠지면 지금이 그립지 않을까아~?!?!?!
시안을 쓰다가 집중력이 끊어졌다. 문득 브런치 생각이 나서 들어와 통계를 살펴보다, 터치 실수로 이 글이 눌려 들어오게 됐다.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기분이 꽤나 묘...하다. 1년도 채 안 된 글인데 아주 옛날 옛적에 쓴 느낌이다. '이때 내가 그랬구나. 맞아 그랬지. 맘 고생했었지.' 나중에 바빠지면 한가한 지금이 그립지 않겠냐는 문장에서는, 네 말이 백 번 맞다며 더 맘 편히 즐기라고 작년의 나에게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이 글을 썼던 작년과는 또 다른 어려움과 부대끼고 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지쳤던 맘에 명랑함이 빙글 돌아 새어든다. 잘하고 있어 효인아. 예나 지금이나 강인하다 너. 보니까 쑥쑥 잘 크고 있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