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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Jul 17. 2022

작사가는 부업으로 무슨 일을 할까?

살아남으려다 보니, n잡러 #1


앞선 에피소드에서 소개했듯이, 신인 작사가인 나의 작사 수입은 불안정하다. 아직 밥벌이로는 부족하고. 이런 나의 현재  수입원은, 부업이다. 나는 부업으로, 평일 오후에  4시간씩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어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아니고, 나의  업무는 '학원 차량 동승'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통학버스에는 '동승 보호자' 의무적으로 함께 탑승해야 하는데,  '동승 보호자' 일하고 있다.


작년 2월, 작사가 지망생으로 독학을 하고 있었던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글 쓰는 삶'을 지키기 위해 일을 알아보는 것이니 만큼,

1) 내가 '글쓰기'를 소홀히 하지 않을 정도의 일이면서도

2) 학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페이가 적지 않은 일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 보니 근무 시간, 집과 근무지의 거리, 페이 등 여러 조건이 아주 잘 맞아떨어져야 했다.


일자리를 알아본 첫날 하루 종일 여러 구직 사이트를 뒤져보았지만, 내 입맛에 맞는 일자리는 없었다. '역시나'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던 시기라,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마지막 구직 사이트를 들어갔을 때는, '새로고침 한 번만 더 해보고, 없으면 그냥 접자.' 하고 거의 '포기' 상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인터넷 창을 닫기 직전에 새로운 구인 글 하나가 떴다. 이제 막 올라온 공고였다. 구인공고를 살펴보니 어학원에서 '차량 동승 보호자'로 하루 4시간을 일할 근무자를 찾고 있었다. 근무지는 바로 우리 집 앞. 도보로 2분 거리였다. 4시간 근무면 식사 비용도 안 들고, 집과 가까우니 교통비가 들지도 않았다. 즉, 지출 없이 페이가 온전히 보장이 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직장이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일자리가 정말 눈앞에 나타나다니! '여기다.' 싶었던 나는 바로 전화 지원을 넣었고, 다음 날에 면접 날짜가 잡혔다. 방구석에서 꽤 오래 글만 썼기에, 정말 오랜만의 면접-사회생활이었다. 게다가 꼭 채용되고 싶은 맘에 꽤나 떨렸다.


면접 당일, 나는 이력서를 가지고 단정한 차림으로 면접 장소로 향했다. 원장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이들이 머무는 장소라 그런지, 면접 장소가 밝고 분위기도 좋아서 걱정했던 것보다 편안했다. 원장님께서는 나와 내 이력서를 좋게 봐주시곤 '차량 동승 보호자'가 아니라, 더 좋은 일자리인 '보조 선생님' 자리를 제안해주셨다. '보조 선생님'은 '차량 동승 보호자'보다 페이가 훨씬 많았지만, 근무 시간이 좀 더 길었다. 난 본업이 있는 것과 하루에 4시간 이상의 근무는 부담스러운 상황임을 원장님께 말씀드리며, '차량 동승 보호자'로 일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원장님께서는 재차 회유하셨는데, 난 죄송하다며 단호하게 입장을 지켰다. 날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고, 또 더 높은 페이도 욕심이 났다. 하지만 부업이 본업을 주객전도 해버리는 건, 작사가가 되기도 전에 꿈이 뒤로 밀리는 건 꽤나 곤란했다. 을인 입장에 거절만 하다 면접이 끝나서, 사실 채용이 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원장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나를 '차량 동승 보호자'로 고용을 해주셨고 그렇게 내게 딱 맞는, 아주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구하게 됐다.


대망의 첫 출근 날, 근로 계약서를 썼다. 나는 단순 아르바이트 생으로 고용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원장님께서는 나를 직원(계약직)으로 채용해주셨다. 4대 보험도 가입해주셨고, 주휴 수당도 챙겨주셨다. 내심 정말 감사하고 기쁘게 첫 계약서에 싸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전 '차량 동승 보호자' 선생님이 4년을 일하셨고 이번에 그만두시게 되면서 자리가 났다는 것이다. 내가 일자리를 구할 때, 마침 4년 만에 자리가 나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이틀 간의 인수인계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차량 운행에 있어서, '사람이 바뀐 티-내가 아직 일에 서툰 티'가 나지 않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차량 시간표와 수십 명의 승하차 명단을 빠른 시간 내에 외웠고, 도로교통공단에서 교육받은 대로 차량에 탑승하는 아이들의 안전 지도에 만전을 기했다. 이러한 주 업무뿐만 아니라, 학원 내에서 손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도왔다. 부장님이 바쁘실 때 원비 결제, 비품 채우기, 인쇄물 뽑기, 전화 업무, 학부모 응대, 아이들의 작은 상처 치료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눈치껏 나서서 했다. 어려운 일들도 아니었고, 차량을 나가지 않는 시간에 멍하니 있느니 어학원 운영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열심히 일하게 된 시작은 내 욕심이었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열정이 지속되는 건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 덕분이다. 따뜻하고 좋은 직장 동료들 덕분에,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부분들이 참 많다. 내가 첫 출근할 당시 선생님들은 모두 장기 근속자셨고 나는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였는데, 텃세가 전혀 없었다. 인사도 항상 너무나 반갑게 해주시고, 고생 많다며 간식도 매번 내 것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겨주신다. 분위기 살벌한 곳에서만 일해본 내가, 덕분에 사회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제대로 느꼈다. 기쁜 마음으로 매일 출근할 곳이 있고, 나를 반겨주는 곳이 있고, 나를 챙겨주는 곳이 있다는 건 삶의 질과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 차량 스케줄이 없을 때에는, 학원에서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다. 감사하게도 내 본업을 존중해주시고, 응원해주신다. 더불어 기사님들께서는 내가 출근할 때는 학원 버스로 집 앞까지 날 데리러 와주시고, 퇴근할 때는 집 앞에 내려주신다.(최고 복지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보람이 되는 건, 아이들이 나를 참 많이 좋아해 준다는 것이다. 달려와서 내게 안기고, 내 손을 잡은 채로 예쁘게 웃으며 쫑알쫑알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러 교실에서 나올 때면 내가 있는 곳에 꼭 들러서 인사하고 가고, 하원해주고 떠나는 내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든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영감도 받고, 되려 내가 아이들에게서 사랑받는 기분도 느끼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받기도 한다.

 

이 외에도 내 직장에 대해 자랑할게 참 많다. 명절 때마다 주시는 상여금, 스승의 날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 챙겨주시는 선물, 여름-겨울 휴가. 휴일은 어떤 유형의 휴일이라도 100% 유급으로 주시고, 이번 연도에 재계약할 때는 정말 감사하게도 월급도 올려주셨다. 원장님이나 부장님께서는 내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고 나 없으면 큰일 난다고 하시는데, 물심양면 아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를 단순히 '근로자'가 아니라, 식구로 여겨주심에 항상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구한 건 정말 행운이다. '돈'을 벌려고 구한 직장에서, 내 인생 최고의 사회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어학원 일을 시작하자마자, 작사가로 데뷔도 했다. (어학원은 내게 행운의 클로버임이 틀림없다.) 이 소중한 직장 덕에, 2년째 글 쓰는 삶을 생활비 걱정 없이 영위하고 있다. 데뷔하고 약 1년 만에 두 번째 작사 작업을 하게 된 것도 어학원 덕분이다. 부업이 없었다면, 프리랜서 작사가로서의 공백기 1년을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업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쓰려고 했는데, 적다 보니 직장 자랑이 되어버렸다.


정말 극소수의 성공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신인 작사가에게 생계유지를 위한 부업은 필수인 것 같다. 작사가 지망생, 또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의 가사와 꿈에 대한 열정을 가슴 깊이 이해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꿈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 드는 조급함도 이해하고. 하지만, 소중한 꿈인 만큼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기어코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때까지 버티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현실을 챙기는 건 꿈이 작아지는 것, 또는 뒤로 밀려나는 게 아니다. 꿈을 꼭 피워내기 위한 작업일 것이다.




응원합니다.

우리 꼭 꿈에 도달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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