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망생, 준비생으로 산다는 건
무슨 일 하세요?
뭐하고 지내세요?
작사가 지망생이었던 시절, 이 두 질문을 받을 때면 어디 숨고 싶은 기분이 들곤 했다. 20대 중반에 1년이 훌쩍 넘는 동안, 신분이 '작사가 지망생'인 삶은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취업해서 월급을 받고 커리어를 쌓고 있는 또래들과 땡전 한 푼 못 벌고 있는 내 처지를 비교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지인들이 부모님께 '딸은 뭐해~?'라고 물을 걸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누가 나의 직업과 안부를 묻는 게 부담되어 사람들도 안 만나게 되었다. 다들 속으로 날 별 볼일 없다고 여길 것만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꿈으로 향하는 과정'이 어느 순간 '백수인 이유'에 불과해져 버렸다. 열등감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과 내 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작사가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시간이 흘러 나이만 먹고, 결국 작사가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남들보다 훨씬 뒤처진 채 30대를 맞이하게 되면 어떡하지. 길이 있긴 한 걸까? 사실 난 영 소질이 없는 건 아닐까?
자기 확신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도전한 ‘꿈’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포기할 궁리를 하기도 했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누군가 답을 알려줬으면 싶었고, 시간을 여행해 나의 미래를 엿보고 오고 싶었다. 내가 제대로 된 가사(습작)를 쓰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하다 보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운 좋게 데뷔를 하더라도 작사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했다. 그럼에도 '작사가'라는 꿈을 결국 놓을 수 없었다. 멜로디 위에 쓰여지는 글이 난 너무나 좋았고, 그 '노랫말'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온통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서, 이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면 답은 하나였다. 도망가지 않고, 나를 집어삼킬 듯 밀려오는 집채만 한 불안함과 맞서 싸우는 수밖에. 결국 '작사가'가 되는 수밖에.
작사가 지망생 시절부터 '작사가'인 지금까지 슬럼프를 겪고 또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손 놓고 있을 때' 가장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안함을 방치하면 <불안함-비교-슬럼프-조급함-자기혐오> 루틴이 시작된다. '자기혐오'까지 가게 되면, 혼자 헤쳐 나오기 매우, 정말 매-우 힘들어진다. 이 루틴에서 내가 나올 수 있었던, 그러니까 '불안함'을 없애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지금, 당장 뭐라도 하는 것'이었다. 가까운 미래 또는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습작 하나라도 더 쓰고, 가사 하나라도 더 읽어보고. 그러다 성과가 나지 않아 또 슬럼프가 오려고 하면,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슬럼프에 빠지지 않으려 발악을 했다.
살아보려는 그 발악은 아주 소심한 내게 없던 용기를 만들어주었다. 그중 하나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작곡가님들에게 이메일이나 인스타그램 DM을 보내는 거였다. 곡 작업을 같이 하고 싶은 분들께 직접적으로 '작사가 신효인'이라는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용음악과 출신도, 작사 학원 출신도 아닌 내가 필드에 계신 분들께 인사를 드릴 방법은 이뿐이었다. 사실, 연락을 드린다고 해서 곡 작업을 반드시 따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기대한 것은 맞지만). 업계에는 나보다 더 전문가이신 작사가님들이 너무나 많고, 프로의 세계에서는 가르쳐가면서까지 사람을 쓰지 않으니 답장이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인사를 드리고 나의 가사들을 보여드리는 용기를 냈던 이유는 지망생 시절에는 경력이 없다고, 작사가 데뷔 후에는 경력이 적다고 소심하게 굴면 내게 영영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일지라도, 아주 작을지라도, 혹시 있을 기회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꼭 일거리가 아니라, 내 가사에 대한 피드백이나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데모 작업이라도 괜찮으니 혹시 가사가 급하게 필요한 때가 생기시면 나를 기억해 달라며, 나는 이런 가사를 쓰는 작사가라며 정성스레 메세지를 써서 몇 분께 연락을 드렸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세 분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답장은 읽고 눈물을 훔쳤다.
이 답장들은 내가 가끔 지칠 때 꼭 꺼내서 읽어보는 '마음의 알약'이다. 이 답장들 덕에 나는 컴컴하고 막막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 마침내 다음 기회에 닿을 수 있었다.
프리랜서 신인 작사가의 생존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