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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Dec 28. 2021

작사가 명함을 파고, 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가사를 쓰고 싶어 했던 12살이 진짜 작사가가 된 이야기 1

-작사가 신효인의 이야기, 첫 번째-


내가 처음 작사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12살 때였다. (필자는 초등학교를 7살에 들어갔다.)


그 당시 다들 흔하게 가지고 있었던 CD 플레이어나 MP3가 내겐 없어서, 나는 문방구에서 몇 천 원 대에 저렴하게 파는 미니 라디오 기기나 아빠가 젊었을 때 쓰셨던 마이마이를 들고 다녔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빈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고,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나는 수업 시간을 빼고는 항상 이어폰을 귀에 꼽고 있었다. 하루는 여느 날처럼 학교가 끝나고 혼자 노래를 들으며 집에 가던 길이었다.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는데,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 예뻤다.(이 날 본 하늘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어폰에서는 당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 M to M의 '세 글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가사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가수나 작곡가 등 음악과 관련된 다른 직업들도 많은데, 12살이 노래를 듣다가 하필 '작사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막연한 꿈이긴 했지만, 내게 처음으로 꿈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주변 어른들은 내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보다는, '학교 성적은 어떠니' 또는 '어디 중학교를 갈거니'를 물어보곤 했었다. 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어린이였던 나는, 어느 순간 내 막연한 꿈을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 진로를 필히 정해야 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작사가'라는 꿈을 다시 마주했다. 반가운 재회도 잠시, 당시에 알아본 바로는 '작사'를 전공 학문으로 배울 수 있는 대학교는 없었다. 겨울방학 때까지 고심한 끝에, 내가 대학교에서 '작사'를 배울 수 없다면, '작곡'을 배워서 내가 만든 곡 위에 가사를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엄마의 지지 덕분에 고등학교 3학년부터 실용음악학원에서 '작곡'을 배웠다. 그러나 앞선 에피소드에서 소개했듯이 작곡 공부를 계속하지는 못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엔터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 생활 후유증과 나의 짙어진 내향성으로 인해 나는 휴식기를 갖게 되었다. 이때 대인 관계에 지칠 대로 지쳤던 나는 혼자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2년 반 동안 베이킹, 포토샵, 영어, 언어교육학 등 여러 가지를 공부했는데, 내 직업으로 '이거다' 싶은 일을 찾지는 못했다. 사실 뒤돌아보면 난 내내 '작사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로 돌아갈 용기가 여러모로 나질 않아 계속 꿈을 외면한 채, '배움'으로 백수 생활을 합리화시켰었다. 이런 나를, 2019년 연말에 지난 일기장들을 정리하다가 알아차렸다. 그 순간, 이제 그만 헤매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14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26살에 드디어 '작사가'를 내 목표 직업으로 삼았다.


일기에 계속 등장하는 작사 이야기 (2018년도에 브런치 작가를 하고 싶어했던 나도 보인다)


그러나 작사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걸로 하루아침에 짠하고 작사가가 될 수는 없었다. 난 '작사가 지망생' 신분이었고, 작사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상태였다. 내 주변에 가르침이나 조언을 직접 구할 수 있는 작사가 선배는 없었기에, 난 무작정 나의 워너비 작사가님들을 좇기 시작했다. 먼저 서점에 가서 김이나 작사가님의 책, '김이나의 작사법'을 구매했다. 작사 입문자에게 교과서와 같은 이 책을 읽고, ‘프로가 하는 작사'는 어떤 작업이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김이나 작사가님의 책과 인터뷰, 가사 등으로 혼자 작사를 공부한 지 한 달이 됐을 즈음, 서지음 작사가님의 책 '낭만이 나를 죽일 거예요'가 출간되었고 이 책은 나의 두 번째 작사 교과서가 되었다. '낭만이 나를 죽일 거예요'는 가사의 소재를 감성/이성/상상/현실 영역에서 이렇게나 풍부하게 가져올 수 있다는 것과,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글을 쓰는 법을 알려준 책이었다. 작사를 책만으로 완벽하게 배울 순 없지만, 그래도 난 이 두 권의 교과서 덕분에 작사의 기본기를 독학하고 작사 연습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나의 작사 교과서들


그런데 내가 '작사를 공부하는 것'과, '작사가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어느 정도 공부하고 연습하면 작사가 자격이 생기는 건지, 어떻게 해야 작사 일을 구할 수 있는 건지 오랜 시간 막막했다. 작사가는 시험을 쳐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사가를 뽑는 공고가 어디에 올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사면이 막힌 곳에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렇다고 손 놓고 하늘에서 곡이 떨어지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봐야 했다. 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곡이 나에게 작사 의뢰가 들어온 데모라고 생각하고 이 곡, 저 곡에 냅다 새로운 가사를 입혔다. 가사 속 화자의 성별을 바꿔보는 개사 연습도 해보고, 팝송에 한글 가사를 붙여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밤낮없이 곡을 고르고 가사를 쓰는데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습작이 꽤나 많이 생겼다. 난 노트를 꽉 채운 습작들을 보면서


'신효인'이라는 작사가가 있다는 걸,
내가 이런 가사를 쓰는 작사가라는 걸
세상에 알려야 작사 일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 부족한 습작을 세상에 내놨다가 얼마나 부끄러워질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계속 방구석에서만 가사를 쓰면 평생 작사가 데뷔를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 처음은 다 흑역사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습작을 가지고서라도 나를 세상에 드러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의 작사 연습 노트 일부
나의 작사가 명함


나는 제일 먼저 명함을 팠다. 명함을 디자인하면서, '작사가 지망생' '작사가'라고   있는가 고민이 되었지만, 나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작사가 신효인'으로 직업과 이름을 넣고, SNS 계정도 적어 명함을 인쇄했다. 그리고 명함을 받은 이가 내가 어떤 가사를 쓰는지   있도록, SNS 나의 습작들을 선별해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었다.

나의 뻔뻔함이 날 거짓말쟁이에서,

진짜 작사가로 만들어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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