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법조인이 된 이유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했었나

by 쎄씨로이어

전공을 정하고 직업을 정하기에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너무 어렸다. 대학과 대학원 입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는 분명 그때의 내 생각을 담고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깊은 내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왜 변호사가 되셨어요?”

-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 거창한 이유 따윈 없었다.

단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멋있어 보이는 직업이었을 뿐이다.


지금 내가 십여 년간 변호사로 일하며 느껴온 이 직업의 무게와 책임감은, 그 시절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혹자는 전문가가 되는데 3천 시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선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문가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지만, 나 역시 1만 시간의 최소 두 배는 훌쩍 넘는 시간을 변호사로 일하면서 변호사업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동안 자문과 송무,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였고 어려움을 마주할 때도 많았다. 일을 하며 더욱 느끼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을 마주 했을 때의 긴장감, 그리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이 바로 나를 이 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한 사건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무게감을 느끼며, 나는 늘 그 일을 내 일처럼 몰입해 왔다.


사내변호사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리인’으로서의 선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본인’의 마음으로 뛰었고, 그래서 주변의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나의 본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처음 법학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몰랐던 점이다. 교과서 속 문제를 푸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살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진짜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내 안의 변호사로서의 책임감이 새롭게 각성됐다.


그리고 나는, 변호사가 되어 비로소 왜 내가 이 길을 선택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저 연차 송무변호사를 할 때에는 의뢰인의 사건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기도 했고, 사건의 결과가 악몽처럼 펼쳐지며 잠에서 깨는 일도 많았다. 국선 사건을 맡아 돈을 거의 받지 않음에도 성심껏 변호를 해드렸을 때 의뢰인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주신 적이 여러 번 있었고, 그때 느낀 그 감정은 아직도 잊지 않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건에 일일이 감정을 실어 몰입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건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결국 나는 방향을 틀어, 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기업에서 자문업무를 맡으며 훨씬 더 빠른 호흡의 일들을 경험했다.

자문 업무는 주로 하나의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 돼, 소송과 달리 호흡이 빠른 편이었다. 몇 년 동안 하나의 사건이 이어지는 경우보다, 단발성 질문이 끝나면 곧바로 새로운 질문이 쏟아지곤 했다. 무엇보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감정을 이입할 일은 드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 점이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돌이켜 보면, 바로 이런 부분들이 내가 변호사업을 하며 느낀 적성과의 궁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금융 컴플라이언스라는 분야의 전문가로서, 금융 분야의 변호사로서 일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과연 나의 적성에 맞았을까?


변호사라는 직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산업의 특색과 나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사 형사 가사 행정 특허 등 분야별 송무변호사, 외부로펌의 자문변호사, 다양한 산업군에 속한 사내변호사까지- 전문분야와 포지션에 따라 변호사들은 하는 일이 매우 다르다. 또 일정 경력을 쌓은 후 판사, 검사가 될 수도 있고 요즘엔 변호사 자격을 기반으로 AI기술과 융합해 창업에 도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처럼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던, 다만 공부만 잘했던 사람들에게는 최대의 무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이 길 위에서 여러 방향을 탐색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변호사 3만 명의 시대, 이제 변호사라는 직업이 흔해졌다고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일이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으며 ‘혹시 변호사가 되면 어떨까?’라고 고민되는 분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 길을 선택했던 나도, 살다 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거창한 이유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하고 싶다면? 그저 하면 된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