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는 곳에 살아서 좋겠구나? 하루하루가 봄 같을 테니 말이야.” 그럼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에 관한 역설을 조심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니다. 대한민국 사계절이 주는 낭만에 대해 대변하는 쪽이 더 가깝다고도 하겠다. ‘사계절이 뚜렷한 도시는 다채롭답니다.’라고 화두를 던지면서 말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눈들이 봄볕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고, 동물들이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일상도 본격적으로 분주해진다. 새 학기, 봄맞이 대청소 등 해묵은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도전에 전력투구를 가한다. 제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도전해 볼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 설레는 도약에 마치 축하라도 하듯 벚꽃, 진달래, 개나리 등이 꽃망울을 빵빵 터뜨린다. 20대, 벚꽃은 내게 두루뭉술하게나마 이상형을 제시해주었다. 흩날리는 윤중로 벚꽃 아래서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어떤 한 사내를 보고서였다. 그가 기다리던 이가 연인이었는지, 어머니였는지는 알 수는 없었으나 꽃을 보러 길을 나서는 이라니… 그 얼마나 낭만적이란 말인가? 하마터면 아무개 씨에게 홀딱 빠져버릴 뻔했다.
매미 소리가 짙어지고, 녹음이 울창해지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된다. 높은 습도, 장마, 열대야 등이 불쾌지수를 한껏 끌어올려도 가장 신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 휴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매년 지리산 하동으로 휴가를 다녀오곤 했다. 물놀이 후, 반나절 얼음장같이 시원한 계곡물에 넣어 두었던 잘 익은 수박의 맛은 지금도 쉬이 잊히지 않는다. 찌는듯한 더위를 이겨내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당도 높은 계절과일 (한국 겨울딸기도 가장 예찬하는 계절 과일 중 하나다). 연중 온화한 날씨에서는 감히 허락되지 않는 달콤함이다. 낮이 가장 긴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저무는 해가 아쉬워 거리 곳곳으로 쏟아져 나오는 행렬들. 역동의 계절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드리우고,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가면 문학의 계절, 추수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등 무수히 많은 수식어가 우리를 맞이한다. 그중 가을 운동회는 가장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계절 이벤트였다.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 청군과 백군 그리고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함성소리. 승패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나면 한 뼘 더 성장해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했다. 이리도 재미난 행사를 일 년에 단 하루만 개최한다니? 항상 아쉬움이 뒤따랐다. 마치 여름과 겨울 사이, 가을도 항상 스쳐 가듯 짧은 시간 우리 곁을 머물다 가듯이 말이다.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겨울이 오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년간 남반구에서 겨울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설국의 참 매력을 깨닫게 되었다. 소복이 쌓인 눈 아래 즐기는 눈썰매, 꽝꽝 얼어버린 강가 위에서 즐기는 빙어 낚시 그리고 손꼽아 기다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까지. 극한의 추위를 견뎌낸 땅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국내 여행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난 요즘 SNS와 다중매체에 소개되는 숨겨진 명소들에 흠칫 놀라곤 한다. 과연 저런 곳이 존재했었단 말이야? 하고 말이다. 계절의 풍광이 배경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다양한 색채의 의류들이 기록 당시의 그곳의 온도와 습도를 가늠케 해준다. 더불어 때때에 맞춰 먹는 제철 음식들은 추억을 더 짙게 만들기도 한다. 낭만의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자연의 선물을 마음껏 만끽하러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