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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Nov 30. 2022

수요일의 하원 담당자

 노트를 덮고 눈두덩이를 문지르다 문득, 오늘이 수요일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말은 남자친구가 아들을 하교시키는 날이라는 거다. 매주 수요일마다 그는 5시 전후로 퇴근할 수 있었는데, 평소 그의 퇴근 시간이 8시 반 이후라는걸 고려해봤을 때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처음 그가 승오의 하교를 돕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양손을 휘저으며 적극적으로 거절했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인데 너도 쉬어야지!"     


 "괜찮아, 수요일은 내가 승오 데려올게."     


 "...괜찮기는."     


 나는 입을 쭉 내밀고 부러 불퉁한 소리를 냈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친구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     


 "나는 핑계라도 있어야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래, 나도 알지."     


 그는 한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하여 모두가 퇴근한 후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하는 성실맨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손해 보는 짓만 골라 하냐는 질문에, '혹여나 지각할까 봐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이쪽이 마음 편해서'라는 기이한 답변을 내놓는 그런 남자.     


 회사 일과, 나와의 일을 저울에 올려두고 고민하는 것은, 그에게 꽤 괴로운 일인 모양으로 처음에는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한 해 두 해 늘어날수록 저울은 확연히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니 저울에 묵직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앉은 사람으로서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괜히 나랑 승오 일정 때문에 너가 쉬지도 못하고... 그럼 내 마음은 어떻겠니."     


 "나한텐 승오랑 노는 게 쉬는 거라니까 그러네."     


 "그럴 리가 없는데!"     


 착해빠져가지구... 나는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도록 목소리를 죽이지 않았다. 진짜라니까! 상대가 외쳤다.     


 마치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이 '들어가~'와 '그래 잘 가~'를 반복하며 한 걸음 걷고 다시 돌아보며 인사하기를 반복하는듯한 대화였다. 스스로도 바보 같아 보인다는 걸 인정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도움을 주려고 했고, 나는 연거푸 거절했다.     


 그러자 상대가 절대로 깨지지 않는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럼... 나, 회사로 다시 돌아가?"     


 실망에 폭 절은 목소리였다. 그것이 꾸며낸 것임을 아는데도 덩달아 속상해질 만큼.     


 "이미 반 정도는 왔는데...?"     


 "어? 뭐야, 벌써? 언제 퇴근했어?"     


 "전화 걸었을 때 시동 켜고 있었지. 그래서 나 어떻게 해? 회사로 돌아가?"     


 "아휴..."     


 이 똑똑한 바보는 내 거절을 진작 염두에 두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한숨을 쉬며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맹목적이리만치 나만 바라보는 존재는 고맙고 상당히 유용한 동시에 무척 부담스러웠다. 나는 공주처럼 떠받들어지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고, 오히려 수용보다 거절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스무살 무렵의 자신을 돌이켜보자면, 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불안정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었다. 조건만 따지자면 현재가 최악일 텐데도, 오히려 지금은 이십 대 때에 비해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참 싫어했던 나인데, 서른이 넘어가며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산 적도 없는 고생이 젊은 나에게 착착 배송되어왔다. 반품하고 싶어도 발신지를 몰라 수령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도 없었던 날들. 정체 모를 선물 공세에 쉴 새 없이 시달렸다.     


 비바람에 꺾이고 밟혀도 씩씩하게 다시 자라는 풀처럼 이 악물고 버티다 보니, 웬만한 고생에는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고생하며 산 것 치고 밝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슬픔에 갇혀 엉엉 울기만 하는 건 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내게 고생을 한 아름 선물한 세상에게 복수하는 길은, 고생 같은 거 한 적도 없는 사람처럼 밝고 행복하게 사는 거라 생각해서. 멀쩡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매일을 살아내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 내 남자친구는 포근한 가정에서 안전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 또한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해를 입거나 끼친 일 없이 평범한 성인이 되었다. 선량한 세계에 둘러싸여 탄생한 선량한 인격은, 비바람을 모르는 모래성만큼이나 나약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남자친구를, 그의 선량한 부분을 걱정했다.     


 "너는 싫다는 말을 더 연습해야 해."     


 "나 잘해."     


 "어디 해 봐. 싫어. 싫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말 해보라구."     


 난처한 듯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절조차 쉽사리 하지 못하는 유약하고 선한 나의 남자친구.     


 고통이란 비교적인 놈이라, 나보다 더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어떤 이의 눈에는 내가 한심하고 유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내 눈에 내 남자친구가 어린애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나름의 굴곡이 있었을 테지만 그를 볼 때마다 물가에 내놓은 애를 보는 것같이 조마조마한 마음이 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닥쳐도, 그는 지금처럼 굳건히 버틸 수 있을까?     


 자꾸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오랜 나쁜 습관 중 하나다. 아마 내가 사랑하는 이 평화가 깨질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영원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능하면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으니까.     


 "...나 거절 잘해. 꼭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면 잘 말할 수 있지."     


 "그래, 그래... 믿을게."     


 사실 상대를 믿고 나를 믿는 것 외에 별다른 타개책이 없다. 언제든 예상치 못한 돌풍이 불어와 우리의 일상이 모조리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들은 지금 이 순간도 이 세상 어딘가 사는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닥치고 있다. 단단하게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 것,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거라는 믿음, 부서져도 다시 세우면 된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럼, 아까 말한 대로, 승오 내가 데려올게."     


 "으휴, 알았어... 고마워."     


 그래, 살면서 고생 좀 많이 하고 적게 한 게 대수랴. 어쨌든 그는 부족한 시간을 쪼개 내 아들의 하교를 도와주려 애쓰는 좋은 사람이다. 언젠가 사라질 행복이라 할지언정 미래를 고민하느라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나의 믿음이 상대방의 굳건함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오히려 훨씬 불안했을지 모른다. 미지수 x가 내 뜻대로 움직여줄지 아닐지 밤새 고민해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믿음은 나를 향한 것이다.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단단한 믿음 말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미래의 나 또한 잘 헤쳐 나갈 거다.     


 "나중에 승오 만나서 또 전화할게!"     


 그는 '그러니까 그때까지 좀 쉬고 있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덧붙이는 말조차 그다워 웃음이 났다. 나는 수요일의 하원 담당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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