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도와달라 하지 말자
신혼초 남편과의 관계 맺기
부제: 남편은 조력자, 지원자가 아니다. 당사자이다!
신혼 초였다.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우리는 주말에 밀린 가사를 하였다. 나는 주로 음식과 관련된 것을, 남편은 세탁과 청소에 관련된 것을 담당했다. 그날도 나는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웃통을 벗고 엉덩이를 번쩍 들고 거실을 물걸레질하고 있었다. 남편은 갑자기 뒤를 싹 돌아보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나 이쁘지? 매일 이렇게 도와줄게!” 라며 힘차게 걸레를 밀었다.
도와준다는 것은 선택? 그건 아니다!
순간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불렀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자기야. 잘하고 있어. 근데 도와준다는 생각이면 하지 마. 도와준다는 것은 선택이야. 나중에 안 도와줄 수도 있는 거고. 이게 바로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계속해줘.”
참. 그때나 지금이나 옳은 소리를 참 재수 없게도 했다. 순간 남편은 머쓱해지면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번쩍 들었던 엉덩이도 차츰 처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청소와 세탁은 남편의 일로 고정되었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남편은 그때를 회고했다. 참 무서웠다고.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신혼 초의 달달한 관계에 꼭 그렇게 찬물을 부어야 되었냐고? 하나 냉정히 생각해보자. 당시 나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남편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가사 분담을 선택케 할 수는 없었다.
같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남자의 야근은 당연했고 여자의 야근은 양보된 시대였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육아는 여자와 친정의 몫이었다. 거기다 가사까지 말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워킹맘들이여! 그새 생활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워킹맘의 하루, 남편은 어디에?
워킹맘의 하루를 그려보자.
아침에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화장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눈도 못 뜨는 아이를 깨워 의자에 세워두고 밥을 먹이며 옷을 입힌다. 둘러업고 아이를 어른댁, 또는 제2의 장소에 데려다주고 총총 출근버스를 탄다.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아이를 맡은 사람한테 수시로 연락이 온다. 열이 난다, 병원 가야 된다. 찾는 물건의 위치 등등. 복도에 나가 전화를 주고받으며 다시 책상머리로 돌아오지만 일의 리듬은 벌써 깨져있다.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일의 속력을 낸다. 일을 마치고 종종 집으로 향하며 마트에 들러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 집으로 오거나 아이를 찾으러 간다.
집에 와서는 아이를 씻기고 간단 청소를 하고 다음날 먹거리를 손질하거나 새벽 배송 사이트를 방문한다. 틈틈이 내 집 마련 정보를 수집하고 목돈마련을 위해 적금을 비교하고 자동대출한도를 알아본다.
자. 이런 하루에 여러분의 남편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과거의 이야기라고?
2019년 12월 KB금융그룹에서 발간한 ‘2019 한국 워킹 맘보 고서’를 보자.
배우자의 지원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고서에 의하면 워킹맘의 95%가 자녀 문제로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 또한 워킹맘은 가정에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배우자의 지원과 이해’를 91%로 꼽았다. 20대도 이 비율은 87%이다. 부부의 소득도 워킹맘이 관리하는 비율이 78.3%이다.
워킹맘의 자녀에 대한 만족도는 75% 이상인 반면,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는 56% 수준이다. 그녀들의 관계 만족도는 자녀> 친정식구> 배우자> 시댁 식구 순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직도 후배들의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자녀를 케어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갈등한다고 한다. 과연 그녀들의 배우자들도 자녀 케어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
이 보고서에는 나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왜 그녀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서 ‘배우자의 지원과 이해’를 1순위로 꼽았는가? 남편은 지원하고 이해하는 존재인가? 지원이란 용어가 가지고 있는 뜻은, 주체가 되는 어떤 것을 잘 되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입장을 말한다. 그들은 구경꾼인가? 우리가 남편의 지원과 이해를 아쉬워하는 한 워킹맘은 고단한 일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남편은 나와 같이 이 상황의 '당사자'이다.
다행히 나는 초반부터 남편과의 역할분담을 비교적 잘 설정한 셈이다. 신혼의 달달함에 찬물을 붓는 푸닥거리 덕에 우리는 각자의 선호와 강점을 선택하여 육아와 가사의 구멍을 무난히 메꿔왔다.
남편은 세탁과 청소를 도맡아 했고 아이 유년기의 잦은 병원 출입을 담당했다. 입학식 졸업식에도 참석했고 중학교 들어가 첫 학부모 모임 때 나 대신 청일점으로 참석했다. 아이의 과제물도 준비해 주었다.
반면 나는 시장보기와 요리를 주로 담당하였고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장점을 살려 내 집 마련을 주도했다.
당시 보통의 가정에 비해 남편의 가사분담 정도는 파격적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서있지 못했을 것이다. 어렵게 이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이미 몸과 맘이 소진되었을 거다.
남편과 역할 재 설정하기. 눈물 없이!
한참 어린 후배가 찾아왔다. 긴 연애 끝에 결혼한 후배 부부는 서로 같은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캠퍼스 커플인 그들 부부 중 후배는 남편보다 학교 때부터 여러 면에서 앞서 나가고 인정도 받았다. 결혼 후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어쩐지 뒤처져 가는 자신을 느낀다. 남편은 업무에 몰입하고 직장에서 자리를 잘 잡아가는 반면 자신은 육아와 가사일에 치여 직장은 몸만 다니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따져 보니 가사와 아이 돌봄의 80%가 본인의 몫이었다. 결혼 전엔 내가 더 잘 나갔는데!
불만은 점점 쌓여 갔고 서로 간 말이 곱지 않게 오고 갔다. 그럴 때마다 짜증과 눈물로 끝나곤 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남편은 마주하는 것을 점점 회피했다. 나는 그녀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기분을 눈물 없이 차분히 남편에게 이야기하도록 조언했다. 짐작대로 남편은 부인의 가사일 과다와 이것이 사회생활에서의 위축까지로 이어짐을 모르고 있었다.
다음 단계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나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토록 하였다. 남편도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 가사일 중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당연히 받아들였다. 후배는 놀라워했다. 남편의 변화만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이걸 꼭 말로 해야 알다니!
그렇다. 상대는, 특히 남자들은 표현하고 요구해야 비로소 안다. 격앙된 상태보다 평정심을 가지고 요청할 때 그들은 이해하고 나선다. 참다 폭발하듯 터뜨리며 눈물을 터뜨릴 때 그들은 오히려 등을 돌린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아이가 있다 보니 집안은 늘 어지럽다. 정리와 청소는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워킹맘의 차지이다. 남편은 큰 불편을 못 느낀다. 이럴 때 정리와 청소를 멈추자.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어 남편 스스로 나서기까지 짐짓 평온을 가장하자.
남편이 할 수 없이 청소기를 들고 이후 그게 그의 일이 되게 하자. 갈등과 다툼보다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내겐 이런 지혜가 부족했지만 좋은 남편을 만난 행운을 누린 것 같다. 그러나 모두에게 행운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후배들이여. 가정과 직장의 양립 속에서 스스로를 잘 지키고 있는가? 합리적으로 배우자와 몫을 나누고 있는가? 처음에 그 관계 형성을 놓쳤는가? 그럼 지금 하자. 물론 시간이 경과할수록 거쳐야 할 푸닥거리는 많다. 그러나 나도 직업을 가진 한 늦은 때란 없다. 대신 우린 세월의 힘으로 좀 더 지혜로워졌다. 나처럼 전투적인 방법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하게 지혜롭게 그의 역할 설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앞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워킹맘의 75%가 계속 직업을 갖기를 원한다. 우리에겐 경제적인 이유 이상의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목적이 있다. 요구하는 것이 치사해서 오늘도 말없이 낑낑대는 여성들이여! 어렵더라도 한 번은 끊고 가자. 손 한번 보고 가자.
오늘 나는 후배들에게 지금 불편하라고 요청한다. 지원과 이해가 아니라, 그의 분담이 당연함을 알게 하자. 100세 시대에 어쩌면 이 남자와 70년 이상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함께한 10년, 20년은 초반에 불과하다.
혹시 지금 이 순간 부부가 동시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가? 남편은 일한다고 카페로 향하고 나는 육아에 삼시 세 끼에 틈틈이 업무까지 하고 있는가? 노노! 옳지 않아. 후배들이여! 그에게 말하자. 함께 하자고, 이것도 네 일이라고! 도와 달라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