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밀어주고 끌어주기
또 한 번의 연말이 지났다. 해마다 12월, 1월에는 직장인들의 희비가 갈린다. 누구는 환호하고 축하받지만 누구는 고개를 떨구며 짐을 싼다. 나 또한 해임을 통보받고 멍한 상태에서 주섬주섬 짐을 싸던 경험이 있다. 어떤 이가 꾸준히 올라가고 어떤 이가 중도에 멈추고 자리를 떠나는가?
나는 지금도 내가 다녔던 회사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여성 임원들의 연말 인사를 유심히 본다. 얼마 전 외국계 은행의 여성 행장의 발령을 맘속으로 축하했다. 수년 전 먼발치에서 본 내 또래의 여성이었다.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여성 리더의 무기는 무엇일까?
“남자들은 담배 피우고 당구 치면서 정보도 나누고 중요한 결정도 하는 것 같아요. 한때는 담배 피우는 곳까지 쫓아가기도 했는데 이젠 싫더라고요. 이럴 때 여자로서의 한계를 느껴요. 선배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마침 40대의 세 자녀 워킹맘인 정 차장이 물어왔다.
글쎄. 나는 어떻게 했더라? 입사 초기부터 단단히 맘을 먹었던 것 같다. 결코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겠다고. 인싸가 되겠다고. 그래서 바빴다.
모든 술자리에 2차, 3차까지 죽어라 쫓아다녔다. 당시에는 룸살롱이 유행이었다. 남자 직원들이 여종업원과 짝을 지어 노는 상황에서 나도 남성 짝을 마주 보고 술잔을 기울였다. 살롱! 유럽에서 문화 부흥을 이끈 귀족의 살롱문화가 한국에서는 어쩌다 은밀한 술파티 장소로 둔갑했을까?
장례식, 결혼식에도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장례식에 가서는 시간차를 두고 입장하는 선배들, 윗사람들을 맞으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쉽게 자리를 뜨질 못했다. 12시를 훅 넘기고 마지막 무리에 끼여 나왔다.
2,30년 전에는 일하는 풍경이 지금과 사뭇 달랐다. 한 명이 하는 일을 서너 명이 했고 근무 시간 중 자주 자리를 비웠다. 남자들은 눈짓 하나로 우르르 몰려 나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도 복도까지 동행했다. 통풍도 안 되는 복도에서 담배연기를 흡입하면서 자연스레 대화에 끼었다. 간접흡연으로 그들보다 몇 배의 니코틴을 들여 마셨다. 주말 행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결혼식에 등산에 골프에…
꽤 성과도 있었다. 은근한 사내 야사에도 밝았고 여성 직원들보다 남성 직원들과의 관계도 돈독했다.
그러나 대가는 컸다. 늦은 귀가, 다음날의 숙취. 건강은 물론이고 가족과 나누는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 그 시절 맥없이 뻗어있는 나를 보고 아이는 말하곤 했다. “엄마는 다른 집 아빠 같아. 맨날 늦게 들어오고 집에서는 말도 없고”.
나이 들어가면서 몸도 시간도 따라가지 못하자 이런 생활이 자연스레 멀어졌다. 아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바뀌었다. 꼭 이래야 성공하는가? 나는 중도에 포기했다. 그러나 끝까지 핵심에 머물렀던 맹렬한 여성들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언저리를 서성이며 똑같은 고민을 하는 장 차장의 질문에 나는 착잡해졌다. 아직도 조직 내 여성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가? 중도에 포기한 내가 무슨 현명한 답변을 해야 도움이 될까? 그간의 조직생활에서 여성과 남성이 성장하고 성공하는 과정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함께 사다리를 오를 것인가? 혼자 동아줄을 탈 것인가?
사다리와 동아줄이 떠올랐다. 남성들이 사다리로 올라간다면 여성들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간 것 같다.
남성들은 일렬로 차례차례 사다리를 밟고 올라간다. 위에서 손잡아 주기도 하고 밑에서 삐끗하는 발을 받쳐 주기도 한다. 물론 중도에 추락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번 사다리를 타면 꾸역꾸역 올라가는 구조여서 중도에 포기하기도 힘든 구조이다.
반면 여성들은 각자 동아줄을 올랐다. 오로지 자신의 근력만으로 한 손 한 손 힘겹게 줄을 타며 말이다. 대개는 한 팔에 가사를, 다른 팔에는 육아라는 보따리를 매달고 말이다.
그러니 대부분은 힘에 부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가까스로 매달려 있거나 힘없이 툭 떨어지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잠시 손을 놓고 싶을 때 잡아주는 손이 없었고 심지어 떨어질 때에도 받쳐주는 동료가 없다. 물론 자신의 근력만으로 사다리보다 빠르게 동아줄을 올라간 원더우먼도 가끔 있었다.
내 시절의 성공한 여성들 중 몇몇은 혼자 타는 동아줄보다 남성들의 사다리 반열에 비집고 들어갔다. 장 차장과 내가 중도에 포기한 그 사다리다. 그 과정에서 사다리의 남성들이 경계도 했으나 예외적으로 길을 비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청일점인 그녀의 대단함과 몇 배의 노력에 감탄하고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러나 그 여성 리더들은 그게 다였다. 정작 자신은 사다리 효과를 보았지만 자신은 누군가의 앞뒤를 받쳐 주지 못했다. 특히 같은 여성 후배들을 말이다. 그래서 성공한 여성리더의 주위에는 여성 후배들이 드물다.
사다리 타기와 동아줄 오르기. 사다리는 에스컬레이터처럼 한번 발을 디디면 저절로 움직이는 동력 시스템이기도 하다. 정 차장! 이제 우리 남성들의 사다리를 기웃거리지 말자. 이제는 여성들만의 사다리를 만들어 보자. 동아줄을 혼자 타고 혼자만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흡연실과 당구장이 아닌 우리들의 공간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힘들 때 밀어주고 필요할 때 끌어주자. 혹여 그대가 선배들로부터 받은 바 없더라도 후배들을 위해 사다리가 되어주자.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면 말이다.
앞으로의 여성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자연스레 열린다. 견고했던 남성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 여성들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숫자적으로 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들만의 사다리가 자연스레 놓아질 수 있는 환경이다.
사다리에 함께한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아끼지 말자.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근거가 모호하지만 뼈아픈 속설이 있다. 과거 우리네들이 각자의 동아줄을 타고 혼자 가는 상황에서 서로를 배려할 여력이 없음에서 나온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후배들이여! 혼자 빨리 가지 말고 함께 멀리 가자.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손을 잡아 주면서 말이다. 남성 중심의 사다리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남성화되어 가기보다 우리의 고유함을, 본성을 지키며 성장하자.
물론 나는 남성과 여성이 구분 없이 공평하고 조화롭게 하나의 사다리를 타는 것을 꿈꾼다. 딸들의 세상에서는 이루어질까? 지금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