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배언니 Oct 06. 2024

죽음에 한 발 가까이

2) 아로마림프 마사지를 시작하다

이렇게 나의 요양병원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전반적인 기초교육을 받은 후 아로마림프 마사지로 봉사하기 위해서 또 다른 3시간의 이론교육과 실습을 받게 되었다.

우리 몸을 순환시키는데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이 혈액과 림프라는 것을 알았고, 혈액이 80%의 순환에 기여한다면 림프는 20%의 순환에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여기서 순환은 노폐물처리를 말한다.  혈액은 그야말로 순환, 왔던 곳을 되돌아 나가는 서클의 개념이지만 림프의 순환은 양방향이 아닌 일방향, 편도라는 것을 배웠다. 

따라서 림프순환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방향이 중요하다. 말초에서 시작해서 심장 쪽으로 진행되는 림프순환에 맞추어 마사지도 발 쪽에서 시작하여 심장 쪽으로 밀어야 한다. 반대가 되면 큰일. 역효과다.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몰랐던 림프액과 순환의 원리를 배우고 실습도 했다. 

경락마사지는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목적이라 센 압력이 들어가지만 림프마사지는 마사지의 방향이 중요하지 압력이 센 것은 절대 금지다. 

따라서 천천히 말초에서 심장 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듯 마사지를 하여 쌓여있는 림프액 노폐물을 심장 쪽으로 옮겨 빠져 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회사 다닐 때 아픔을 참고 비명이 나올 정도의 압력으로 마사지를 받던 것이 떠올라 새삼 주의를 하게 된다. 


3시간 교육을 마치자 점심시간이다.

봉사자들에게 제공되는 식권을 들고 병원근무자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퇴직 후 오랜만에 떡밥을 먹어본다. 

비싼 요양병원이라 그런지 반찬도 꽤 괜찮다.


내친김에 오늘부터 마사지봉사를 시작했다. 실전에 바로 투입되었다.

완전 생초보는 나 혼자다. 

2주 전 함께 기초교육을 받던 열댓 명의 신규자원봉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사지 봉사는 나뿐이라니? 

후에 알고 보니 모두 휠체어 산책봉사를 선택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노인의 몸을 만진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일까? 

나는 오히려 죽음에 더 가까이 가보고자 하는데.


오늘 교육의 수강생들은 이미 수년동안 마사지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학습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사이 바뀐 내용들을 익히고자 열심이다.  

강사의 실습 중에 여기저기 탄성이 들려온다. 

'어? 당초에 받은 교육내용과 다르네.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틀린 건가?" 

당황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병상에 노인을 만나러 출발.  

나는 8년간 이 봉사를 했다는 선배봉사자와 짝이 되었다. 

마사지 봉사는 2인 1조다.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마사지를 하면서 각각 한쪽 다리씩 맡아 같은 속도로 같은 부위를 마사지하는 것이 원리이다. 

다행이다. 

20여분 되는 마사지 순서를 아직 외우지 못했는데 선배가 있으니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처음으로 병실에 들어갔다. 

1인실에 노인이 침대 위에 누워있고 그 옆에 24시간 생활을 같이 하는 간병인의 침대가 있다.

처음에는 간병인들이 환자를 어머니로 불러 나는 잠시 착각했다. 

진짜 딸들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그들의 연변 사투리로 상황파악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연변 사투리다. 이 직업도 험한 직업이고 기피직업 인가보다


그렇지. 

아무리 딸들이라도 몇 년을 누워있는 부모들의 간병은 무리이지.

한 두 해는 가능하지만 장기간의 간병을 가능하지 않다. 이미 딸들도 노년에 접어들었다. 

  

이곳 병원은 95%의 환자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다. 

물론 각종 대사성 질환과 심장질환, 그리고 큰 수술경력은 기본이다.

노인들이 우리의 기척과 인사를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그저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다.


그 옆에 연변 간병인들은 무심하게, 따분한 얼굴로 TV를 틀어놓고 간이침대에 앉아 있다. 

간병인들의 옷가지, 살림살이, 간단한 취사도구, 화장품 등이 방구석구석, 화장실 한편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급여는 얼마일까?

정보를 조합해 보니 대략 월 500만 원인 듯하다.

정식 월급이 있고, 자녀들이 가끔씩 다녀갈 때마다 다소의 죄책감과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하며 건네는 별도

의 봉투, 각종 선물등을 합하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순간 은퇴한 나도 어쩌면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월 5백이라니!, 아니 그 이상도 된다.

여자들은 나이 들어도 원하기만 하면 이런저런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중고거래 사이트 당근에서는 요즘 물건거래보다 단기알바를 구하는 요청들이 많다.

자녀 등하교 지원,  청소알바, 식당 설거지, 취사보조, 갓난아기 돌보미 등등.

맘만 먹으면 70세 넘어서까지 일할 것은 넘친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도 많다.

우리 집의 작은 공원을 슬슬 거닐며 한 손엔 검은 봉투, 한 손엔 기다란 집게를 들고

대여섯 명 몰려다니며 쉬엄쉬엄 공원의 쓰레기를 집어드는 노인들.  다 우리 세금이다.


선배봉사자를 그대로 흉내 내며 첫 마사지를 시작했다. 오늘은 5명의 환자가 배정되었다. 

선배왈, 오전의 마사지 교육은 그야말로 이론일 뿐, 현실은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환자의 상황에 따라 생략하거나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어쩐지 이분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정통으로 익히고 싶었는데. 아쉽다.

초짜를 두고 뭔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 걸까? 

완장 찬 느낌이 드는 선배이다. 

처음이고 긴장한 탓에 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큰 소리로 호두갑이다.

'어머! 땀을 흘리네.  저런, 몸이 부실한가요?''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네 몸이 좀 약해요"  

먼저 들어온 봉사자의 텃세, 보이지 않는 우월감, 지배력이 느껴진다. 

아! 여기도 사회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구나.  

그렇지. 사람 모이는 곳은 어디나 서로에 대한 상호작용이 있기 마련이지.


선배는 수년간 이 봉사를 하면서 쌓아놓은 간병인들과 친분을 과시하기도 하고 의식이 거의 없는 노인에게 말도 걸고 애교도 부리고 뽀뽀도 한다. 

모른 척하고 나는 마사지가 끝나면 꾸벅 인사하고 다음 병실로 향한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봉사자를 위한 대기실에서 선배봉사자는 역시 나이부터 묻는다. 

나보다 6살 위다. 손 아래임을 확인하고 안도와 느긋한 눈빛을 보인다. 

나이 확인해서 어쩔 건데? 여기서 상사역할이라도 하려나? 

헐! 어디나 민증 까는 게 우리 사회 생리인가 보다. 

언제나 이런 못된 문화가 없어지려나.


이렇게 나의 첫 마사지봉사가 시작되었다.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의 자세로 선배에게 배우고 겸손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문득문득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선배봉사자에게 빈정이 상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참. 별것 아닌 것에 또 신경을 쓰네. 그럴만하지. 봉사만 10년 했다잖아. 인정해 줘야지.

상대 또한 초짜인 나의 무심함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  

어느새 나는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나 맘속으로 판단하고 잽싸게 거리감을 두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코칭에서 사람에 대한 판단과 편견을 내려놓는 것을 배우고 깨우쳤건만, 아직 멀었다.

그냥 인정해 주고 호기심을 가지고 묻고 배우는 자세이면 서로 편할 것을.  


오늘은 첫날이니 병원분위기 익히고 이론과 실습을 직접 현장에서 적용해 본 것에 만족하자. 


작가의 이전글 죽음에 한 발 가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