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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am Dec 10. 2022

'중세의 가을'을 그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oil on oak panels, 205.5 cm × 384.9 cm


가로 세로 2, 3미터나 넘는 이 거대한 크기의 작품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대표작으로 

현재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보쉬의 대표작이다.

멀리서 이 작품을 보면 혹시 브뢰헬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느낌상으로는 꽤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을 그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는 

피테르 브뢰횔이 태어나기 10년 전에 이미 이 세상이 없었던 15세기 중세시대의 화가이다. 


이 작품은 보쉬의 대표작품으로서 한국어로 굳이 해석하자면 '기쁨의 지상 정원(c. 1495-1505)'이다.

외부 패널은 왼쪽 패널에 묘사된 에덴동산과 오른쪽 패널에 묘사된 최후의 심판 사이의 주요 중앙 패널을 묶기 위한 것이다. 총 3개로 연결된 패널 중 왼쪽 패널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이브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 패널은 환상적인 복합 동물, 대형 과일 및 잡종 석조 구조물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자기도취적인 기쁨에 참여하는 누드 인물로 가득 찬 넓은 파노라마로 구성되어 있고 오른쪽 패널은 지옥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악의 유혹에 굴복하여 영원한 심판을 거두고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밤에 설정한 패널은 차가운 색상, 고문당한 인물 및 얼어붙은 수로를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부적으로 확대해서 살펴보면  작품의 왼쪽 상단을 보면 이 부분이 보일 것이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15세기의 작품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그렸다. 



또한 중앙의 중심 패널 하단에서 약간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 부분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재미나고 웃기는 부분이다.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보다 더 큰 조개를 힘겹게 업고 있는데 그 속에는 남녀로 추정되는 커플이 들어가 있고 포개어진 남녀의 다리사이로 조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진주가 뭉개 뭉개 피어오르듯 보이고 있다.


이런 그의 작품은 앞전에 잠깐 소개했던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1527-1569)의 <아이들의 놀이(Die Kinderspiele)>라는 작품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자화상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젊었을 때 , 그래서 인류가 어린아이처럼 고통과 기쁨을 즉각적이고 절대적으로 느끼고  불행과 행복의 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먼 것으로 여겨지던 때,  즉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이라고 부른 북유럽의 15세기 문화와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히에로니무스 보쉬 (Hieronymus Bosch 1450-1546)이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에 속한 도시 스헤르토헨보스에서 예로엔 판 아켄 (Jeroen van Ake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름이 알려주듯 선조는  독일의 아헨(Aachen) 출신인 것으로 추정되며 화가였던 할아버지 때부터는 스헤르토헨보스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름은 Hieronymus, Jerome, Jheronimus 등 조금씩 다른 철자로 써지기도 했다.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는 '아헨 출신'이라는 뜻의 성 대신 실제 자기 고향인 스헤르토헨보스를 나타내는 '보쉬'라는 성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그는 덴 보쉬(Den Bosch), 엘 보스코(El Bosco)라고도 불렸다.


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극히 적다. 

현재 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는 25점 이상 40점 이하이고 이 시기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화가 생존 시와 후대에 모방하고 복제한 그림이 워낙 많은 데다 훼손과 덧칠이 심한 작품까지 있어 진위 판정이 까다롭다고 한다.


보쉬는 북유럽 미술사에서 '얀 반에이크'와 '피에르 브뢰헬'의 사이에 존재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활동 시기가 거의 같다. 그러나 반 에이크가 개척한 사실주의, 즉 일상 속 사물의 빛나는 표면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서 오는 시각적 쾌감이 그의 그림에는 거의 없다. 다빈치로 대표되는 남유럽 르네상스의 밝은 자신감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에도 관심을 가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보쉬가 산 때는 이성과 과학과 인간을 믿었던 낙관론의 시대 '르네상스가 절정기'였지만 그는 이들에게 '고딕 부흥가', '중세 주의자'라고 비판받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비관주의'를 보여줬다.  잦은 천재지변과 전염병, 전쟁, 반란 등 역경의 14세기를 겪는 사람들 일부는 1000년에 안 왔던 세상의 종말이 1500년에 올 것 같다고 믿었는데 보스의 그림은 이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의 그림 속 세상은 곧 심판이 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죄악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섭고 추악한 곳이다.  그가 그린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고 악한 죄인들이 많다.



Christ Carrying the Cross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수난 장면을 담은 그림 중 가장 독창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 바로 위 작품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이다. 대각선 구도의 중심에 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은 악마의 형상 그 자체이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나쁜 도둑, 오른쪽 위에서 추악한 사제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넋이 나간 것 같은 선한 도둑 등 등장인물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며, 좌악 에 눈이 먼 인류의 한 극단을 대변한다. 공감 감 없이 얼굴만 바글바글 모여있는 질식할 것 같은 소란함 한가운데서 예수와 그의 땀을 닦아 준 성 베로니카만이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화면 왼쪽 구석에 있는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찍힌 예수의 얼굴은 눈을 뜨고 관람자를 바라보며 

세상과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Hieronymus Bosch «Visions of the Hereafter» 1490, Palazzo Ducale, Venice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보쉬의 작품이다.

처음 소개했던 작품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 보쉬의 대표작이긴 하지만 이 작품 못지않게 유명한 작품이면서도 이보단 간단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느낌을 줘서 좋아한다.

제목 그대로 보쉬는 이 거대한 작품을 통해 당시 가톨릭 세계관의 전제하에 인간이 죽고 나서 가게 될 세계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쉬 특유의 위트와 해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왼쪽 패널은 천사들에 의해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구불구불한 풍경으로 인도된 선택받은 자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지상 낙원이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죄의 마지막 얼룩이 깨끗해진 일종의 중간 단계이다. 이미 한 그룹의 영혼이 기대에 차서 위쪽을 바라보고 있고, 축복받은 자의 승천 구원받은 자가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모습이 별도의 패널에 묘사되어 하늘의 기쁨의 환상을 제시하고 있다. 육체의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축복받은 영혼들은 천사의 안내를 거의 받지 못한 채 밤을 통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머리 위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큰 빛을 황홀한 열망으로 응시하고 있다.


지옥에 떨어진 저주받은 자의 몰락 , 축복받은 자들의 천국으로의 상승은 세 번째 패널에서 저주받은 자들의 지옥 구덩이로의 하강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옥불이 바위틈을 뚫고 뱉어내는 지옥불에 불타 악마에게 붙잡혀 그을린 어둠 속을 지나가고 있다. 지옥 마지막 패널인 연옥에서는 험준한 산이 불타는 하늘을 향해 화염을 내뿜고 있는 반면 영혼들은 그 아래 물속에서 무력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옥은 천국 못지않게 신비주의자들의 영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명암의 뚜렷한 대조, 그림 상단의 갑작스러운 하늘의 섬광은 두 개의 낙원 패널의 고요한 빛과 색상과 대조되는 짙고 음산한 지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위 사진은 전체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두 번째 패널의 일부분이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터널 같은 곳을 통과해서 빨려 들 듯 나가는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블랙홀의 반대적인 모습이라고나 할까?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 속으로 홀린 듯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영화 007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패러디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영화 007 시리즈 포스터의 한 장면


보쉬 예술의 가장 매혹적인 주제인 '사후세계와 최후의 심판'에 대한 그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비전을

보쉬 그 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개성 있고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쉬는 워낙 현재 전해진 작품 수가 적고 그에 대한 학설이 부족하다.

어떤 설명에도 확실한 근거 자료가 없고 어떤 학설도 모든 도상을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수간을 동원한 많은 해석의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중세의 연금술, 점성술, 마술, 약학 등도 자주 거론되어 왔고 당시 네덜란드의 민담, 여행기와 같은 문학 작품 등이 도상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융은 보쉬를 '무의식의 발견자'라고 했고 정신분석학으로 그의 그림을 해석하려는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보쉬를 그들 미술의 선구자로 여겼다. 개별 도상이 상징하는 의미를 밝혀 '도덕주의자' 이자  '회의주의적인 설교가' 로서의 보쉬가 전하는 메시지를 해독하려는 시도와 달리 '화가' 로서 보쉬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도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주제보다 그것을 전에 없이 생생하고 그럴듯한 이미지로 창조해낸 '상상력'과 '독창성'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 특유의 관찰력을 아직까지 그 원천을 확실히 알 수 없는 비범한 개성과 결합하여 '근대적인 방법'으로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섬광을 발휘한 '중세의 정신'을 보여준 탁월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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