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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Feb 14. 2022

까마귀소년을 찾아서

터프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사진 출처: pixabay


 "넌 지금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 되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터프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네 스스로 이해해야만 하는 거다, 알겠지?"
  나는 그냥 잠자코 있다. 까마귀 소년의 손의 감촉을 어깨 위에 느끼면서 이대로 천천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넌 지금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 된다" 하고 까마귀 소년이, 잠들려고 하는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인다. 내 마음에 짙은 남색 글자로 한 땀 한 땀 문신을 새겨 넣듯이.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스무 살이 막 끝나려는 직전에, 나는 휴학계를 내고 입대했다.


  그로부터 2년 2개월 여의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의 연속이었다. 지극히 폐쇄적이면서도 지극히 공개적인 집단에 갇혀 매순간이 숨이 막히는 경험이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따가운 철조망 때문에 피흘리면서도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라는 문자열의 힘 앞에 무력했다. 죽어도 관심 사병이니 의가사 제대니 하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어 나가긴 싫어 바득바득 이를 갈며 웃고 지냈다.


  위협으로부터 내 실존이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가 진중문고陣中文庫였다. 부대 청사 내의 도서관은 규모에 비해 읽을 만한 장서를 꽤 갖추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해변의 카프카>라는 소설과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을 처음 만났다.


  <해변의 카프카>는 열 다섯 살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가 집을 떠나 멀고 낯선 도시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다무라 카프카란 일본식 본명이 아닌 주인공이 직접 지은 이름이며, '까마귀(라고 불리는)소년'은 그의 분신이라고 할 내면의 존재이다. 주인공이 고뇌할 때마다 어디에선가 날개를 펼치고 나타나서 행동 방침을 제안하거나 시니컬한 위로를 건네기도 하는 자아다.    


  책을 처음 읽을 때부터 이 까마귀소년이라고 하는 존재가 썩 마음에 들었다. 조력자가 없는 낯선 공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그 덕분에 '이제부터 터프한 스물 한 살이 되어야 한다'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고 터프함을 기르는 데 힘을 집중하기로 했다.     


  내 말 잘 들어. 엄청나게 지독한 모래 폭풍을 상상해 봐.
  (중략)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너는 다시 또 모래 폭풍을 피하려고 네 도주로의 방향을 바꾸어버린다. 그러면 폭풍도 다시 네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또 방향을 바꾸어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거야.
  (중략)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뿐이야."


  밀실을 허락하지 않는 특수한 광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하루종일 묶여 있었어도, 내 정신만큼은 그것들에게 침노 당하지 않았다. 일병으로 진급한 뒤 시간이 다소 흐르자 소등 시간 이후에도 책을 보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 시간에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문장을 옮겨 쓰면서 까마귀소년이 내 마음에도 깃들도록 손짓하였다. 한참 시간을 들여 책을 거듭거듭 읽는 동안에 차츰 의 기척이 느껴짐을 확인한 뒤에는, 실존의 극한까지 내몰렸던 위대한 스승들-가령 빅터 프랭클이니 신영복과 같은 분들-에게도 조심스럽게 찾아가 문을 두드렸고 비결을 여쭙기에 이르렀다. 마음의 내부 공간은 갈수록 넓어지고 벽이 단단해져갔다.


  그리고 그 모래 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 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인 거야.


  전역증을 받고 부대 정문을 마지막으로 나선 직후, 나는 관념 속 까마귀소년의 깃털처럼 완벽에 가까운 검은색 물감을 붓에 듬뿍 묻혀서, 지난 2년의 화폭을 전부 새까맣게 칠해 버렸다. 일말의 붓터치며 옅은 스케치 자국에 이르는 흔적까지 전부 찾아내 덧칠함으로써 그것들이 앞으로의 내 삶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치했다.


  물론 군대는 계속 그 자리에서 존속하며 시간을 두고 나의 후배들을, 하나뿐인 동생을, 사촌동생들을 위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이 모처럼의 휴가를 받아 나올 때마다 귀찮은 기색 없이 만나서 술을 사고 밥을 사주고 그들의 한풀이를 잠자코 들어주는 것이었다. 앞도 뒤도 없이 까마귀소년을 들먹일 수는 없으므로.    


  다행히 시간의 위대한 힘은 능히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군대조차도 차츰 바뀌어, 들리는 풍문으로는 병사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자유를 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다. 휴대전화를 허용한 시점 이후로 부조리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어들고 있다 한다. 병사들의 기강 해이 문제가 뉴스에서 언급될 정도니 처우가 정말 바뀌긴 했나 보다.


  나는 종아리까지 수렁에 잠겨 있다가 요행히 까마귀소년의 도움을 받아 빠져 나왔으나, 지금 부대 울타리 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람들과 앞으로 군대에 갈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아무쪼록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고 그곳에서 나오길 바란다.     



   

  까마귀소년은 방금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 위에 앉았다가, 어깻죽지로 깡총거리며 올라갔다가, 지루한 듯 철봉 기구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좁은 방안에서 푸드덕거리며 내가 써내려가는 글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화면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으면 어디선지 모르게 나타나서 날개를 크게 펼치고 나를 위한 글감이며 단어를 물어다주기도 한다.


  그는 마음의 벽을 단단히 하는 데 여전히 큰 도움을 준다. 나는 날 때부터 여렸고 지금도 여리기에, 세상이 두렵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나이가 있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내가 있고 나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자식이 있으니 태연자약한 척을 하고는 있지만.


  연약한 속내에 철갑을 둘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자강自強을 거듭한다. 덧없는 것에 미혹되지 않고, 벌벌 떨릴지언정 결코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가치로운 것을 위해서만 살아가야한다는 결심을 짙은 글자로 한 땀 한 땀 새겨넣곤 한다. 까마귀소년이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넌 지금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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