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당신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다. 액세서리를 현명하게 구입하려면 어떻게 착용할지 미리 계획하고, 옷장에 있는 자신의 옷들과 어울리는 품목이나 컬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모두가 패션 전문가처럼 살 수도 없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여러 가지 아이템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흡족하도록 조절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옷을 잘 입고 클래식한 액세서리를 적당히 활용하도록 완벽하게 가르쳐주는 책은 없다.
- 新東亞, [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브리프케이스
브로우라인 프레임
세븐폴드 타이
행커치프
포켓 스퀘어
타이핀/타이바/타이택
칼라 바
부토니에
커프 링크스
슬리브가터
커머번드
서스펜더
삭스가터
기타 등등
길 가던 남자를 아무나 붙잡고 위의 목록을 들이대면 평균적으로 몇 가지나 알고 있을까. 클래식에 애정을 담아 글을 쓰고 있노라고 해도 나 역시 잘 모른다. 실제로 써 본 건 서너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확실하게 아는 바를 말하자면, 저것들은 클래식 복식에 활용할 수 있는 클래식한 액세서리들이다.
남자가 액세서리를 착용한다는 것은 사회적 시선에 맞설 수 있는 내면의 용기와 저항력을 필요로 한다. 집단의 드레스코드여서, 옷에 대한 취향을 가꾸기 싫어서 클래식을 입는 남자들에게 액세서리들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클래식을 입되 복식에서 심플함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남자들도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수트와 셔츠와 벨트와 구두라는 줄기면 충분하고 넥타이, 시계, 반지라는 기본적인 가지조차 거추장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에겐 무리에 위화감 없이 섞여 있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일면으로는 무리에서 튀어보이기를 원하는 본연의 심리가 있다. 패션의 본질 중 하나는 아이덴티티의 표현에 있다. 클래식도 패션의 한 분야이기에, 품위를 갖춘 복장에서 단 하나의 액세서리만을 활용한다고 해도취향을 표현하는 데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의 클래식 복식을 구성하는 데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것들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멀리 서울까지 가서 산 네이비 홉색 재킷과, 밑단을 두툼하게접어 올려 박음질한 회색 바지와, 예물로 마련한 기계식 시계, 왼손 약지에 낀 결혼 반지, 다섯 켤레의 잘 닦인 구두와, 종아리를 덮는 롱호스 양말 등은 직장에서 보내는 하루 내내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고 제 쓰임에 충실하게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요소들은, 영화 제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과거에 무관심했거나 한사코 부정하던 것일지라도 어느 날 급격히 좋아지기도 한다. 복식 세계에도 그런 재미가 있다. 가장 최근에 찾은 재미는, '서스펜더'라고 불린다.
서스펜더suspender는 미국식 영어, 영국식으로는 브레이스braces, 우리말로는 멜빵이다. 바지를 고정한다는 용도 측면에서는 벨트와 같지만 어떤 바지를 입느냐에 따라 궁합이 약간 다르다. 벨트는 밑위가 짧고 몸에 달라붙는 바지에 적합하고 서스펜더는 밑위가 길고 여유 있는 바지에 적합하다.
얼마 전에 산 바지는 확실히 기존에 입던 바지보다 밑위도 길고 모든 부분에서 넉넉해서 그런지 벨트를 차 보니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옷감이 쭈글쭈글 우는 게 보였다. 허리부터 맨 아랫단까지 일자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처음엔 벨트 구멍의 간격 문제인가 싶어 벨트 길이를 조금 손보았음에도 바뀌는 게 없었고, 한참의 삽질 끝에 바지와 벨트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스펜더를 파는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종류가 대략 3가지였다. 등을 Y자 형태로 가르는 종류가 가장 기본, 등을 X자 형태로 가르는 종류가 있고, 등을 X자 형태로 가르면서도 클립을 앞쪽이 아닌 옆쪽에 채우는 홀스터형이란 것도 있었다.
영화 내용보다도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콜린 퍼스의 서스펜더였다. Y형 서스펜더를 매고, 클립이 아닌 단추로 바지에 고정한 모습. 출처: 영화 <킹스 스피치>
이번에도 콜린 퍼스. 그가 멋지게 소화한 복장을 보느라 눈이 호강하였다. 권총집을 닮은 홀스터형 서스펜더를 맨 모습. 출처: 영화 <킹스맨>
나는 고민하다가 기본으로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스펜더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사람의 이름을 딴 영국 브랜드를 선택하고, Y자형에, 진한 브라운을 골랐다. 주문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물건이 집에 도착했다. 멜빵은 과거 유치원에 등원하는 복장 구성 중 하나였기에 낯이 익었으나 그 이후로는 삼십 여 년만의 해후였기에 무척이나 떨렸다.
한때 그토록 거부했던 것들 중 하나를 다시 내 손으로 받아들이다니... 어렸을 적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무들의 야유가 상기되는 듯하였다. 포장을 풀고 새로 산 바지에 세 개의 클립을 채우면서 꼴깍, 군침을 삼키었다. 진한 회색 바지의 단추를 채운 다음 흰색 옥스포드 셔츠를 입고 마지막으로 멜빵 끈을 어깨로 걸쳐보았다. 어깨에 살짝 긴장감이 들게끔 길이를 조절하고는 전신거울 앞에 가서 섰다.
바지가 복부를 조이지 않았고 허리선은 벨트를 했을 때보다 올라가 있었다. 바지를 입었다기보다는 몸에다 걸어둔 느낌마저 든다. 한껏 거추장스러웠다는 기억은 온데간데 없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임에 무척이나 편안했다. 일자로 뚝 떨어지는 바지선도 내가 머리에 그린 그대로다.
막 자랑거리가 생긴 어린이의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거실로 나가 아이와 놀고 있던 아내에게 첫 선을 보인다.
어때?
.... 좀 그런데.
남자가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이 집에서부터 존재하였다. 이처럼 새 옷을 본 아내의 반응이 영 떨떠름한 경우, 여태까지 십중팔구는 반품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 물건을 워드로브에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기에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피드백을 한 마디라도 들어야했다.
마니아다,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가기 꺼려진다, 어머님도 놀랄 것이다... 우려의 끝에 어렵사리 "잘 어울리기는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허락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면 됐다. 나 또한 마음이 흔들리까 싶어 포장지들을 몽땅 버렸고 다음 날부터 직장에 착용하고 나갔다.
그래, 멜빵을 하는 직장인은 백 명에 한 명을 보기 힘드니 아내의 말마따나 마니아라는 말을 인정함이 옳다. 어릴적 동무처럼 직장의 누군가는 알아보고 짓궂게 놀릴 수도 있겠지. 정말로 중요한 건 멜빵이든 서스펜더든 내가 직접 탐색하고 흥미를 느껴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세상의 빛나는 면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심드렁하게 느끼며, 바뀌는 것이라고는 자꾸 먹어가는 나이밖에 없는 남자로서 새로운 취향을 발굴해냈다는 점이 즐겁다. 재미 있다.
누군가 아주 잘 어울리는 벨트라고 권한다고 해도, 당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벨트는 결국 당신의 물건이 아니다. 액세서리의 역사와 활용법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콘텐츠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취향이고 의사결정이다. 역사를 알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탐색하는 진짜 신사가 되기 위한 이 특별한 원칙들은 복잡하고 귀찮은 지침들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한결 수월하고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운 문화일 때 비로소 유의미하다. 그러므로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음미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