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름살기 10 : #나쨩비치 #짜오마오
오늘은 나트랑에서 지내는 마지막날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일찍 일어나서 일출 보러 나왔다. 여전히 구름이 두텁고 흐린 날이 계속 되어 결국은 못 봤지만 그래도 어제보단 햇살조각이 커졌다. 나쁘지 않은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방에서 좀 쉬다가 평소보다 약간은 진한 어둠이 걷힐 때쯤 바다로 출발했다. 마지막 날이니까 더더욱 베트남 냐짱의 바다를 놓칠 수 없다. 처음에는 한국 바다랑 큰 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도시에 정이 푹 들기도 했고, 냐짱에서 홀로 즐기는 이 여유는 이 순간 뿐이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
바다에 들르기 전에 콩카페부터 가려는 길이다. 횡단보도 앞에 있는 중에 오토바이 탄 베트남 아저씨가 “깜보.”였나 뭐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뒷자리에 앉으라고 탕탕 쳤다. 무표정으로 고개 저으니까 웃으면서 가던데… 택시기사인가? 영업을 그 따위로 하면 누가 퍽이나 그쪽 뒷자리에 올라타겠습니다? 그랩택시기사들이 입는 초록색 옷은 아니어서 어쩌면 택시기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콩카페에서 유명한 코코넛 연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바다로 나왔다. 연한 믹스커피맛으로 특별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바다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서 제일 앞쪽 선베드에 앉았다. 러시안들은 종이책을 겁나 많이 읽는다. 나도 종이책이 더 좋긴 한데 휴양이든 여행이든 이북이 짐이 덜 되니 편한 걸 쫓게 되는 것 같다.
파도가 진짜 높게 쳐서 감탄하는 중에 옆에 러시아인 두 분도 "히익!"하는 소리를 내면서 그들끼리 뭐라뭐라 말을 나누었다. 구름이 해를 가려서 파라솔 없이도 썬베드에 누워있기 좋은 날씨다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시원하다.
썬베드에 앉으러 가기까지의 과정을 적어보자면, 주변에 안내원은 없는데 직원 느낌이 긴가민가하게 드는 남자 다섯이 코코넛 좌판대 앞에 모여있었다. "신쨔오. (안녕하세요.)" 하면서 호텔에서 받은 비치바우처를 흔들었다. 그 중 하나가 “(어느 자리에 앉든) Free!”라면서 웃어주었다.
그래도 바우처는 내고 앉아야 할 거 아닌가 싶어서 다시 돌아봤더니 다른 남자가 어디서 왔냐, 호텔 어디냐(호텔바우처 들고 있는데 모르는 거 보면 호텔직원이 아니고 썬베드 대여 하는 사람인가 싶었음) 묻더니 자리를 안내해줬다. 바다에 들어갈 거냐고 해서 보기만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한번 더 와서 “코코넛?”하길래 쏘리하면서 콩카페 테이크아웃 커피 들어올렸더니 이후엔 영업 안 했다. 그 남자가 주로 사람들 자리를 배정했다. 나중에 비 와서 장소 이동하려고 일어나니까 썬베드 시트가 더 젖을까봐 후다닥 뛰어서 자리를 정돈하러 가기도 했다.
썬베드에 일회용 커피컵을 잠시 놓고 외출했다. 나쨩비치 공중화장실은 유료로 1만 동이길래 호텔 돌아갔다가 체크아웃까지 하고 20분 있다가 돌아갔다. 다행히 그동안 내 자리를 안 치워준 덕분에 바다를 더 즐길 수 있었다.
노래 안 듣고도 파도 보면서 ‘음. 파도가 높군.’, ‘파도타기란 단어가 이래서 나왔었지, 참.’, ‘오늘 해변가 바다색은 모래랑 섞여서 탁하지만 뒤쪽은 푸르군.’, ‘사람들이 즐겁게 노니까 나도 에너지 받게 되는군.’ 이런 생각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잡생각이 안 든다고 해야 할까.
오전 10시 38분. 갑자기 비가 왔다. 몇 방울 떨어지고 말겠지 하던 게 꽤 세게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 챙겨서 일어났고 나도 짜오마오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는 1분도 안 돼서 그쳤다. 하하. 그래도 푹 젖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이었다.
짜오마오 식당 오픈과 동시에 들어왔다. 망고스무디의 망고큐브는 부드럽고 음료는 진한데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하지는 않다. 무난했다. 짜오마오 해산물 미꽝은 면이 부드럽고 처음 입안에 넣을 때 달콤한 맛 난다. 혀끝이 얼얼하게 매콤하긴 한데 매운 거 잘 먹는 나한테 크게 매운 맛은 아니었다. 면만 먹으면 쉽게 질릴 맛이라 해산물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듯하다
버스 출발 30분 전까지 신투어리스트로 오래서 40분 전에 도착했다. 앉아서 쉬다가 예약서를 제출하고 티켓이랑 물을 받아왔다. 1시 출발이랬지만 12시 55분에 출발했다. 표 검사는 따로 안 했고, 달랏에 도착해서 표 내야 하냐고 물어보니까 안 내도 된다고 했다. 여행사 직원이 기사님한테 손님들을 안내해주었다.
나트랑에서 달랏 가는 버스 안엔 나랑 한국남자 두 분이랑 버스기사님 한 분 뿐이었다. 캐리어 들고 올라가서 버스 안에 넣었다. 의외로 캐리어 고정 같은 걸 딱히 하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자리를 마음대로 옮겨도 됐다.
신투어리스트 버스는 알려진 대로 안전벨트가 없었고 아직 나트랑 시내를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덜컹거려서 멀미각이라고 생각했다.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이어폰을 바로 귀에 꽂았고, 최대한 시트에서 등 떼서 몸이 덜 흔들리게 했다.
흙 섞인 바람 냄새가 좋았다. 바람이 있어야 멀미 덜하니까 창문을 열고 있었는데, 아마 바깥의 매연이 들어와서인지 목이 따끔거려서 닫아야 했다. 어차피 사람 안 탄 쪽의 창문들이 다 조금씩 열려있어서 바람은 계속 들어왔다.
나트랑에서 달랏 가는 신투어리스트 버스는 롤러코스터에 가깝다. 재밌다고 생각하면 재밌다. 50분 정도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차 안에 있을 땐 오히려 괜찮았다만 노래 끄고 내렸는데 바람도 안 불어서 땅 위에서 멀미 할 뻔했다. 20분 쉰 다음에 출발했다.
휴게소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꽤 많았다. 사진의 좌측 뒤에 있는 녀석은 나무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개다. 더운 나라 동물들이야 느긋하고 잠이 많다지만 여긴 그렇게 덥지 않은 곳인데 진짜 푸우욱 자서 신기했다.
올라가는데 갑자기 추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긴팔을 꺼내 입었는데 나는 옷이 캐리어에 있어서 찜찜해도 별 수 없으니 버스에 비치돼있던 담요를 덮었다. 담요가 왜 있나 했는데 기온 변화 때문이었나보다. 나트랑에서 달랏 가는 분들은 가는 길에 입을 긴팔 챙겨가셔야겠다. 당시에 이렇게 메모를 쓰는데 아이폰 배터리도 갑자기 빨리 닳았다. 여름나라라 빨리 닳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달랏은 고산도시라서 확실히 춥나보다. 15시 10분에는 버스가 갓길에 잠시 정차하더니 모든 창문을 다 닫고 재출발했다.
16시 5분, 달랏에 엄청 빨리 도착했다. 달랏의 첫 인상은 아기자기한 유럽풍 마을이었다. '설마 벌써 달랏인가?' 싶다가 아직은 도착시간이 한참 남은 상태라 '나트랑이랑 달랏 사이에 있는 도신가보다.'했는데 그냥 진짜 달랏이었다. 신투어리스트 달랏지점에 내렸고 화장실이 깔끔했다.
원래 신투어리스트 달랏 지점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숙소로 들어가려 했는데 식당들이 죄다 몇 계단씩 올라가야 하는 형태였다.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아서, 여행사에 잠시 맡기려 물어봤더니 2시간 아래여도 요금 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냥 그랩택시 잡고 숙소로 출발했다. 그랩이 3초만에 잡혔는데 아예 신투어리스트 건너편에서 대기하던 차였다. 그랩기사가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랬는데 주섬주섬 마스크 썼다. 내가 먼저 쓰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요 며칠 달랏에서 슬슬 중국 뿐 아니고 한국인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경계한다는 말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숙소 도착했는데 내일 택시 탈 거면 자기 부르라고 명함주셨다. 비가 안 오면 부르겠다고 했는데, 숙소 와보니 호스트가 본인이 아는 그랩바이크 기사가 있다고 택시는 비싸다고 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사실 나트랑은 휴양하러 간 셈이라 여행 할 생각이 하나도 없었어서 코로나 때문에 롱선사나 포나가르 사원이 닫혔다고 했을 때 아쉽지 않았다. 달랏도 루지 하나만 보고 있고 여행할 생각 별로 없는데 교통수단을 고를 수 있게 되자 뭔가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