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이었다. 한 장 남긴 달력을 바라보는 그 시간까지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친정을 다녀왔다. 김장김치를 얻으러. 이번 주말에는 시댁을 다녀왔다. 또 김장김치 얻으러. 1년 내 비어있던 김치냉장고에 김치통 8개가 가득 찼다. 김장김치, 열무 갓김치, 동치미, 백김치 등등, 작년에 받았던 묵혀둔 김장김치 한 통까지.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그 김장김치로 인해 갑자기 인생에 대한 생각을 다시 꺼내 들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 42년생이시다. 친정에 자주 오지 않는다 투덜거리셨는데, 다 커버린 딸을 주려고 과일 배를 사시고, 부침개 같은 음식을 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그저 자식 보는 기쁨. 당신 손으로 뭔가 해줄 수 있을 때의 만족감. 그것이 어머니 행복인가?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어르신들이 투정 삼아 쉽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죽지 못해서 산다는. 올해 김장김치를 얻으러 어머니를 뵈면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한 여인의 인생을 보면서 그 문장이 떠올랐다. 여든 살, 그녀의 일상은 본능적인 생체리듬에 따른 과정이고, 무료함을 달래러 노인정과 복지 회관을 다니신다. 매 순간 늙어가는 세포들 때문에 몸은 말라가고, 모든 생체기능은 떨어져 가고 있다. 그런 당신의 육체를 받아들이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매일 드셔야만 하는 대사 장애를 지원해 줄 약들. 감기라도 걸리면 그 약의 개수는 10개를 훌쩍 넘긴다. 자꾸 마음대로 되지 않은 몸을 보면서, 자신의 꿈과 희망 따위들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다. 그냥 매 순간을 살아내고 있으시다. 지금 어머니는 자신의 전부였던 자식 생각뿐이시고, 이미 성장해버려해 줄 게 없는 다 커버린 자식들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고 기쁨이시다. 그것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어머니를 보면서. 나의 노후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다름이 없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공감이 된다. 하루 종일 TV 소리가 켜져 있는 시댁, 시부모님을 뵈면서도 같은 마음이 떠올랐다. 이래저래 아프시다는 시어머니 말씀에도 친정어머니가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는 80세, 시어머니는 아직 70대. 시어머니도 곧 우리 어머니처럼 나이 드시겠지? 내 나이 갓 서른을 넘겼을 때, 어머니가 처음으로 많이 아프셨다. 암 투병생활 마치셨을 때, 어머니 아픈데 다 고쳐드리고 회춘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기쁨이었고 목표였던 순수한 때도 있었다. 나이 듦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데, 그때는 그런 무모한 순수함이 있었다.
이제 나도 아프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생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성큼 다가와 놀랍고 두렵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어머니처럼 매일 신진대사를 유지시켜줄 약 없이 살기 힘든 순간이 오겠지, 자꾸 다리에 힘이 빠져 곧 걷지 못할 순간이 오겠지. 나를 보러 오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끔찍한 순간이 오겠지. 정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
지금은 나에게 꿈도 있고, 바쁜 일거리도 있고, 공부도 있고,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청소년 아이들이 있다. 먼 미래를 고민하고 생각하기에, 너무도 바쁜 일상이다. 그렇지만 자꾸 70대와 80대 내 모습이 고민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아이들도 떠나고, 침침한 눈으로 공부도 할 수 없고, 꿈도, 일도 사라진다면? 도대체 어떤 나이 듦을 맞이하게 될까? 지금은 모르겠다.
인간의 인생 곡선과 생로병사의 과정이 눈앞에 그래프처럼 그려진다.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늙어가겠지. 근데 오늘도 뭐 그리 아웅다웅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지, 어떻게 나이 듦을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 본다. 그래도 난 어머니보다 낫다. 그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시대에, 배움과 정보와 지식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그때를 생각해 볼 여유도 있고, 준비할 시간도 있으니까.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항상 가슴 뜨겁게 만들고, 감사와 눈물을 함께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