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팀들 중에 우리 부부처럼 커플만 참여한 경우가 4 커플이었다. 60대 1 커플, 50대 2 커플, 40대 우리 부부. 그중 60대 커플이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전형적인 과묵하고 엄한 아버지 타입의 남편분과 여리고 왜소하고 새침한 아내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듯 섞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굳이 어르신 커플과 가까이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나, 보통 레스토랑 테이블이 6인석 혹은 8인석인지라 커플 4팀이 함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작은 그랬다. 슬로베니아 어느 오래된 생선가스 집이었다. 분위기 있는 그 레스토랑에서 60대 남편분이 와인을 시키셨다. 보통 레스토랑은 식사만 제공되고 음료는 별도주문이라 각자의 음료는 각기 주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와인 한 병 주세요.
- 네에? 한잔 아니고요?
- 한병 주세요.
어르신은 와인을 한병 주문해 각 커플들에게 따라주셨다. 유독 맛있는 레드와인이었고,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다. 역시, 나이 들면 이런 여유도 있어야겠구나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어르신이 위트와 센스도 있으시고, 입담이 참 좋으셨다.
그런데...
매 식사마다 삼다수병에 채워진 술이 등장했고, 밤에 별도의 술자리를 마련하셨다. 첫날밤은 신세 진 와인이 있기에, 관광지에서 구매한 와인 한 병을 내놓고 대접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지는 저녁자리가 난감했다. 암묵적인 참여요청에 거절하기도, 남은 여행을 고려해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넷째 날부터 건강을 핑계로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살짝 거리를 두었다.
여행 중에 전혀 모르는 분을 만나 접대 아닌 접대를 하게 될 수도 있구나 싶고, 가까운 사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인데, 낯선 이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특히 부부가 이 먼 곳까지 함께 한 여행에 부부만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두 분만 계시면 심심하신가? 하는 추론도 해 보며, 그 어르신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고민했다.
지극히 옛날(?) 남편이셨다. 남편의 조용한 한마디에 아내분은 부지런히 음식을 가져다 나르셨다. 낯선 이들과 불편한 저녁 술자리에도 묵묵히 옆자리를 지키시고, 끝나지 않은 자리를 정리하시려고 남은 술을 들이켜시기도 했다.(술에 알레르기가 있는 분이었음에도...)
왜 매일 식사 때마다 적지 않은 술을 드셔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 어르신에 대한 불편함보다 안쓰러움이 더 컸다. 정말 저렇게 매일 드시면 건강에 해로우실 텐데... 어찌 보면 과거 우리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내분과의 관계가 좀 아쉬웠다. 이제 아내분께 좀 더 다정해도 좋을 텐데. 원래 그런 건가? 겉으론 알 수 없는, 보이지 않은 무엇이 있겠지. 아직 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나 보다.
여행 중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처음 본 어르신을 이유도 모른 채 접대하는 기분? 풋. 처음엔 황당하기도 했지만, 신선하기도 했다.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어딘가에 사시는 그 어르신이 더 건강한 삶을 사시길,행복하시기를, 나이를 생각해 몸을 아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왠지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들었다. 덩달아 아내분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왜!!! 술을 마셔야만 하는 걸까?
아시는 분, 댓글 부탁드립니다.
그분의 삶을 모르기에 전혀 짐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나는 60대가 되어도 남편과 손을 잡고서 우리 둘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부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