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메이커, 그 따뜻한 이름
낮 최고기온이 아직도 40도를 웃도는 아부다비.
한국은 가을이 왔다는데 여긴 적어도 11월은 되어야 숨 좀 쉬고 살 날씨가 올 듯하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달릴 날을 기다리다가 얼마 전부터 헬스장 러닝머신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새벽 수련 동지 덕분이었다.
달려보자고 결심을 하고서도 제일 힘들었던 건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오늘은 쉬고 싶으니까, 여긴 뜨거운 나라니까, 요가 수련하는데 뭘 달리기까지…’ 참으로 많은 변명거리들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달리기 하는 여러 동지들을 보며 나도 한 번 달려볼까 싶었다. 비록 러닝머신 위지만 달리기로 맘먹고 헬스장을 찾았다.
매일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달리기는 또 다른 변명거리들이 생기며 미뤄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요사이... 그리고 오늘 아침 40분 달리기를 했다.
조금 걷다 스피드를 올리며 달린 지 10분쯤 지났을까?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아 이 저질체력… 아 이 근력이라곤 없는 두 다리...'
내 몸을 향해 왜 그 모양이냐고 외쳐댔다. 오래 달리고 싶은 건 내 욕심이었다. 스피드를 낮추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러다 옆을 보니 금발의 한 언니가 달리고 있다. 그 옆으로는 건장한 아저씨도 달리고 있었다.
‘에잇, 다시 달려보자.’ 하며 러닝머신 스피드를 더 올려본다. 그러다 또 10분쯤 뒤에는 내 혀가 턱아래로 내려왔다. 고개를 쓱 돌리자 금발 언니가 푸하 웃는다.
나도 웃음이 터져 그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웃다 보니 다시 힘이 생기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속도를 많이 높이지 말고 달려보는 거야.' 나는 다시 또 달리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다 젖어있다. 얼굴은 발그스레 해지고 러닝머신 심박수는 150을 넘어서고 있었다. ‘처음보다 덜 힘든 느낌은 뭐지?’ 그렇지만 아파오는 다리... 다시 옆을 보니 금발 언니가 씽긋 웃어준다. 다리가 아파왔지만 나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내 얼굴을 못 봐서 모르지만 아마도 억지 미소 같았으려나?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웃음으로 보답해야 할 것 같아 입꼬리만 올린 모양이었으니...
다시 팔을 휘저으며 뛰어본다. 이번엔 왼편 거울을 보니 나와 금발 언니, 그 옆 아저씨가 함께 뛰는 모습이 보인다.
마라토너 곁을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커'가 떠올랐다.
잘 달리지 못하는 내 곁에 금발 언니가, 또 튼튼한 아저씨가 함께 뛰어주는 느낌이었다. 내 혓바닥이 바깥으로 빠져나올 즈음엔 미소로 응원해 주고, 내가 그만 달리고 싶을 때도 그들은 달리고 있으니 헬스장에서 든든한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마라토너에게 페이스 메이커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달리기와 삶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걷다 달리다, 또 주저앉았다가 또 걷고...
그러다 좋은 동지, 페이스 메이커를 만나 힘을 얻어 또 달려보는... 달리기도, 우리의 삶도 혼자서는 힘든 여정이 아닐까? 우리가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준다면 매일 달리는 우리의 삶도 조금 더 힘을 내어해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