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Jan 12. 2023

사장은 병가를 누구한테 제출하나요?

사장은 아프지도 못하는 현실에 대해

평소에 앓고 있던 이석증이 도졌다. 이석증은 귓속 반고리관 내부에 이석이라는 돌이 굴러다녀 어지럼증이 발생하게 되는 병인데 완치라는 개념보다는 그때그때 치환술을 받거나 약을 먹거나 한다. 그래도 재발이 되는 병인데 그 병이 도졌다. 어지러워서 아침에 못 일어나고 핑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앓고 있었다. 일단 받아둔 상비약을 먹긴 했지만 금방 진정되지 않았다. 오늘 하루 쉴까 몇 번을 고민했지만 주문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울렸고 택배기사님이 오후에 도착하신다고 보내신 연락을 받고는 단념했다. 진짜 몇 번을 배송지연 문자를 보낼까 고민했는데 이제 시작한 초반부터 벌써 신뢰가 깨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최대한 머리를 안 움직이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날은 하루 종일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일의 속도는 느렸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위의 나처럼 퇴사 후 작고 소중한 회사의 사장이 된 그 사장이 아프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눈치 보며 병가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 아침에 아픈 몸을 이끌고 머리를 부여잡고 머리를 굴리며 문구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원칙상 아플 때마다 쉬어도 된다. 사실 아프지 않아도 쉬어도 된다. 그 누구도 내가 쉰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 편하게 쉴 수 없다는 것. 이 회사의 유일한 직원이자 사장이 쉰다면 이 회사는 멈춰버린다. 누가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평소에는 별로 없던 주문이 오늘따라 유난히 왜 이렇게 물 밀려오듯 들어오는지. 문의 전화나 메신저는 끊임없이 울리고 기간 안에 발주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신상품 제작도 마감일 안에 마무리해야 해야 한다. 게다가 택배 기사님이 오시기 전에 배송 제품도 포장을 완료해야 한다. 이 많은걸 누구도 대신해 줄 사람 없어 내가 해야 한다는 게 머리에 맴돌고 있어 아파도 마음 편하게 누워있지 못하고 약을 먹거나 아침에 일찍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온 뒤 밀린 일들을 마저 처리해야 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회사 다닐 땐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던 것 같았던 것 같다. 





'어제저녁부터 몸살 기운이 조금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돼서 말씀 안 드렸었는데 아침이 되니 몸살기운이 더 심해져서 오늘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며 쓰고 지운 글을 회사에 단체 톡방에 올리고 난 뒤 확인 톡을 받으면 병가 허락은 끝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전 회사는 주어진 양만큼의 병가, 휴가에 대해서는 딱히 제재가 없었던 편이라 타사보다는 눈치 없이 잘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잔병치례가 잦은 나는 참고 다닐 때가 많았다. 어쨌든 그날은 병가를 냈으니 하루 푹 쉴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사실 애사심이 조금도 없었던 나는 회사야 어떻게 되든가 말든가 하루 쉴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평일에 푹 쉬며 요양을 했다. 쉬는 동안 마음이 불편하지도 일이 생각나지도 않았었다.




물론 회사를 다닌다고 나처럼 무조건 다 내려놓고 푹 쉬는 사람만 있지 않을 것이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참고 출근하신 분들이 분명히 더 많이 있을 것이다내가 사장이 되면 아플 때나 쉬고 싶을 때 마음대로 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당연히 생각해던 나의 무지에 대해 반성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까지 회사원이었던 내가 오늘은 사장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