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농촌 인심에 딱 맞는 술 선물
매체 특성상 농촌 취재를 많이 간다. 농촌이 인심이 좋다는 말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로 농촌 인심이 좋은 건 맞는 말이고, 또 이 말만 인정하면 농민이면 꼭 덤을 줘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반은 틀리다고 해야겠다.
지난해 여름, 경북 청도에 취재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분, 연락할 때부터 따뜻함이 느껴졌다. 차 없는 기자를 위해서 청도역까지 마중을 나오신다고 했다. 포터트럭을 몰고 나타난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포터트럭을 모는 분들이 으레 걱정하듯 "차가 더러워서 어쩌냐" 하셨지만, 나는 흙먼지가 묻은 포터트럭이 좋았다. 예쁘지 않은 길을 털컥거리며 가는, 그런 느낌이 좋다. 그렇게 어르신 차를 타고 20~30분 정도를 취재하는 지역까지 함께 갔다. 트럭에서 내려서도 동네 어르신에게 인사부터 하는 어르신을 따라 덩달아 동네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취재를 마치고, 어르신은 점심 먹고 가라며 붙잡았다.
웬만하면 점심을 거절하곤 하지만, 그날은 이미 집밥을 다 해놓으셨다고 하셔서 괜히 수고하시지 않게 따라나섰다. 사모님이 크게 반겨주시면서 아랫목에 나를 앉히고 밥상을 내오셨다.
입이 떡 벌어지는 시골 한상. 정성스럽게 부친 전이며, 재료를 예쁘게도 썰어넣은 카레며, 맛깔스러운 김치, 오물조물 무치신 나물 반찬. 알맞게 짭조롬한 장아찌와, 손님 온다고 일부러 구웠을 생선구이까지. 너무나 맛있는 점심을 함께 하니 행복감까지 느껴졌다. 같이 밥술을 뜨면서 그간 인생 이야기도 주워 듣고, 어르신이 쓰신 일기장도 함께 내어보고.
그렇게 집에 가려는데, 이번에는 복숭아가 철이라며 복숭아를 가방에 마구 넣어주시는 게 아닌가. 거기다 밭에서 딴 호박, 가지까지. 날 준다고 예쁜 놈만 골라서 땄다는데 차가 없어서 이건 못 가져 간다고 말씀드려도 기어이 과일이며 채소를 알알이 내미셨다.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날 받은 건 밥상, 과일이지만, 어르신의 깊은 정이었다. 처음 보는 기자를 손님 대접한다고 정겹게 대해주신 게 너무나 감사했다. 어떻게 보답할까 하다가 여름술인 과하주가 생각이 났다. 술아원의 경성과하주다.
경성과하주를 편지를 써서 함께 보내니, 어르신께서는 받자마자 연락을 주셨다. 너무 고맙다고. 그 감사 인사가 더 고마워서 한참을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얼마 전, 어르신이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보내준 과하주를 '인증'하신 것을 발견했다.
술 한 병으로, 내가 그때 얻었던 마음이 전해졌을까. 어르신에게 꼭 전해졌길 바란다. 요즘도 어르신은 내 기사를 보면, 좋은 기사는 꼭 스크랩 해둔다고 하신다. 부족한 기사인데, 감사할 따름이다. 기사를 허투루 쓰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