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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May 03. 2022

우리 술 답사기(1) 빨간 막걸리

경기 용인 술샘 술취한 원숭이

"박 기자, 술 취재 안해볼래?"

문화부에 배정받은 지 일주일이나 됐을까, 부장이 나를 불렀다. "왜요...?" 한참 있다가, "왜... 제가요?"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술을 못 마시는 기자다.

신입 때부터 나의 '알쓰력'은 회사며 출입처며 소문이 자자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하던 회식에서 매번 토하고, 한 번은 회식자리에서도 토했고, 소주 두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더 마시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알코올 알러지까지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매번 '덜 토하기' '회식 때 안취하기' 등을 검색하는 게 일과였던 나다. 


그런데 갑자기 술 취재라뇨?

"박 기자는 유일하게 술 안 취하고 와서 기사 쓸 거 같아."

알쓰였기 때문에,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취해지 않고 술을 업무로만 대할 거 같아서 맡겨진 우리 술 취재.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나는 양조장 30여군데를 취재 다녀오고, 전통주 소믈리에 수업을 듣고, 내 손으로 내 막걸리를 빚는, 술스타그램을 운영하는, 그리고 여전히 술을 마시지 못하는 괴상한 애주가가 됐다. 그때 내게 술 취재를 맡겼던 부장은 지금 내 모습을 보곤 깜짝 놀라곤 한다.

"여전히 술 못 하지?"

맞습니다, 술에 대한 지식과 애정은 늘었지만 주량은 늘지 않더라. 당분간 브런치에선 이 괴상한 애주가가 만난 술 이야기와 취재 뒷담화를 구체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1) 빨간 막걸리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독특한 3대 술을 뽑으라고 하면, 저는 일단 술취한 원숭이를 뽑을게요."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장은 전통주 소믈리에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3대 술, 그중 하나가 바로 경기 용인 <술취한 원숭이>다.


술샘은 한국가양주연구소 수료생들이 힘을 합쳐 만든 양조장이다. '술이 나오는 샘'이라는 의미로, 애주가에겐 이만한 이름도 없다. 그리고 이곳은 내가 우리 술 답사기를 떠나며, 처음으로 취재한 양조장이기도 하다.

처음 취재를 갔을 때, 술에 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갔지만 걱정이 앞섰다. 기자는 아는 것도 모르고, 모르는 것도 아는 참 기이한 족속들이지만 술이야말로 내가 참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술샘을 고른 것도 술에 관한 여러 영상과 예능,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한참 찾아보고 나서다.


‘완판주’ <술취한 원숭이>는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우리 눈에 익숙한 막걸리는 으레 우윳빛이지만 <술취한 원숭이>는 장밋빛에 가까운 빨간색이기 때문이다. 선명한 붉은빛을 낼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원료인 <홍국쌀>에 있다. <홍국쌀>은 홍국균(붉은누룩곰팡이)을 쌀에 접종시켜 비만과 콜레스테롤 개선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인건 대표는 2016년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홍국발효주 제조기술을 이전받았다.


하나로라이스 '홍국쌀'


<술취한 원숭이>는 처음에는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인을 겨냥해서 만든 술이지만, 중국과 관계가 경색되고 수출길이 막혔다. 실제로 술샘이 수출을 염두에 뒀다는 건 <술취한 원숭이> 살균 버전인 <붉은 원숭이> 막걸리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생막걸리보다 살균 막걸리는 보존성이 좋다. 예전에는 살균 막걸리가 맛이 뛰어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요새는 살균 기술이 좋아져서 맛도 생막걸리와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 <붉은 원숭이> 역시 <술취한 원숭이> 못지 않은 하나의 취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뭐 아무튼, 그러다 <술취한 원숭이>가 예능에서 소개되고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게 됐다. 신인건 대표는 그때 방송의 힘을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발렌타인데이 같은 '빨간색'이 필요한 날에는 더욱 주문량이 많다고.


<술취한 원숭이>는 토마토주스 같은 걸쭉한 식감에 깊은 바디감이 특징이다. 단맛이 있고 은은한 산미가 깔린다. 깔끔한 첫맛에 목 넘김이 부드러워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술취한 원숭이>를 마실 때 가장 좋은 안주는 뭐니 뭐니 해도 술에 담긴 이야기다. 도수가 10.8도로 막걸리치곤 높은데, 손오공이 등장하는 책 <서유기>에 착안해 불교의 108번뇌를 10분의 1로 줄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 신인건 대표가 지인인 전각가 이준호 작가에게 부탁한 술병 포장의 전각그림에도 재밌는 일화가 숨어 있다. 바로 신인건 대표가 대학 때 '술 먹고 했던 짓'을 그대로 표현해달라고 주문한 것. 자세히 보면 토하는 원숭이, 고성방가하는 원숭이, 노상방뇨하는 원숭이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술취한 원숭이


술샘에서 생산하는 술은 모두 지역농산물을 주원료로 하는 ‘지역특산주’다. <술취한 원숭이>는 일본산 입국 대신 술샘에서 자체 개발한 누룩을 쓴다. 신 대표는 2013년 술샘을 설립하기 전 엔지니어로 일하다 귀농해 5년간 밭작물을 재배한 경험이 있다. 농사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원료로 쓰는 지역농산물을 제값 주고 구매하려 노력 중이다.


'빨간색'은 마케팅 포인트로도 훌륭하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안타깝지만 우리술에 대한 인식이 만드는 사람의 기대만큼 높진 못하다. 막걸리는 아직 외국산쌀로 만든 저렴한 막걸리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안 그래도 막걸리들은 그저 하얗기만 하다며 차별성을 크게 못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빨간색 막걸리는 색깔만으로도 충분한 셀링 포인트다. 소비자가 막걸리 맛을 비슷하게 느낀다면 색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또 불투명한 유리병은 빨간색에 고급스러움을 더 한다.

<술취한 원숭이> 덕분에 쌀을 재해석 하려는 시도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것보다 쌀에서 나는 색깔로 저렇게 예쁜 빨간색을 낸다는 게 독특하다. 최근엔 홈메이드 막걸리를 만들 때도 <술취한 원숭이>가 선택한 홍국쌀을 선택하는 '막걸리 러버'들이 많다. 앞으론 노란쌀, 까만쌀로도 만든 힙한 막걸리들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술취한 원숭이(10.8도)>는 375㎖ 기준 7000원.


[우리 술 답사기] 원숭이해 태어난 ‘붉은 막걸리’ 신축년에도 ‘불티’ - 농민신문 (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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