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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an 09. 2023

너의 발

타인의 발을 보는 것을 꺼려했다. 누가 맨 발을 내놓고 있으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한 팀이 일방적으로 지고 있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 대담회에 출연한 패널이 상대방의 논리에 말문이 막혀 제대로 주장을 잇지 못하는 것, 부끄러운 행동을 한 어떤 사람의 내밀한 표정을 마주하게 되는 것……그런 민망한 순간을 유독 못견뎌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발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타인도 그러할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숨기고 싶은 부분은 나도 모르는 척 해주고 싶은 마음.


어느 날 연인의 발을 보았다. 문득 그 발이 내 가슴에 쿵쿵거렸던 순간, 창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새벽빛이 그 사람의 발을 비추고 있었다. 그가 거칠게 살아온 스물 몇 해가 고스란히 전해져왔고, 내 손으로 만져주고 싶다 생각했다. 그 때 알았다. 사랑은 그 사람의 발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었다. 얼굴이 아니라, 발.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숨기고 싶은 외로운 부위.

그리고 언젠가부터 발은, 나에게 여러 글의 소재로 자주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가장 생경하게 다가오는 아이의 신체 부위도 나에게는 발이었다. 온 발가락을 뻗대며 짜증과 분노를 표현하다가도, 젖을 물거나 나의 품에 포옥 안기어 있거나, 기분 좋은 옹알이를 할 때 엄지 발가락을 힘껏 위로 들며 만족스러움을 표시하는 아이의 발. 나는 아무런 고민도, 세상에 대한 불만도 없는 아이의 발이 신기해 내 볼에 부벼댄다. 오직 지금만이 전부인, 그 아이의 무사태평한 발가락, 놀랍도록 부드러운 감촉과 물고싶은 탄성을 가진 조그만 살덩어리.


그러다 내가 수십년 간 가져온 발의 슬픈 정서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것이다. 무사태평하고 사랑스러운 이 퍼덕임이 언젠가 거칠어질 그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인지. 아이의 발은 나에게 발에 대한 이미지를 한편으로 전복시켰지만, 그러나 나의 쓸쓸한 기억만은 바꿔놓지 못했다. 이 말랑함도 언젠가는 딱딱해지겠지. 긴장으로, 고독으로 굳어가겠지. 아무 것도 모르는 너의 순수 앞에서 삶이 슬퍼지면, 그러면 나는 그 말랑한 살덩이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춘다. 너의 발이 뻗어나갈 그 길들에 기도하며. 어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임을 문득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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